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스타 이정현, 에이스는 강하게 성장한다
2022~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6강 플레이오프에서 위기에 몰렸던 고양 캐롯이 1패 뒤 1승을 거두며 승부의 추를 원점으로 되돌렸다. 4일 울산동천체육관에서 있었던 울산 현대모비스와의 2차전에서 전 선수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않고 투지를 보인 끝에 86-79로 승리를 가져갔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팀내 주포 ‘불꽃 슈터’ 전성현(32‧188.6cm)이 빠진 가운데 승리를 거뒀다는 사실이다. 객관적인 전력이나 선수층에서 밀리는듯 보이면서도 캐롯이 정규시즌에서 현대모비스에게 압도적 맞대결 승률을 가져갈 수 있었던데에는 강력한 압박 수비와 더불어 공격시 특유의 '양궁농구'가 잘 먹힌 부분이 컸다.
캐롯은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유일하게 경기당 두자릿수(11.5개) 3점슛을 기록한 팀이다. 그 다음이 안양 KGC의 8.9개라는 점을 감안했을때 얼마나 뚜렷하게 팀컬러를 가져갔는지 새삼 짐작이 간다. 거기에는 전성현의 지분이 컸다. 외국인선수 디드릭 로슨(25‧201cm)까지 3점슛을 던질 정도로 전선수가 외곽공격에 가담하고 있지만 전성현이 중심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캐롯의 양궁농구는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다는 분석이다.
올시즌 전성현은 자타공인 KBL최고의 슈터로 자리매김했다. 단순히 현재 3점슛을 가장 잘 던지는 정도를 넘어 역대급 레전드인 문경은, 조성원 등을 소환할 정도다. KGC시절만해도 잘만들어진 팀에서 동료들의 도움도 많이 받고 있다는 평가도 적지않았으나 캐롯 이적후 완전히 달라졌다.
수시로 들어오는 더블팀 등 매경기 쏟아지는 집중 견제를 이겨내고 주포 역할을 잘해냈다. 상당수 공격을 터프샷으로 시도할만큼 수비 압박이 강해지는 상황 속에서도 꾸준하게 성적을 끌어올리며 시즌 중반까지 강력한 MVP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김승기 감독은 그러한 전성현의 능력을 전술적으로도 잘 활용했다.
KGC시절부터 상대 수비를 끌고다니는 능력이 상당했던 전성현을 이용해 다수의 오픈 찬스와 슛기회를 만들어냈다. 지나치게 전성현을 의식하다가 다른 곳에서 슛이 터지고, 그렇게되자 수비 방향을 살짝 바꾸면 또 전성현이 펄펄 날고…, 상대팀 수비진을 정신없이 뒤흔들어대던 캐롯 양궁부대는 그렇게 완성될 수 있었다.
이렇듯 올시즌 캐롯 농구에서 전성현은 빠질 수 없는 존재인데 아쉽게도 현재는 그가 없이 6강 플레이오프를 치르고 있는 중이다. 달팽이관 이상에 따른 돌발성 난청이 발견되면서 시즌 막바지부터 자리를 비우고 있다. 빠르면 3차전부터 합류한다고는 하지만 장담할 수 없고 또 돌아온다해도 경기력이 올라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공산도 크다. 최소 6강 플레이오프에서는 에이스 모드 전성현을 기대하기 쉽지않아졌다.
그런 상황에서 1차전을 무력하게 내줄 때까지만 해도 6강 대진에서 캐롯이 생존할 가능성은 적어보였다. 그렇지않아도 전력에서 앞서는 거대한 상대를 맞아 자신들이 쓸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패가 막혀버렸기 때문이다. 양궁 농구의 중심축이 빠진가운데 3점슛 성공률은 13.9%로 바닥을 찍었다. 위기에 강한 승부사 김감독도 이번 만큼은 어려워보였다.
위기의 캐롯을 다시금 수면위로 끌어올린 것은 프로 2년차 듀얼가드 이정현(23‧187cm)이었다. 이정현은 당초부터 김감독이 차세대 에이스로 키우려고 점찍어놓은 선수다. 군산고 시절부터 동나이대 최고의 가드로 불렸던 특급 기대주로 연세대학교를 거치면서 동명이인인 삼성 이정현에 버금가는 대형 선수로 성장할 것이다는 기대를 받고 있다.
