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先한국어판 後해외출간’… 외국저자 책 수출하는 K-출판
日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
‘한국어 신작’ 출판 계약
영국 철학자 등 저자 섭외
인문교양 시리즈 낸 사례도
‘우크라이나 태생’ 그레벤니크
전쟁 다룬 그림책 1만부 팔려
자국서 활동하던 작가와 협업
세계적 권위 시상식 수상도
일본의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 고베(神戶)여대 명예교수는 지난해 11월 한국 독자와의 만남을 위해 방한한 당시 유유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맺었다. 유유는 ‘우치다 선생이 읽는 법’과 ‘배움엔 끝이 없다’ 등 우치다 교수의 책을 국내에 꾸준히 소개해온 출판사. 특이한 것은 일본에서 이미 출간된 책을 번역한 전작들과 달리 새로 계약을 맺은 신간은 유유 출판사가 한국어로 내는 책이라는 점이다. 정치·철학·문학 등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갖춘 우치다 교수는 자신을 단련하는 ‘공부’의 의미와 일생에 걸쳐 터득한 학습 노하우를 신간에 담을 계획이다.
우치다 교수와 유유의 협업처럼 출판계에 ‘동시 출간’을 넘어 우리 출판사가 해외 유명 저자의 책을 내고, 이를 외국으로 역(逆)수출하는 기획이 늘고 있다. 이 경우 외서 번역과 달리 국내 독자의 취향을 고려해 기획할 수 있다는 게 출판인들의 설명.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후 국내에 처음 출간된 올가 그레벤니크의 그림책 ‘전쟁일기’(이야기장수)가 1만 부가량 팔릴 정도로 인기를 끌면서 이 같은 ‘한국어판 선(先) 출간, 후(後) 수출’ 방식은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치다 교수의 ‘한국어판 세계 최초 출간’은 우치다 교수가 높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아직 국내에서 충분히 읽히지 못했다는 출판사의 아쉬움에서 출발한 기획이다. 지난해 11월 방한한 우치다 교수와 만난 조성웅 유유 대표는 “한국 독자와 선생님이 폭넓게 소통할 수 있는 다리를 놓고 싶다”며 “일본 독자가 아닌 한국 독자들을 겨냥한 국내서로 기획하면 국내 독자들이 선생님의 글을 더 가깝게 여길 것”이라고 설득했다. 우치다 교수는 이 제안을 흔쾌히 수락하며 “한국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질문 형태로 정리해주면 집필에 참조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북이십일의 문학·인문 교양 브랜드인 아르테 역시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를 통해 해외저자 책을 역수출하는 방식을 실험하고 있다. 2018년 시작된 ‘클래식 클라우드’는 고전으로 자리매김한 학자·예술가의 학문과 작품 세계를 기행 평전 형식으로 살펴보는 시리즈인데, 그동안 나온 31권 가운데 ‘에리히 프롬 : 사랑의 혁명을 꿈꾼 휴머니스트’와 ‘데이비드 흄: 인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자 한 철학자’ 등 2권이 기획 단계부터 해외 저자를 섭외해 작업한 책이다. ‘에리히 프롬’을 쓴 옌스 푀르스터는 ‘나는 정말 나를 알고 있는가’ ‘바보들의 심리학’ 등을 통해 국내에 소개된 독일 심리학자이며, ‘데이비드 흄’의 줄리언 바지니는 ‘당신의 질문은 당신의 인생이 된다’로 잘 알려진 영국 철학자다. 임정우 아르테 기획위원은 “‘세계적 저자와 함께한다’는 이미지를 통해 클래식 클라우드를 글로벌한 시리즈로 각인시키려 했다”며 “아르테 책을 읽고 ‘아마존’에서 원서를 찾아본 뒤 국내 최초 출간 도서라는 사실을 확인한 어느 독자는 ‘기특하고 갸륵한 기획’이라는 후기를 남겼다”고 전했다. 이어 임 위원은 “2020년 출간된 ‘데이비드 흄’의 경우 이미 영미권에 수출했다”며 “시리즈 후속작으로 고쿠분 고이치로(國分功一郞) 도쿄(東京)대 교수의 ‘스피노자’를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일반도서 분야에선 ‘한국어판 선 출간, 후 수출’이 아직 드물지만, 그림책 장르에선 훨씬 보편적인 방식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4월 출간된 그레벤니크의 그림책 ‘전쟁일기’는 발 빠른 기획으로 큰 성공을 거둔 대표적 사례다. ‘전쟁일기’는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나고 자란 그레벤니크 작가가 피란 과정과 참혹한 지하실 생활을 연필로 스케치한 다큐멘터리 일기. 문학동네 편집자 출신인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는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그레벤니크의 그림을 보고 메시지를 보내 책을 출간하기로 의기투합했다. 이 대표는 “외서를 편집할 때마다 본문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하는 게 힘들어 답답했는데 ‘전쟁일기’는 저자에게 마음껏 의견을 전달할 수 있어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설명했다. ‘전쟁일기’는 한국에서 1만 부 정도 팔렸으며, 현재 이탈리아·루마니아·일본·독일·대만 등 5개국에 판권을 수출했다.
이와 함께 김영사의 ‘잭키 마론’ 시리즈, 난다의 ‘엄마는 해녀입니다’, 사계절의 ‘시간의 네 방향’과 ‘파란 막대 파란 상자’, 창비의 ‘마음의 집’과 ‘눈’ 등도 국내에서 최초로 출간된 그림책들이다. 이 가운데 사계절과 창비가 펴낸 책은 모두 폴란드 작가인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작품이며, ‘마음의 집’과 ‘눈’은 아동문학계의 권위 있는 상인 볼로냐 라가치상 대상 수상작이다. 서채린 창비 그림책 출판부 편집자는 “주로 자국에서 활동하던 흐미엘레프스카는 국내 출판계와의 협업을 통해 세계적 작가로 부상했다”고 소개했다.
나윤석 기자 nagij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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