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타임] 그래 난 이해인, '포기를 모르는 소녀' "트리플 악셀-팀트로피 도전 남았죠"
[스포티비뉴스=태릉, 조영준 기자/김한림, 임창만 영상 기자] "세계선수권대회를 할 때부터 꿈꾸고 있었고 지금도 그런 거 같아요(웃음)"
큼지막한 금빛 메달(4대륙선수권대회)과 은빛 메달(세계선수권대회)을 손에 쥔 18세 소녀 이해인(세화여고)은 인터뷰 내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의 말대로 아직 꿈꾸고 있는 기분이었다. 2022~2023 시즌 초반 부상과 기술 구성에 대한 고민으로 자신감을 잃었던 눈빛은 찾아볼 수 없었다. 걸작 스포츠 만화 '슬램덩크'의 등장인물 정대만의 명 대사(난 포기를 모르는 남자)가 딱 어울렸다.
스포티비뉴스는 봄기운이 만연한 날, 서울 태릉 실내빙상장에서 훈련 중인 이해인을 만났다.
이해인은 지난달 일본 사이타마에서 열린 2023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스케이팅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3년 김연아가 우승한 이후 한국 여자 싱글 선수로는 10년 만의 값진 메달이었다.
또한 이 대회에 앞서 열린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는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그는 2009년 김연아 우승 이후 무려 14년 만에 한국 선수로는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이해인의 이번 시즌을 압축하면 '시작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하다'였다. 그는 지난해 10월 초 열린 ISU 챌린저 대회 네펠라 메모리얼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이 대회 여자 싱글에서 동메달을 따냈지만 점수는 164.88점이었다. 그러나 시즌의 대미를 장식한 세계선수권대회에서는 개인 최고 점수인 220.94점을 받았다. 이해인의 시작과 끝은 무려 56.06점이나 차이가 났다.
시즌 초반에는 부상 및 기술 구성으로 고생…랭킹전부터 날아오르다
불과 1년 전 이해인은 아쉬움의 눈물을 삼켜야 했다. 최대 목표였던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 출전이 무산됐기 때문이다. 1, 2차 선발전에서 그는 마지막까지 유영(19) 김예림(20, 단국대)과 경쟁했다. 단 2장 뿐인 출전권을 놓고 살얼음을 걸었지만 끝내 베이징으로 갈 수 있는 강을 건너지 못했다.
큰 좌절을 겪었지만 이해인은 주저 앉지 않았다. 오뚝이처럼 일어선 그는 지난해 ISU 4대륙선수권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이 대회에서 선전하며 나름 자신감을 회복했지만 이번 시즌 출발은 좋지 않았다. 네펠라 메모리얼에 이어 출전한 핀란디아 트로피와 두 번의 ISU 시니어 그랑프리(스케이트 아메리카, 프랑스 그랑프리)에서는 모두 4위에 그쳤다.
"이번 시즌 초반은 매우 힘들었어요. 그런데 막바지에 좋은 결과를 거뒀고 한국 선수로는 김연아(33) 언니 다음으로 메달을 따서 정말 기뻤죠. 앞으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제가 조금 좋아졌다고 느낀 대회는 랭킹전이었습니다."
지난해 12월에 열린 회장배 랭킹전에서 이해인은 3위를 차지했다. 올해 1월 초 전국종합선수권대회에서도 3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대회 출전권을 확보했다.
랭킹전까지 이해인은 발 부상과 독감으로 고생했다. 이를 털어내고 국내에서 열린 랭킹전과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제 기량을 회복했다. 이후 이해인의 날갯짓은 거침이 없었고 4대륙선수권대회 우승과 세계선수권대회 은메달로 이어졌다.
힘든 시간에 그를 일으켜 준 이 가운데 한 명은 김연아였다. 김연아의 조언에 힘을 얻었다고 밝힌 이해인은 "세계선수권대회가 끝난 뒤 메시지로 언니가 축하해주셔서 감동했다"고 말했다.