캐롯이 플레이오프까지 올라온 배경에도 전성현과 더불어 토종 원투펀치로 활약해준 이정현의 역할도 컸다는 평가다. 올시즌 정규리그에서 52경기를 소화하며 평균 15.02득점, 4.23어시스트, 2.60리바운드, 1.69스틸(전체 2위)로 전방위 활약을 펼쳤으며 3점슛 또한 경기당 2.12개를 기록했다. 전성현이 외곽슛에 특화된 슈터라면 이정현은 내외곽을 오가며 이것저것 고르게 활약을 펼칠 수 있는 올 어라운드 플레이어 스타일이다.
때문에 김감독은 이번 6강 시리즈에서 전성현의 빈자리를 이정현에게 맡길 뜻을 밝혔다. 전성현이 그랬듯 캐롯의 농구가 제대로 펼쳐지기 위해서 누군가는 상대 수비를 몰고 다니면서 공격의 리더를 맡아줘야하는데 팀내 토종 선수 중 그런 역할이 가능한 이는 이정현 밖에 없다. 프로에서는 초년병이지만 이정현은 학창시절 내내 에이스 역할이 익숙한 선수다. 때문에 6강의 키플레이어 중 한명으로 언급이 되자 부담스러워하기보다는 투지부터 불태우는 모습을 드러냈다.
의욕이 지나쳤던 탓일까. 1차전 당시 이정현은 21득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을 기록했다. 자유투와 2점슛은 좋았으나 3점슛을 8개 던져 한개도 적중시키지 못했다. 캐롯의 양궁농구가 터지지 못한 데에는 그의 지분도 컸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대부분 득점이 후반에 집중된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전반에는 페이스가 좋지 못했다.
이에 김감독은 이정현에게 욕심을 내도 좋으니 좀 더 자신감있게 공격에 임할 것을 주문했다. 어차피 이정현이 터지지않으면 다른 수도 없었다. 2차전에서 이정현은 이를 악물었다. 풀타임에 가까운 38분 36초를 소화하면서 34득점, 3리바운드, 2어시스트, 2스틸로 펄펄 날았다. 3점슛은 11개를 던져 4개(성공률 36.4%)를 성공시켰다.
이정현은 본래 슈팅가드지만 프로에서는 1, 2번을 겸하고 있다. 1번으로 플레이해본 경험이 짧아 리딩, 패싱센스 등에서는 높은 점수를 받지못하고 있으나 기본적으로 볼핸들링이 안정되어있고 BQ가 좋아 전천후 듀얼가드로서 나날히 성장하고있는 모습이다. 승리의 주역이 되었던 2차전 때도 그랬다.
이정현은 전천후로 현대모비스 수비를 흔들었다. 과감한 돌파로 끊임없이 림어택을 노리면서도 타이밍을 빼앗는 미드레인지로 수비진을 교란시켰으며 찬스다 싶으면 외곽에서도 자신있게 3점슛을 던졌다. 어디 그뿐인가. 자신보다 작거나 비슷한 사이즈의 상대가 매치업이 되었다싶은 순간에는 탄탄한 몸에서 뿜어져나오는 파워를 앞세워 적극적으로 포스트업을 치며 공격 루트를 다양화 했다.
이정현이 끊임없이 흔들어주고 로슨이 골밑 공격과 함께 3점슛도 3개나 적중시키자 현대모비스 수비진도 당황하기 시작했다. 김강선, 한호빈 등도 기회다 싶으면 적극적으로 3점슛을 던졌다. 이러한 이정현의 대활약에 캐롯 팬들도 신이 났다. 한 팬은 ‘슈퍼스타 이정현’이라는 팻말을 가슴에 품고 있었는데 이날 활약상을 봤을 때 딱 들어맞는 표현이었다는 평가다. 캐롯의 차세대 에이스이자 한국농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주역중 한명인 이정현이 이번 시리즈를 통해 얼마나 더 성장할 수 있을지 지켜보자.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Copyright © 점프볼.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