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은 고통 덜어줄 뿐 근본치유 아냐… 잠자는 유전자 스위치 켜는 게 치료”[M 인터뷰]
병은 한 순간 뒤늦게 발견되지만
오랜시간 잘못된 생활습관 결과
면역기능 잃고 손상된 유전자들
채식·엔도르핀으로 고칠 수 있어
35년 전 강연으로 스타 됐지만
축산업자 피해 본 건 내게도 상처
미국으로 도망치듯 떠나면서도
허튼소리 안 했다는 걸 위안삼아

속초=이성현 기자 sunny@munhwa.com
머리에 내려앉은 은빛 세월의 흔적은 감출 수 없었지만 인사를 건네는 목소리에는 힘이 느껴졌고 얼굴은 온화했다. 미국에서 활동하던 35년 전 국내 TV 강연을 통해 ‘채식 신드롬’을 일으키며 살해위협과 사망설에 시달리기도 했던 이상구(80) 박사다.
기쁘고 즐거울 때 나오는 엔도르핀이 면역력을 높여주고 건강을 가져다준다고 해서 ‘엔도르핀 박사’로 유명한 그는 연세대 의대 졸업 후 미국 미시간주 웨인주립대 의대에서 내과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고, 캘리포니아대 의대에서는 알레르기·면역학 전문의 과정을 수료했다. 캘리포니아 위마대 교수 등을 역임한 후 2011년 미국에서 의사생활을 정리하고 41년 만에 완전 귀국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산 좋고 물 맑은 곳을 찾다가 강원 속초에 정착하게 됐다.
이 박사는 설악산 자락이 병풍처럼 내려앉은 곳에 자리한 ‘이상구 박사 뉴스타트(NEWSTART)센터’에서 부인과 함께 생활하며 찾아온 환자들을 상대로 건강세미나를 진행한다. 생활습관 변화를 통해 우리 몸이 지닌 자연치유 본능을 회복시키는 내용의 강연과 상담, 치유 프로그램 등으로 여든의 나이가 무색하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이 박사가 의사의 길을 선택하게 된 것은 폐결핵으로 약도 한 번 제대로 못 쓰고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언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광복 후 폐결핵에 걸리셨는데 3년 만에 피를 토하며 돌아가셨어요. 당시 제게 자신처럼 약도 못 써보고 죽는 사람이 없도록 환자들을 돌봐주고 병을 낫게 하는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는 유언을 하셨죠.”
부친의 유지를 따라 의사가 됐지만 의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점점 커져만 갔다. 의대를 졸업하고 미국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수술·약물치료 등 자신이 현대의학적으로 배운 것은 증세를 치료할 뿐 ‘근본적인 원인 치유’가 아니구나 하는 물음표가 늘 쫓아다녔다. 오랜 고민과 연구 끝에 찾은 해답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한 것들을 이해하기 쉽도록 체계화해 알리고 이를 실행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그가 소개하는 건강 치유법은 잘못된 생활습관으로 손상된 유전자(DNA)를 회복시켜 몸이 지닌 자연치유 본능을 되찾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누군가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은 경우, 그 사람의 암세포는 오래전부터 자라고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증세를 통해 알게 됩니다. 현대 의학은 사람이 질병에 걸려 병상에 눕는 때부터 치료가 시작되는 임상의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질병은 순간 발생하지만, 그 증세는 어느 정도 세월을 보내고 난 후에야 드러난다는 점에서 생활습관의 결과로 이해해야 합니다.”
병의 근본원인인 생활습관의 변화 없이 약물·수술 치료에 중점을 두다 보니 고혈압·당뇨처럼 죽을 때까지 증세치료를 계속해야 한다는 그의 얘기는 자연스럽게 유전자 문제로 넘어갔다.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돼 있고 세포의 상태를 결정해 주는 것은 유전자입니다. 유전자가 잘 작동하고 정상적으로 유지되면 세포가 건강하고 그게 우리 몸이 건강한 거예요. 의학계에서는 오랫동안 유전자는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여겼는데 1990년대 들어 유전자가 변해서 병이 생긴다는 걸 확인했어요. 현대 의학의 지각 변동을 불러온 건데 증세 치료만 하던 의학이 이제는 유전자 의학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 박사는 정상적인 유전자가 변해 질병이 생겼다면 생활습관 변화를 통해 유전자를 원래대로 돌려 병을 고치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특정한 이유로 제 역할을 못 하는 유전자가 본래의 면역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행위를 ‘꺼져 있는 유전자의 스위치를 켜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한다. 여기서 강조하는 유전자 스위치 작동법의 핵심은 기름기 없는 채식 위주의 식사와 엔도르핀을 불러오는 긍정적인 사고, 규칙적인 운동이다.
“솔직히 말해서 이전까지 제가 의사로서 했던 약 처방 등으로 환자가 고통을 좀 덜게 됐다고 생각은 했지만, 병을 완전히 낫게 했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제 삶의 전환점을 가져온 고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런 배경에는 유난히 허약해 힘들어했던 어린 시절과 미국에서의 경험이 한몫했다. 아버지의 중국 유학 시절인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불과 생후 2년 3개월 만에 격해지는 전쟁을 피해 부산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피란 과정에서 일본인과 함께 타고 있던 그의 기차 객실은 집중 포격을 받았고 탑승 인원의 다수가 처참한 상태로 죽었다고 한다.
“제가 1943년 5월에 태어나서 1945년 8월에 그 일을 당했으니까 피투성이의 아수라장 속에서 그 어린애가 완전히 넋이 나가지 않았겠어요?” 그때의 충격 때문이었을까 부산에서 보낸 어린 시절은 불행한 기억으로 남았다. 오죽하면 ‘아프다가 볼일 다 봤다’고 표현할 정도로 안 아팠던 날을 찾기 어려웠고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했다.
