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은 어떻게 공론장을 무너뜨렸나 [새로 나온 책]
우리 모두 댓글 폭력의 공범이다
정지혜 지음, 개마고원 펴냄
“개별 댓글의 ‘참을 수 없는 하찮음’이 한 사람을 매장해버리는 위력을 갖는 순간 역시 포착하고 싶었다.”
악플을 두고 사회적 살인 혹은 사이버 테러라 부른다. 보기 싫은 댓글을 안 보는 걸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 ‘여론’으로 둔갑한 폭력적 댓글 문화가 정치적으로 활용되고, 사람을 실제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댓글 공격의 피해자이기도 했던 저자는 “댓글창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공론장을 망가뜨리는 최악의 적”이라고 말한다. 남성은 왜 여성보다 댓글을 세 배나 더 많이 쓰는가. 왜 여성 기자에게 더 많은 악플이 달리는가. 책은 단순히 댓글 문화에 대한 분석을 넘어 한국의 온라인 공론장이 어떻게 성별화되어 있는지로 나아간다. 황폐해진 공론장을 재건하기 위한 공동체적 노력을 고민하게 된다.
프리즌 서클
사카가미 가오리 지음, 김영현 옮김, 다다서재 펴냄
“공존하는 사회를 목표한다면,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일본에는 관민 혼합 운영형 교도소인 ‘사회복귀촉진센터’가 있다. 강력한 처벌만이 아니라 교정과 교육에 좀 더 초점이 맞춰진 교도소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저자는 이 중 한 곳인 ‘시마네 아사히’ 사회복귀촉진센터에 방문한다. 첫날, 수용자로부터 자신의 작품에 대한 질문을 받은 그는 충격에 빠진다. 일본 교도소의 특징은 ‘침묵’이기 때문이다. 수용자들이 존칭으로 불리고,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대화를 나누는 건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이곳에서의 경험과 취재를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 영화도 발표했지만 한국에는 정식 개봉되지 않았다.
블랙 핸드
스테판 탈티 지음, 허형은 옮김, 문학동네 펴냄
“검은손은 어디에나 있지만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조지프 페트로시노. ‘이탈리아의 홈스’라고도 불렸던 형사. 그가 뒤쫓던 범죄 조직 ‘검은손 협회(The Black Hand Society)’는 암살과 폭탄테러를 일삼았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의 아이를 납치한 뒤 집을 팔아서라도 몸값을 구해오라는 요구를 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검은손 협회 때문에 이탈리아계 이민자에 대한 반발감이 커지자 당시 이탈리아 국왕이 페트로시노에게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상의하는 편지를 보냈을 정도다. 같은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서 페트로시노는 온 힘을 다해 그들의 범죄를 저지하려 한다. 논픽션 작가가 그의 삶을 재구성했다.
서평가의 독서법
미치코 가쿠타니 지음, 김영선 옮김, 돌베개 펴냄
“책은 우리 대 그들이라는 반사적인 생각을 미묘한 차이와 맥락에 대한 인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서문만 읽고도 사랑에 빠지는 책들이 있다. 〈서평가의 독서법〉을 그 목록의 앞줄에 놓는다. 저자가 비평 분야 퓰리처상을 받았고, ‘영어권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서평가’로 불리는 사람이어서만은 아니다. “비평가보다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책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짚어가며 고른 책 99권의 목록(목차)에 나의 독서 지도를 겹쳐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은 새로 소개받고, 이미 읽은 책은 어떻게 다르게 읽었는지 확인하며 순서 없이 읽기를 권한다. 간결하고, 정확하고, 아름다운 글이 또 다른 책을 불러 모은다.
기후를 위한 경제학
김병권 지음, 착한책가게 펴냄
“경제학은 기후위기를 무시해왔거나 지나치게 과소평가했다.”
지난 대선 토론회에서 화제가 된 RE100을 당시 윤석열 후보만 몰랐던 것은 아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ESG와 RE100 같은 말이 급속도로 퍼졌다. 우리는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도 환경과 재생에너지를 중시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런데 경제와 기후위기를 접목시키기만 하면 과연 바람직한 해법이 나올 것인가. 정의당에서 기후정책과 그린경제 등을 책임졌던 저자는 생태경제학이라는 학문을 소개한다. “지구 생태계 한계 안에서 인간의 경제가 존재해야 한다”라는 원칙을 가진 생태경제학은 현대 사회에 대한 풍부한 질문을 담은 학문이다. 저자가 기후위기 해법을 내놓고자 치열하게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어딘가에는 살고 싶은 바다, 섬마을이 있다.
윤미숙 지음, 남해의봄날 펴냄
“얼마나 자주, 가까이에서, 낮은 자세로 경청했는가.”
남해안 다도해에는 수많은 섬이 있다. 그곳을 가고 싶은 섬으로, 살고 싶은 섬으로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섬마을 기획자가 있다. 통영 동피랑 벽화마을, 강구안 푸른 골목 만들기 사업을 기획한 걸로 유명한 저자는 늘 이런 질문을 받는다. “그게 뭐 하는 거예요?” 지방의제, 도시재생 같은 말을 아무리 설명해도 직접 보는 것만 못했다. 연대도·욕지도 등 곳곳의 섬을 돌며 일하던 어느 날, 8년간 일해온 곳에서 해고 통지를 받았다. 단체장이 바뀐 다음 날이었다. 부당해고 소송에서 승소했지만 복직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휴식을 취하던 그에게 ‘섬마을 가꾸기 사업’ 제안이 온다. 그렇게 전남 무안 남악마을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시사IN 편집국 editor@sisain.co.kr
▶좋은 뉴스는 독자가 만듭니다 [시사IN 후원]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