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더와 이우환, 동서양 미술거장 국제갤러리서 나란히 개인전

황희경 2023. 4. 5.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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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움직이는 조각 '모빌'(mobile)을 창시해 20세기 조각사에 한 획을 그은 알렉산더 칼더(1898∼1976). 사물을 있는 그대로 놓아두는 것을 통해 사물과 공간, 위치, 상황, 관계 등에 접근하는 미술운동인 '모노하'(物派)를 이끈 이우환(87).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지난 4일 동서양 두 미술 거장의 개인전이 함께 시작됐다. 두 전시는 개별적으로 진행되지만, 공간이 중요한 요소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기도 하다.

칼더의 1940∼1970년대 모빌과 과슈 작업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리는 알렉산더 칼더전에 전시된 브론즈 작품들. 2023.4.5 zitrone@yna.co.kr

칼더가 움직이는 조각을 처음 선보인 것은 1931년이었다. 여기에 '모빌'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마르셀 뒤샹이었다. 초기 모빌은 모터로 움직였지만 칼더는 이내 기계 장치를 없애고 지금과 같이 공기의 흐름으로 움직이는 작품을 내놨다.

전시는 천장에 여러 모양의 오브제를 줄로 매단 전형적인 모빌 작품을 비롯해 바닥에 고정된 채 움직이는 스탠딩 모빌(스태빌) 등 1940∼1970년대 모빌과 과슈 작업으로 꾸며졌다.

모빌은 '후'하고 불어넣는 날숨 같은 작은 공기의 흐름에도 반응하며 천천히, 우아하게 움직인다. 때로는 줄에 매달린 오브제들이 서로 부딪혀 소리가 나기도 한다. 소리는 때로 아름답지 않고 거칠다. 이 역시 칼더가 의도한 것이다.

전체를 브론즈(청동)로 만든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1944년 대형 콘크리트 조각 작업의 모형 격으로 만든 것으로, 실제 조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다.

알렉산더 칼더, 'Guava', 1955(왼쪽), 'The Signed Balloon', 1969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모빌 작업 외에 잉크와 과슈로 작업한 회화도 여러 점 나왔다. 조각과 과슈 작업실을 따로 둔 칼더는 에너지를 많이 쓰는 조각 작업을 한 뒤 과슈 작업실로 옮겨가 에너지를 풀어냈다. 음양 무늬나 나선형이 주류를 이루는 과슈 작업은 마치 수행처럼 이뤄졌다.

모빌은 고정적이지 않고 작품이 놓인 곳에서 순간순간 공기 흐름에 반응하며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런 칼더의 작품에 대해 칼더의 외손자인 샌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은 "과거의 기억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중요성을 상기시킨다"면서 "칼더는 자기 작품이 공간과 함께 상호작용하는 존재로, 현재의 예술로 느껴지길 원했다"고 설명했다.

칼더 작품 소개하는 칼더재단 이사장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4일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샌디 로워 칼더재단 이사장이 칼더의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 2023.4.5 zitrone@yna.co.kr

돌과 철판, 돌과 돌…이우환의 조각 '관계항'

이우환은 미술 시장의 최고 인기작가지만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오롯이 볼 수 있는 개인전이 자주 열리지는 않는다.

이번 전시는 2009년 역시 국제갤러리에서 열렸던 개인전 이후 14년 만에 국내에서 열리는 작가의 개인전이다. 1980년대 작품부터 근작까지 조각 6점, 드로잉 4점을 선보인다.

전시의 주인공은 조각이다. 1968년 시작한 '관계항'(Relatum) 연작의 연장선상에 놓인 작품들의 주재료는 자연을 상징하는 돌과 산업 사회를 대표하는 강철판이다.

(서울=연합뉴스) 황희경 기자 =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 전시된 이우환의 작품 'Relatum-Seem'. 2023.4.5. zitrone@yna.co.kr

'키스'라는 부제의 신작은 사람으로 암시되는 두 개의 돌이 마치 키스하듯이 붙어 있고 이들을 둘러싼 두 개의 쇠사슬 역시 포개지고 교차하는 작품이다.

1996년 일본에서 선보였던 작품을 다시 선보이는 '사운드 실린더'는 속이 빈 강철 원통에 돌이 하나 기대어 있다. 원통에 있는 5개 구멍에서는 새와 천둥, 빗소리, 개울 소리, 에밀레종의 종소리 등이 흘러나온다. 일본 전시 때는 소리가 외부 스피커에서 나오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원통 내부에서 흘러나온다는 점에서 같지만 다른 작품이다.

빈 캔버스 앞에 돌을 배치한 작품에는'∼인 것 같다'는 의미의 영어 단어 '심'(Seem)이란 부제가 붙었다. 그저 캔버스 앞에 돌을 뒀을 뿐인데 돌이 캔버스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기도, 두 사물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전시장 한쪽에는 이우환의 회화 연작 '대화'(Dialogue)를 연상시키는 커다란 점과 간결한 선으로 구성된 신작 드로잉도 함께 걸렸다.

국제갤러리 이우환 개인전 설치 전경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부제로 작품의 의미를 짐작해보지만 여전히 이해가 쉽지 않다면 작가가 2009년 개인전 당시 했던 말을 곱씹어 볼 만하다.

작가는 당시 되도록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작품을 감상하길 권하면서 "물론 모든 사람이 다 작품을 알면 좋겠지만 미술의 '미'자도 모르는 사람들이 보고는 '이게 뭐야' 하더라도 침묵 속에서 공기의 울림을 느낀다면 그걸로 된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전시 모두 5월28일까지 이어진다. 관람은 무료지만 예약해야 한다.

이우환 작가 [국제갤러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zitro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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