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 사고=제2의 급발진’…‘천만원 옵션’인데 핸들 못 놓는 운전자

안태호 2023. 4. 5.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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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벨3, 위급·개입 요청 땐 운전자가 운행
운전주체 바뀔 때 사고 책임소재 불분명
레벨업 미루거나 레벨2.9까지만 고도화
자율주행 시연 모습. 현대자동차 제공

“레벨3 자율주행은 사고 책임 문제에서 제2의 급발진 교통사고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국내 자율주행 교통사고 및 제도를 연구하는 조민제 경찰대학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이 전한 말이다. 급발진은 자동차가 운전자 의도와는 무관하게 급가속하는 현상을 말한다. 급발진 의심 사고가 종종 발생하지만, 국내에서 공식적으로 급발진이 확인된 적은 없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급발진 현상이 존재하지 않고, 소비자 실수라는 입장을 고수해서다. 반면, 급발진 피해를 입었다는 운전자들과 소비자 단체는 현 제도가 급발진을 소비자가 증명하도록 해둔 탓에 원인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급발진 현상을 둘러싼 사회적 비용이 매우 큰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레벨3 자율주행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레벨3 자율주행은 ‘조건부 운전 자동화’ 또는 ‘부분 자율주행시스템’으로 불린다. 고속도로 등 특정 도로 및 정해진 상황에서만 시스템이 차량을 100% 제어하고, 특정 조건에서 벗어나거나 시스템이 더 이상 차량을 제어하지 못할 상황에서는 운전자가 제어권을 넘겨받도록 설계됐다. 언뜻 보면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를 확인하는 건 간단해 보인다. 시스템이 차량을 100% 제어할 때 발생한 사고는 제조사 책임, 운전자가 제어권을 넘겨받았을 때 난 사고는 운전자 책임으로 보면 되지 않을까?

조 연구관은 제조사 책임을 확인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는 “급발진 추정 사고 관련 영상 속에 담긴 차량의 움직임을 사고기록장치(EDR) 정보로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며 “자율주행 차량에는 자율주행기록장치(DSSAD)를 장착하게 되는데, 사고 당시 차량 제어권의 주체 및 교통사고의 책임소재를 분석하려면 자율주행기록장치 데이터를 분석해야 한다. 하지만 국가나 수사기관이 신뢰성 있는 데이터를 확보해 분석 및 인증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정부가 2020년 레벨3 자율주행차 상용화를 위해 안전기준을 만들고, 2022년 9월 모빌리티 혁신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같은 해 말까지 국내 레벨3 자율주행 차량 출시를 예상했지만, 출시 예정 시기가 계속 미뤄지는 이유는 ‘사고 책임’에 대한 명확한 체계가 마련되지 않은 탓이 가장 크다고 한다.

자율주행 제도를 연구하는 전문가 ㄱ씨는 “레벨3 자율주행이 적용된 상황에서 운전자가 커피를 마시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고 했다. 차량을 제어 중인 시스템이 개입을 요청했을 때 운전자는 커피 잔을 내려놓고 운전대를 잡는데 3∼5초가량이 걸렸다. 운전에 복귀하는 몇 초 사이에 난 사고는 누구의 책임일까? 그는 “운전자가 복귀를 준비하는 시간에는 시스템이 제어하는 상황이니 사고 시 제조사 책임이 맞지만, 제조사들이 이 부분을 받아들기 어려워 레벨3 자율주행 출시가 늦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자율주행 관련 제도에 밝은 업계 관계자 ㄴ씨도 같은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는 “시스템이 운전자 개입을 요청해도 반응이 없으면 레벨3 자율주행이 종료되고 차로에 정차하도록 돼 있다. 이때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제조사는 레벨3가 종료돼 제조사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이고, 정부는 ‘차로 정차’ 역시 안전기준에 포함된 내용이어서 제조사 책임이라고 본다”며 “레벨3 자율주행이 꺼지면서 발생하는 사고에 대해 어디까지 제조사가 책임져야 하느냐를 두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3월 제네시스 지(G)90에 레벨3 자율주행을 2022년 말까지 탑재하겠다고 발표했으나, 아직까지도 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제조사들은 레벨3 자율주행을 적용하더라도, 운전자 의무 및 가동 조건을 세세하게 규정할 가능성이 크다. 제조사가 책임을 피할 수 있게 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벤츠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조민제 연구관은 “레벨3 개념을 보면, 운전자가 시스템에 운전을 맡기고 전방 주시를 하지 않고 주행에 관련되지 않은 행동을 해도 되지만, 벤츠는 레벨3 자율주행을 출시하면서 차량에 탑재된 미디어 시스템을 이용하는 경우로 (운전자 행동을) 한정했다. 제어권 전환 경고를 바로 인지해 운전에 복귀하라는 의미”라며 “벤츠는 레벨3 시스템 발현에 많은 제약을 걸어뒀다. 사고 발생 시를 철저하게 대비해 출시한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벤츠는 지난해세계에서 두번째로 레벨3 자율주행을 상용화한 바 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60㎞ 속도까지 레벨3 자율주행이 가능하다. 일본 혼다가 2021년 레벨3 자율주행차를 출시해 세계 최초 타이틀을 가져갔지만, 단 100대를 정부에 납품하는 데 그쳤다. 이에 벤츠가 사실상 세계 최초로 레벨3를 상용화했다고 평가받는다.