김연아는 선수 시절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이해인에게는 안무에서 강약 조절과 시선 처리 등을 지적해줬다.
또한 세계선수권대회 때는 현장을 찾아 응원해준 동료들도 큰 힘이 됐다. 남자 싱글 국가대표 이시형(23, 고려대)과 경재석(23, 경희대)은 경기가 열린 사이타마 슈퍼아레나를 찾아 이해인을 응원했다.
지난해 8월에는 국가대표 동료들과 처음으로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한 달간 합숙 훈련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국가대표 동료들과 사이가 돈독해졌고 세심하게 챙겨준 남자 싱글 선수들은 늘 고마웠다.
"(이시형, 경재석)오빠들이 온다고 말해줬고 쇼트프로그램을 하는 날 만나서 정말 반가웠어요. 오빠들은 다 착하고 마음씨도 곱고 배려심도 좋아요. 친하지 않으면 챙겨주기 어려운데 오빠들이 항상 먼저 다가와서 챙겨준 점이 좋았습니다."
올 시즌 굵직한 대회에서 함께 뛴 김예림도 이해인에게 좋은 영향을 줬다.
"사소한 이야기지만 (김)예림 언니가 제 인스타그램에 좋아요를 눌러줬을 때 매우 기뻤어요. 대학생인데도 지금까지 정말 열심히 스케이트를 타고 언제나 성실하게 훈련하는 데 그런 점이 존경스럽습니다. 언니와 대회를 많이 나간 점도 저에게는 큰 행운이었죠."
또한 이해인은 절친한 동료이자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함께 한 유영도 빼놓지 않았다. 지난해 베이징 올림픽을 마친 뒤 스포티비뉴스와 인터뷰를 한 유영은 국내 선수 가운데 가장 친한 동료이자 동생으로 이해인을 꼽았다. 이 말에 이해인은 "감동"이라며 유영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유영은 베이징 올림픽 6위를 차지하며 김연아 이후 최고 성적을 거뒀다. 그러나 이번 시즌 허리 부상 등으로 고전했고 랭킹전과 종합선수권대회에서 부진하며 태극마크를 반납했다. 재기를 노리는 그는 현재 훈련지인 미국 콜로라도스프링스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제가 처음 종합선수권대회를 보러 갔을 때 영이 언니가 하는 것을 보고 정말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언니와 친해져서 기뻤고 작년에는 세계선수권대회에 함께 출전했죠. 이번에는 언니가 옆에 없어서 마음이 아팠고 당시 함께 놀았던 알리사 리우(미국, 은퇴) 선수도 은퇴해서 약간 현타도 왔습니다"
여자 선수들은 늘 빙판에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는 현실 때문에 불편한 점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이해인과 유영은 서로에게 힘을 줬고 선의의 경쟁을 하는 사이가 됐다.
"언니가 스케이트를 꾸준하게 타고 있고 지금 미국에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언제나 저에게 많은 힘을 줬는데 작년 세계선수권대회 쇼트프로그램에서 전 실수를 하고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곁에서 힘을 줘서 프리스케이팅을 클린할 수 있었죠. 대회가 끝난 뒤 라면을 먹으면서 많은 대회를 나눴는데 우리는 경쟁하는 사이지만 대회장이 아닌 곳에서는 친하게 지내고 싸우지 말자고 얘기했어요. 앞으로 대회에서 다시 언니를 만났으면 좋겠고 항상 건강했으면 합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공부한 영어도 해외 선수들과 친분을 쌓는 데 도움이 됐다. 이해인은 친한 선수로 4대륙선수권대회 남자 싱글 우승자인 미우라 가오(일본)와 미국 남자 피겨의 간판 일리야 말리닌, 그리고 미하라 마이와 사카모토 가오리(이상 일본)를 꼽았다.
