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트의 기적' 감독도 포기했던 순간, 투혼 발휘한 도로공사 선수들

16-21서 뒤집기 쇼…김종민 감독 "박정아 쉬게 할까 생각도"
이제는 '패패승승승' 첫 사례 도전…"분위기는 넘어왔다"

(김천=뉴스1) 권혁준 기자 = "솔직히 포기했다."

김종민 한국도로공사 감독이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 4세트에서 나온 '대역전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감독마저 포기한 그 순간, 선수들은 놀라운 투혼을 발휘해 경기를 뒤집었다.

챔프전 첫 2경기를 패하며 우승확률 '0%'가 됐던 도로공사는 이제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던 역전 우승에 도전한다.

도로공사는 4일 경북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도드람 2022-23 V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5전 3선승제) 4차전에서 세트스코어 3-1(22-25 25-21 25-22 25-23)로 승리했다.

3차전과 같은 패턴이었다. 1세트를 아쉽게 내줬지만 2~4세트를 내리 따내며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특히 4세트는 엄청난 뒷심을 발휘했다. 세트 내내 내내 끌려갔고 막판까지 16-21까지 몰렸던 것을 역전했기 때문이다.

도로공사로서는 세트스코어 2-1로 앞서고 있었기에 4세트를 내주더라도 5세트를 노려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어느 누구라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일 듯 했다.

김 감독의 생각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이에 잠시 휴식을 줬던 주포 박정아를 다시 들여보내지 않을 생각도 했다.

그는 "점수차가 조금 더 벌어지면 정아를 다시 투입하지 않으려고 했다"면서 "그래도 다음 세트(5세트)를 준비할 겸 해서 넣었는데 흐름이 이상해지더라"고 돌아봤다.

도로공사 특유의 끈질긴 수비가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흥국생명 '쌍포' 김연경과 옐레나 므라제노비치의 공격을 연거푸 받아내며 추격에 나섰다. 4세트에만 무려 40개의 디그를 성공시키며 상대 공격성공률을 크게 낮췄다.

수비가 받쳐주자 박정아와 캐서린 벨(등록명 캣벨), 배유나의 '삼각편대'가 힘을 냈다. 5점차를 기어이 따라붙은 도로공사는 23-23에선 캣벨이 연거푸 2번의 공격을 성공시켜 역전승을 완성했다.

김 감독은 "끈질기게 받아 넘겨서 상대 범실을 유도하는 게 우리 스타일"이라면서 "정규시즌 때도 보면 세트가 가장 많았다. 힘들게 배구를 한다"며 웃어보였다.

1, 2차전 패배로 벼랑 끝에 몰렸던 도로공사는 홈에서 열린 3, 4차전을 잇따라 잡아내며 이제 상대도 함께 벼랑에 몰았다. 승부를 최종 5차전으로 끌고갔다.

역대 V리그에서 남녀부를 통틀어 '리버스 스윕'으로 우승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1차전을 패한 뒤 내리 세 경기를 잡거나 1승2패에서 역전 우승을 한 적은 있어도 첫 2경기를 패한 뒤 내리 2경기를 잡는 '패패승승승'의 역사는 한 번도 없었다.

당장 올 시즌 남자부만 봐도 첫 2경기를 잡은 대한항공이 3차전에서 경기를 마무리했다. 남자부는 9차례, 여자부는 5차례나 1, 2차전 승리팀이 최종 우승했다.

도로공사는 아무도 쓰지 못했던 '새 역사'에 도전하는 셈이다. 2연패 뒤 2연승을 거둔 팀 조차 없었다는 점에서 이미 역사는 쓰여졌다.

김 감독은 "여전히 쉽지는 않다고 생각하지만 0%의 확률에 도전은 할만해졌다. 분위기가 올라왔다"면서 "5차전도 재미있는 경기가 될 것 같다"고 했다.

도로공사 선수들도 4차전 4세트처럼, 또 한 번의 기적에 도전한다. 올 시즌 정규시즌 3번, 챔프전 2번 등 5전 5패의 기억이 있는 '인천 원정'에서의 승리다.

박정아는 "흥국생명 홈 팬들이 워낙 많아 주눅드는 느낌이 있었는데 5차전까지 온 이상 이제 기죽을 이유도 없다"면서 "지금까지 해왔듯이 웃으면서 재미있게 하다보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캣벨도 "4차전이 홈 최종전이라는 생각으로 힘을 냈다면, 5차전은 시즌 최종전이라는 생각을 하겠다. 그렇게 하면 오늘처럼 결과를 성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양 팀의 운명을 가를 챔프 5차전은 6일 오후 7시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열린다.

starburyny@news1.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