제조사들은 레벨3가 도입되면 마치 운전자가 운전에서 완전히 해방되는 것처럼 마케팅하고 있다. 하지만 운전자는 사고 시 과실에서 자유로우려면 레벨2 자율주행 때와 마찬가지로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셈이다. 레벨2 자율주행은 운전 보조 시스템에 그친다. 현대자동차그룹의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가 여기에 해당한다.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에 맞춰 자동으로 주행하며, 앞차와의 간격과 차로도 알아서 유지해주지만, 보조 기능에 불과해 운전대에서 손을 떼서는 안된다. 사고 책임도 모두 운전자에게 있다.

이처럼 완전한 자율주행을 경험하기 어려운데도 레벨3 자율주행 옵션 가격이 1천만원대에 이르는 점도 상용화의 걸림돌이다. 벤츠의 레벨3 자율주행 옵션 가격은 5000∼7430유로(709만∼1053만원)에 이른다. 레이저를 쏘아 주변 사물을 인식하고 거리를 측정하는 ‘라이다’(Lidar) 가격이 비싸서다. 자율주행 개발 초기에는 대당 1억원에 달했던 게 최근엔 수백만원대까지 내려왔지만, 여전히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게다가 라이다는 차량 앞 범퍼에 장착돼 단순 접촉사고가 발생해도 라이다를 교체해야 해, 운전자 부담이 더 커진다.

이런 흐름에 따라 제조사들이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하되 레벨2에 머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업계 관계자 ㄷ씨는 테슬라를 예로 들었다. 테슬라는 자사 자율주행 기술 명칭을 ‘풀 셀프 드라이빙’(완전 자율 운전·FSD)으로 지어 놓고도 ‘보조기능’이라 강조한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이미 레벨3 자율주행 기술에 도달했지만, 책임을 피하기 위해 레벨2라고 주장한다고 본다. 이 관계자는 “테슬라는 자사 기술이 레벨2라고 끝까지 우기고 있다”며 “나머지 제조사들도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레벨3를 도입하기보다 레벨2.8, 레벨2.9 등 고도화된 레벨2로 방향을 잡자는 게 최근 동향이다. 벤츠나 베엠베(BMW) 등 완성차 회사들이 국제회의에 와서 레벨3·4를 논의하지 말고 레벨2 고도화를 논의하자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다”고 전했다.

기아는 최근 첫 대형 전기 스포츠실용차(SUV) ‘이브이 나인’(EV 9)을 공개하면서 올해 하반기를 목표로 레벨3 자율주행 기술 ‘고속도로 자율주행’(HDP)을 출시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사고 책임 문제에 대한 구체 규정이 마련돼야 출시가 가능한 상황이다. 지난 30일 2023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만난 조병철 기아 국내상품실장(상무)은 <한겨레>에 “우리나라에 아직 법규 제정이 안된 부분이 많다. 규정이 마련 된 뒤에야 레벨3 기능을 탑재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고 말했다.

안태호 기자 e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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