달리기의 두 얼굴, '러너스 하이' 느끼려다 '운동중독' 걸릴 수도

서애리 2023. 4. 5.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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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언제, 어디서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숨이 차오를 때까지 무아지경으로 달리면 오히려 기분이 상쾌해지고 행복해질 때가 있다. 이때 느끼는 쾌감을 '러너스 하이(Runner' High)'라고 한다.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1분에 120회 이상 심장박동수로 30분 이상 격렬히 달릴 때 러너스 하이를 느낀다. 극한의 고통 속에서 희열처럼 다가오는 이 느낌 때문에 많은 사람이 달리기를 선호하는데, '러너스 하이'에 깊게 빠지면 운동중독증이 나타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면 운동중독에 빠질 위험이 크다ㅣ출처: 게티 이미지뱅크

달리면 달릴수록 느껴지는 짜릿한 쾌감
마라톤 동호인들 사이에서 궁극의 경지로 여기는 '러너스 하이'는 미국 캘리포니아대(University of California) 심리학자인 아놀드 J 맨델(Arnold J Mandell)이 1979년 발표한 정신과학 논문 '세컨드 윈드(Second wind)'에서 처음 사용한 단어이다. 달리기를 시작한 후 30분 정도가 지나면 상쾌해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현상을 말하며, 흡사 마약을 투약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다.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면 오래 달려도 전혀 지치지 않을 것 같고,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러한 중독성과 쾌감으로 종종 오르가즘에 비유되기도 하며, 꼭 달리기가 아니더라도 수영, 축구, 럭비 등 장기간 지속되는 운동이라면 언제든지 느낄 수 있다. 특히 마라톤 선수들이 훈련할 때 극한의 고통을 넘어 35km 지점쯤 되면 러너스 하이를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타 엔도르핀, 강한 행복감과 진통 효과 선사
러너스 하이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진 물질 가운데 가장 유력하게 언급되는 물질은 엔도르핀(Endorphin)이다. 엔도르핀은 뇌하수체 전엽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통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고, 산소를 이용하는 유산소 상황에서는 별 증가를 보이지 않다가 운동 강도가 높아져 산소가 줄어드는 무산소 상태가 되면 급증하게 된다. 또한 인체가 고통을 겪거나 심리적으로 충격을 받아 기분이 나쁠 때 분비된다고도 알려져 있다.
운동 시 발생하는 '베타 엔도르핀'은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 물질로 마약과 화학구조가 유사해 마약과 같은 희열을 느낀다. 베타 엔도르핀의 진통 효과는 진통제보다 40~200배나 강하다. 이 같은 현상은 운동 시 생성되는 젖산 등 피로물질의 축적과 관절 또는 근육 통증을 감소하기 위해 체내에서 자동으로 반응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체력이 바닥나 호흡조차 곤란한 사점(Death point)에서 베타 엔도르핀이 급격하게 분비되면 우리 몸은 '세컨드 윈드(Second wind)'상태를 경험한다. 이는 운동 중 고통이 줄어들면서 운동을 계속하게 하는 의욕이 생기는 상태를 말한다. 피로감과 체력 소모로 탈진한 신체를 다시 운동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행복감과 진통 효과를 줌으로써 운동 의욕을 계속 불어 넣어주는 신체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유쾌한 기분은 묘한 행복감을 느끼는 상태를 경험하게 되는데, 이것이 마약 복용보다 더 강력하다고 한다. 이 같은 베타 엔도르핀의 행복감 때문에 운동을 중단하지 못하고 계속하게 되는 것이다.

점점 강도 높은 운동하면 운동중독 의심해야
운동중독은 가벼운 운동이라도 규칙적으로 2~3개월 계속하면 생길 수 있다. 하다못해 매일 3km 걷는 것만으로도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 특히 운동을 거른 후 불안, 초조, 신경과민, 불쾌감이 생긴다면 이미 운동중독 단계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렇게 운동중독으로 발전하면 마치 금연할 때처럼 금단증상을 느끼게 된다는 것. 바빠서 하루라도 운동을 못하면 불안하거나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 시작하고, 운동이 주는 묘한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 다시 지칠 때까지 운동하며, 운동량을 늘려나간다. 나중에는 스스로 운동을 중단하거나 운동량을 줄이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게 된다.
또 운동에 대한 내성이 높아져, 운동을 계속할수록 강도와 시간이 길어진다. 다른 중독과 마찬가지로 운동 강도를 계속 높여야 행복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운동중독이 질병 키울 수도
운동중독증이 발생하면 몸 상태에 상관없이 운동 자체의 쾌감 때문에 과도한 운동을 할 수 있다. 이렇게 과도하게 운동하면 관절과 근육, 인대의 손상으로 운동 중 부상 위험성이 높아지며, 부상이 있음에도 중단하지 못하고 운동을 계속해 고질적인 만성 장애로 발전할 수 있다. 특히 운동중독자들은 통증을 견딜 만하면 바로 다시 운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손상된 근육과 인대가 회복할 새도 없이 망가지게 된다.
또한 관절염과 근육통이 심해져 걷기와 같은 일상적인 생활에도 지장이 갈 수 있다. 심장 역시 과도한 운동으로 손상이 발생하여 협심증, 부정맥과 같은 심장질환으로 이어져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이처럼 과격한 운동은 질병을 키우는 위험한 행동이며, 과도한 운동은 운동중독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건강을 위해 시작한 운동이 운동중독으로까지 안 가려면 스포츠의학클리닉 등을 찾아 현재 하는 운동이 자신에게 맞는 운동인지, 강도는 적절한지, 과한 운동으로 몸에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지 등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
또한 운동 후 근육통을 느꼈다면 몸 상태를 점검한 후 충분한 회복기를 두고 다시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안전하다. 강박관념을 갖고 운동하기보다는 운동 목적을 상기하면서 목표에 맞는 운동 계획을 세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서애리 하이닥 건강의학기자 hidoceditor@mcircle.b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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