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 조작’ 가능성 놔두고…‘수신료 분리징수’ 띄우는 대통령실
찬반 투표결과 왜곡할 가능성
대통령실 “대규모 조작 불가능” 해명
여권발 ‘공영방송 길들이기’ 지적
대통령실이 ‘국민제안’ 누리집을 통해 티브이(TV) 수신료 징수 방식에 관한 의견을 모으는 가운데, 국민제안 누리집 투표 시스템에서 동일인의 중복 투표(어뷰징)가 가능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가 티브이 수신료 분리징수 논의를 앞세워 ‘공영방송 길들이기’를 시도한다는 비판이 제기된 데 이어, 국민제안 투표 결과에 대한 신뢰도 논란도 뒤따를 것으로 보인다.
4일 <한겨레> 취재를 종합하면, 대통령실이 지난달 9일 국민제안 누리집의 ‘국민참여 토론’ 코너에 올린 ‘티브이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 관련 화면에서는 여러 에스엔에스(SNS) 계정 등을 이용한 동일인의 중복 응답이 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화면에서 비로그인 상태로 추천 혹은 비추천을 누르면 국민권익위원회가 운영하는 ‘국민생각함’ 누리집의 로그인 시스템으로 연결되는데, 여기서 카카오톡과 네이버, 페이스북, 구글, 국민생각함 자체 아이디 등으로 각각 로그인한 뒤 중복으로 찬반(추천·비추천) 투표를 하거나 이름을 바꿔가며 여러 의견 댓글을 남기는 게 가능하다.
특히 구글은 본인 인증 절차 없이 다수의 계정 생성을 허용하는데, 이 점을 이용해 반복적으로 응답하는 것도 가능했다. 실제로 한겨레가 구글에서 ‘김하니(gimhani)’라는 가명에 4자리 숫자(0331·0431·0531·0631·0731)를 더해 5개의 계정을 만든 뒤 총 5회의 찬성 투표를 시도해보니, 모두 아무 문제없이 결과에 반영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견 댓글 역시 여러번 쓸 수 있었다. 구글 계정 5개를 만들어 투표하는 데까지 걸린 시간은 채 5분이 되지 않았다. 시간적 여유만 주어진다면, 이론적으로는 몇몇 사람이 투표 결과 자체를 바꾸는 것도 가능하다. 매크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조작은 훨씬 쉬워질 수 있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9일 국민제안 누리집을 통해 전기요금과 통합 징수되는 티브이 수신료 징수 방식에 관한 국민 의견을 듣겠다고 나섰다. 대통령실은 ‘TV 수신료 징수 방식 개선’ 제목의 글에서 “대부분 가정에서 별도 요금을 내고 아이피티브이(IPTV)에 가입해서 시청하거나 넷플릭스 같은 오티티(OTT)를 시청하는데, 전기요금 항목에 의무적으로 수신료를 납부하는 방식은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며 이에 관한 생각과 의견을 들려달라고 했다. 대통령실은 오는 9일까지 의견을 수렴한 뒤, 그 결과를 관련 부처에 전달할 계획이다.
4일 기준으로 수신료 분리 징수 방안에 대한 찬성 의견(추천)은 4만1천여건, 반대 의견(비추천)은 1600여건으로 찬성이 압도적으로 많다. 의견 댓글은 4만8천여건에 이른다. 여론조사 전문가 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은 “정파적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곳에서 민감한 사회 현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물으면, 해당 진영 지지층이 더 많이 몰릴 수밖에 없다”며 “게다가 중복 응답까지 허용되는 방식의 조사였다면, 그 결과에 의미를 부여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제안 누리집의 어뷰징 문제는 지난해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대통령실은 2022년 6월 시민들의 민원 제안 10건을 국민제안 투표에 부친 뒤 득표순으로 우수 제안 3건을 선정해 정책에 반영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실제 투표 결과를 보니 최다 득표를 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 안건(57만7415표)과 최저 득표를 한 ‘외국인 가사도우미 취업비자 허용’ 안건(56만784표)의 차이가 크지 않았다. 특정 제안을 채택시킬 목적으로 추천수를 조작하는 여론 왜곡, 곧 어뷰징 시도가 있었던 것이다. 이에 대통령실은 ‘어뷰징 사태’를 이유로 우수 제안 선정을 백지화하고, 실명제 도입 등 제도적 해법을 찾겠다고 했다. 지난 1월 ‘국민제안 보고서’ 첫 장에서도 “매크로를 활용한 여론 왜곡 방지 등을 위한 ‘실명제’ 원칙”을 국민제안의 ‘첫번째 운용원칙’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실 관계자는 <한겨레>에 “틀린 지적은 아니지만, 이 일을 지난번 어뷰징 문제와 연결하긴 힘들다. 지금도 실시간 댓글을 모니터링하는데 우려하는 상황은 없고, 대규모 어뷰징은 원천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그 사태 이후 지난 1월 국민제안으로 도서정가제를 주제로 토론할 때부터 에스엔에스 본인 인증방식이 추가됐다”며 “실명 인증과 에스엔에스 인증 가운데 어떤 방식을 채택할 거냐는 정책적인 선택인데, 전반적인 추세는 간편 인증이다. 과도하지 않다면 폭넓은 참여를 보장하는 게 더 타당하기 때문에 (문재인 정부 때) 청와대 국민청원도 같은 방식을 썼다”고 덧붙였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김미나 기자 mi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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