10세 이전까지 밤에 잠이 안 와서 매일 숫자를 100부터 거꾸로 세며 뜬눈으로 지새우기 일쑤였으니 자연히 친구가 있을 리 없었다.

“선생님이 웃긴 얘기를 하면 주위 학생들은 막 웃는데 저 혼자만 그게 왜 재미있는지 모르고, 말하자면 어떤 이유로 엔도르핀 유전자가 꺼져 있었던 거죠. 그런 상태로 제 마음과 인생관에 변화가 없었더라면 저는 벌써 죽었을 겁니다.”
미국에서 의사로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하던 당시 갑자기 찾아온 공황장애로 힘들어했던 기억도 소개했다.
“미국에서 병원 개업 후 돈을 많이 벌었어요. 술도 좋아했고 최고급 승용차는 물론, 별장에다 보트에 캠핑카까지 사며 흥청망청 생활하다 보니까 부자로 산다는 게 너무 좋은 거예요. ‘내가 이렇게 좋은 걸 모르고 지금까지 살았구나’ 하고 행복해하다가 갑자기 덜컥 ‘암에 걸리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에 공황장애가 와버린 겁니다. 결국 질병의 치유는 사람의 생각과 생활습관에 달려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후 자신이 다니던 교회에서 건강 강연을 시작했는데 좋은 반응을 얻으며 미국 사회 곳곳은 물론, 해외에서도 강연요청이 쇄도했다. 채식열풍을 불러온 한국에서의 TV 강연은 우연한 기회로 성사됐다. 한 미국교포가 1988년 이 박사의 강연을 녹음해 한번 들어보라고 국내 친척들에게 보냈던 것이 시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박사의 강연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으며 복사본이 등장했고 당시 지하철에서 건강 테이프라는 이름으로 팔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KBS 관계자가 테이프 내용을 들어본 후 강연을 하자며 먼저 이 박사에게 제안해왔다. 기름진 고기를 피하고 채식 위주로 식사해야 한다는 강연의 반응은 무서울 정도였다. 당시에는 건강해지려면 고기를 먹어야 하고 채식 위주의 식단은 부실하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으니 그의 강연은 국내 건강식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놓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방송이 나오자마자 그냥 무슨 폭탄 터진 것처럼 정말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할 정도로 한순간에 스타가 돼 버렸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한 일도 벌어졌다. 그의 강연 후 갑자기 고기가 안 팔리다 보니 축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상구 때문에 망했다’면서 여의도 광장에 모여 시위를 하고, 심지어 자신을 죽이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기도 했다. 이후에도 ‘이상구 말 듣지 마라’ ‘이상구가 영양실조로 죽었다’는 등 출처를 알 수 없는 이상한 소문까지 퍼지며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그는 결국 미국으로 떠났다.
지금은 담담히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 의도와는 다르게 축산업자들이 큰 피해를 보고 소와 돼지를 키워 자녀 학자금을 대주던 부모들이 힘들어했던 기억은 가슴 한구석에 상처로 남아있다. 미국으로 도망치듯이 떠나면서 이해하기 힘든 무력감도 느꼈지만, 자신이 한 말 중 허튼소리가 하나도 없었다는 점을 위안으로 삼았다. 건강해지려면 채식 위주로 식사해야 한다는 사실에 딴지를 거는 사람 찾기가 힘든 요즘, 35년 전 그의 강연은 전문가의 말 한마디가 지닌 영향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대를 앞서간’ 하나의 사건이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채식신드롬 불렀지만, 장조림·생선은 섭취… “나쁜 습관 바꿔 건강 새출발 하세요”
■ 속초 정착 ‘뉴스타트’ 세미나
이상구 박사의 하루는 오전 6시 30분 운동과 함께 시작된다. 아침 식사는 오전 7시 30분에 채식 위주로 한다. 이어 뉴스타트센터를 찾아온 환자들을 상대로 오전과 오후 두 차례, 1시간 30분씩 강연을 하고 예정된 상담을 하다 보면 어느새 하루가 저문다.
남는 시간은 주로 유전자 의학 분야의 최신 연구 결과를 찾아보는 등 연구활동을 하며 보낸다. 그는 “인간의 몸은 세포로 구성돼 있는데 질병은 세포가 변질해서 본래의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며 “첨단 현대 의학은 변질한 유전자를 회복시킴으로써 질병을 치유하는 노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가진 자연 치유력이라는 것은 결국 변질한 유전자를 회복시키는 힘이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이 박사는 여든에도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할 수 있는 건강비결로 채식 위주의 식사와 규칙적인 운동, 긍정적인 사고를 꼽는다. 시간이 나면 일부러 15㎏ 무게의 배낭을 메고 설악산을 오르며 체력을 다지기도 한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냐고 묻자 “규칙적으로 쓰면 무릎 연골도 강해진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사람의 몸은) 규칙적으로 많이 쓰면 거기에 적응한다”며 “생활습관에 달렸다. 운동을 안 하던 사람이 갑자기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면 탈이 날 수 있으니 서울 사람이 함부로 따라 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며 환하게 웃었다.
국내에 채식 열풍을 몰고 온 주인공이지만 필요할 땐 육류도 조금씩 섭취한다. 장조림이나 기름이 완전히 빠진 갈비탕의 고기, 생선 위주로 먹는다. 이 박사는 “고혈압·당뇨병 등 성인병이라고 부르던 질병들이 이제는 나이와 상관없이 발병하기 때문에 ‘생활습관병’이라는 이름으로 의학계에서 불리고 있다”며 “건강해지려면 이전의 나쁜 생활습관을 버리고 새롭게 출발해야 한다는 의미가 제가 운영하는 뉴스타트센터에 담겨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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