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사막’ 한국 곳곳서 치솟는 대형 산불…안전지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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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불은 저기 동해안 쪽 이야긴 줄만 알았지. 살다 살다 별 난리를 다 겪는구먼."
봄철 강수량이 눈에 띄게 줄면서 산불의 대형화·전국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이시영 강원대 명예교수(방재전문대학원)는 "산림이 울창해지면서 탈 수 있는 연료량이 많아진데다, 봄철 강수일수가 크게 줄어 연료를 건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산불 대형화의 조건이 갖춰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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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철 산불]
“봄 산불은 저기 동해안 쪽 이야긴 줄만 알았지. 살다 살다 별 난리를 다 겪는구먼.”
4일 오전 대전 서구 장안동 장태산 자연휴양림 입구에서 만난 윤아무개(77)씨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불길이 산 아래 집까지 번질까 사흘 밤낮을 불안에 떨었다고 했다. 멀리서 소방 호스를 둘러멘 소방관들이 가파른 산비탈을 힘겹게 기어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2일 낮 시작된 산불은 이날로 사흘째 이어지고 있었다.
봄철 강수량이 눈에 띄게 줄면서 산불의 대형화·전국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기온·습도가 만주·몽골 북부와 유사해 ‘겨울 사막’으로까지 불리는 한반도 내륙의 1~2월 기후 특성에 봄철의 고온건조한 날씨까지 겹치면서 국토 전역에서 산불에 취약한 기후 조건이 갖춰지고 있는 것이다. 산불 피해가 심각한 충남의 경우, 올해 1~3월 강수량은 평년의 44%에 머물렀다.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역대 세번째로 적은 강수량이다. 같은 기간 충북은 평년의 50.9%, 수도권은 64.4%로 사정은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앞서 지난 2일 찾은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동막리 마니산에서도 입구 등산로를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잿더미로 변한 숲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달 26일 오후에 발생한 산불로 울창하던 숲이 한순간 사라지고, 매캐한 탄 냄새와 함께 재 가루만 날렸다. 당시 산불로 축구장 30개 크기의 산림 22㏊가 불에 탔는데, 마니산을 다시 찾은 이날 당시 발화 지점에서 300m 남짓 떨어진 곳에서 다시 불이 나 진화 작업이 진행 중이었다. 이날 불은 앞서 마니산을 휩쓸었던 산불의 불씨가 바위틈에 남아 있다가 건조한 기후와 바람을 타고 다시 번지는 이른바 ‘뒷불’로 인한 것으로 소방당국은 추정했다.
국내 산불은 최근 들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며, 규모도 대형화하는 추세다. 산림청의 산불 발생 현황을 보면, 이달 1~4일에만 전국에서 57건의 산불이 났다. 지금까지 봄철 대형산불은 동고서저 지형과 기단 분포에 따른 강한 바람(양간지풍) 탓에 강원 동해안에 집중됐지만, 올해는 충청 내륙과 서해안, 수도권 지역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 게 특징이다. 지난 2일 하루에만 서울 인왕산을 포함해 전국 31곳에서 산불이 발생한 게 단적인 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한반도의 산불도 악명 높은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처럼 동시다발·대형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시영 강원대 명예교수(방재전문대학원)는 “산림이 울창해지면서 탈 수 있는 연료량이 많아진데다, 봄철 강수일수가 크게 줄어 연료를 건조시키는 역할을 하게 되면서 산불 대형화의 조건이 갖춰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봄철 기온의 고온화도 원인으로 꼽힌다. 실제 서울의 3월 평균기온은 9.8도로 최근 30년 평균보다 3.7도나 높았다. 1907년 관측 이래 최고치다. 충남 홍성도 최근 10년간 3월 평균기온이 6.19도로 1980년대에 견줘 2도 정도 높았다. 기온이 높으면 지표면과 수목에서 대기로 빠져나가는 수증기량이 많아져 불이 붙기 좋은 환경이 된다. 임주훈 한국산림복원협회장은 “보통 엘니뇨 해에 산불이 심했는데, 이상기후로 큰 산불 주기도 엘니뇨와 상관없이 점점 짧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정하 기자 jungha98@hani.co.kr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최예린 기자 floy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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