말리닌은 피겨 역사상 최초로 '마의 점프'인 쿼드러플 악셀에 성공했다. 스케이트 아메리카에서 말리닌의 쿼드러플 악셀을 현장에서 직접 본 이해인은 "그냥 천재 같다"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혼자'가 아닌 '모두'와 함께하는 팀트로피, 구슬땀 흘린 트리플 악셀도 다시 도전
이해인은 평소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힘든 시기도 그림으로 이를 이겨냈다. 직접 스토리를 구상해 웹툰도 그렸다.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재미있어서 계속하고 있다. 미술학원도 다녔는데 스케이트와 함께하기는 힘들어서 지금은 그만 두었고 아쉬웠다"고 말했다.
직접 스토리를 짜서 그려봤다는 웹툰에 대해서는 "예전에 그린거라 웹툰 이야기가 산으로 가더라"며 수줍게 웃었다.
이해인은 케이팝이 흐르는 갈라 프로그램으로도 관중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이번 시즌 그는 케이팝 걸그룹 아이브의 'After Like'로 관중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팝송보다는 예전부터 케이팝을 하고 싶었어요. 반응도 좋은 거 같고 아직 케이팝을 하는 선수들도 없어서 신기하게 보시는 거 같습니다."
좋아하는 그룹으로는 "다 좋은데 아이브와 뉴진스 블랙핑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다음에는 뉴진스의 'hype boy'에 맞춰 연기할 생각도 고민 중이다.
그동안 이해인은 주로 고전적이고 부드러운 곡을 프로그램에 사용했다.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 장르만 잘하는 선수가 아닌 여러 장르를 잘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 그러나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앞으로 안무 수업을 더 받으면서 파격적인 연기에도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남자 싱글에서 은메달을 따낸 차준환(22, 고려대)은 '마이클 잭슨 메들리'(쇼트)와 '007 제임스 본드 노 타임 투 다이'(프리)로 변신을 시도해 대중들의 호응을 받았다.
"(차)준환 오빠의 프로그램과 연기는 예전부터 멋있다고 생각했고 대회 때도 자신이 할 거를 다하고 나왔죠. 오빠만의 반짝거리는 게 있는 거 같아요(웃음) 이번에 함께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서 매우 기쁩니다."
한국 여자 싱글 선수 가운데 고난도 점프를 실전 대회에서 성공한 이는 유영과 김유재(14, 평촌중) 밖에 없다. 이해인도 꾸준하게 트리플 악셀을 연습했다. 이번 시즌은 다른 기술의 완성도에 집중했지만 이 기술에 다시 도전할 의지는 여전히 남았다.
"솔직하게 말하면 예전부터 트리플 악셀을 뛰어왔었고 프로그램에도 넣어서 성공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직 준비되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죠. 우선은 트리플 + 트리플 콤비네이션 점프부터 완벽하게 한 다음에 넣는 것이 맞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최대한 열심히 연습해서 성공률도 높아지고 프로그램에 넣을 수 있다면 다음 시즌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현재 이해인의 기술구성에 트리플 악셀이 들어가면 기술점수는 한층 올라간다. 그는 "무기로 사용할 수 있지만 이 점프만 뛴다고 점수가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에 선뜻 넣을 수는 없었다"며 신중하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세계선수권대회를 마친 이해인은 '팀코리아'의 일원으로 국가대항전인 팀트로피에 출전한다. 이 대회는 오는 13일 일본 도쿄에서 개막한다.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팀트로피에 참가하는데 제가 합류해서 정말 기뻐요. 동료들과 함께해서 설레이는 기분도 있죠. 부담 없이 가자고했는데 막상 대회장에 도착하면 부담이 없지는 않을 거 같습니다. 다들 열심히 해온 만큼 재미있게 하고 왔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이해인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늘 힘이 되어준 부모님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번 시즌 많이 힘들었고 엄마, 아빠도 힘드셨을 텐데 그런 내색을 안 하시고 저를 지원해주셔서 큰 힘이 됐어요. 항상 감사하다고 매일매일 느끼고 있고 이제 대회가 하나 남았는데 잘 다녀오겠습니다. 사랑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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