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방살이 끝 '대세'된 한국관…한국어 열풍 뜨거운 이 나라

파리(프랑스)=정현수 기자 2023. 4. 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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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교육으로 번진 프랑스 한류
[편집자주] 프랑스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국가로 꼽힌다. 한류도 프랑스에서 확산되며 다양성의 한 축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분명한 건 한국의 위상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점이다. 한글을 배우는 교실이 급증하고 있는게 대표적이다. 그 현장을 직접 둘러봤다.
"존댓말이 가장 어려워요"…한국어 가르치는 프랑스高 가보니

프랑스 클로드모네 고등학교 한국어반을 담당하고 있는 조윤정 교사가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다 /사진=정현수 기자
"존댓말이 가장 어려워요."

프랑스 파리 시테대학 한국학과에 다니는 이만 엔고보(Iman Engobo)는 유창한 한국말로 한국에서 온 취재진을 맞이했다. 그는 "3년 정도 한국어를 배우니 소통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엔고보가 한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운 건 파리 클로드모네 고등학교를 다닐 때다. 엔고보를 만난 것도 클로드모네 고등학교에서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방문한 클로드모네 고등학교에선 한국어 수업이 한창이었다. 20여명의 학생들이 한국인 교사의 지도 아래 수업을 듣고 있었다. 클로드모네 고등학교는 7개의 외국어를 가르친다. 한국어도 그 중 하나다. 아시아인들이 많이 사는 파리 13구에 위치하고 있는 학교지만 한국어 수업을 듣는 학생은 대부분 외국인이었다.

한국어 수업은 '경험에 대해 묻고 답하기'라는 주제로 이뤄졌다. 교사는 한국말만 사용해 베르사유 궁전과 경복궁 사진을 보여주며 "어디예요?", "가봤어요?", "어땠어요?" 등의 질문을 쏟아냈다. 이후 센강과 한강, 에펠탑과 남산 등을 비교하며 수업을 이어갔다. 교사의 질문에 학생들은 성실하게 한국말로 답변했다.

프랑스 파리 13구에 위치한 클로드모네 고등학교의 모습. 한국 방문단의 방문을 기념해 태극기를 걸어뒀다 /사진=정현수 기자

클로드모네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반 3학년 수업을 듣고 있는 리자 타르(Lisa Tarr)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한국 문화에 관심을 가졌다"며 "케이팝(K팝) 춤이나 한복 등에 관심을 가지면서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한국어를 배우는데 어려움이 없었냐는 질문에는 "긴 단어가 조금 어려웠는데 특별히 어려운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날 한국어 수업을 들은 학생은 20여명이지만, 클로드모네 고등학교의 한국어반 수강생은 총 47명이다. 인근 학교 학생들도 수업을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클로드모네 고등학교는 2017년 한국어 과목을 제2외국어로 채택했다. 프랑스 교육당국은 같은 해 한국어를 한국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할 수 있는 바칼로레아 정식 과목으로 채택했다.

미셀 세르보니(Michel Cervoni) 클로드모네 고등학교 교장은 "아카데미(한국의 교육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게 어떻겠냐는 제안이 와서 한국어 과목을 운영하게 됐는데, 한국어 과목을 채택하고 난 후에 상당히 만족스럽다"며 "학생들에게 특정한 언어를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학생들의 다양한 선택을 보면 흥미롭다"고 강조했다.

클로드모네 고등학교 도서관의 모습. 한국어로 된 책이 보인다. /사진=정현수 기자

한국어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에게도 한국어는 더 이상 미지의 언어가 아니었다. 한국인 취재진이 자신들의 학교를 방문한다는 사실을 미리 알고 있었던 영향이겠지만, 한국어 수업을 듣지 않는 학생들도 학교 앞에서 만난 취재진들에게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는 인삿말을 건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프랑스에서 한국어반을 운영하고 있는 학교는 총 60곳이다. 2018년(17곳)과 비교하면 3.5배 가량 늘었다. 현재 프랑스에서 일본어를 선택한 학교는 70개 수준이다. 최근 추세대로라면 조만간 한국어가 일본어를 앞지를 전망이다. 한국어반 수업을 듣는 학생도 2018년 631명에서 2022년 1800명으로 빠르게 늘고 있다.

이처럼 프랑스 내에서 한국어의 위상이 높아진 것은 K팝으로 대표되는 한류의 영향이다. 클로도모네 고등학교에서 한국어반을 담당하고 있는 조윤정 교사는 "한국어반 개설 초기에는 1년마다 학생수가 2배씩 계속 증가했다"며 "지금은 학생수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일본어 추월은 시간문제"…프랑스인 '한국어' 사랑 이 정도였어?

해외 초·중등학교의 한국어반은 해를 거듭할수록 빠르게 늘고 있다. 문화콘텐츠의 영향으로 한국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이 커진 영향이다. 정부도 교원 파견 등을 통해 해외에서 한국어 교육의 내실화를 꾀하고 있다. 하지만 보다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4일 교육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어반을 운영하는 해외 초·중등학교는 43개국에서 1928곳에 달한다. 2018년 말에 한국어를 운영하는 해외 초·중등학교가 28개국에서 1495곳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의 한국어반 개설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교육부 관계자는 "해외 초·중등학교에 한국어를 제1·2외국어로 채택할 수 있도록 지원해 한국의 국제적 위상 강화 및 외국인 유학생 유입 등 글로벌 인재 확보 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며 "1999년부터 한국어가 정규과목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외 학교의 한국어반은 제1·2외국어 채택, 대입과목 채택, 정규교과 시범운영, 방과후교실 등의 방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정부는 2021년 '해외 초·중등학교 한국어 교육과정'을 개발하고 주로 아시아 국가들을 대상으로 맞춤형 교재를 보급했다.

유럽은 최근 들어 한국어반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지역이다. BTS(방탄소년단)로 대표되는 한류 콘텐츠의 영향이라는 게 현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특히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도 한국어반이 가장 많은 곳이다. 2021년을 기준으로 프랑스의 한국어반은 53곳이다. 영국(45곳), 독일(31곳)이 그 뒤를 이었다.

프랑스의 한국어반은 정규수업과 아틀리에(방과후 수업)로 나뉜다.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한국어반 정규수업은 25개 학교에서 진행된다. 정규수업의 경우 프랑스 교육청에서 전액 지원하는 방식이다. 반면 35개교에서 진행하는 아틀리에는 프랑스한국교육원이 맡고 있다.

프랑스한국교육원 관계자는 "프랑스의 정책상 외국어 교육은 해당 언어권의 역사·문화 등에 이해가 선행돼야 하므로 한국어 아틀리에 수업을 먼저 개설해 한국에 대한 전반적 이해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며 "아틀리에 학교를 늘려 이를 정규수업으로 전환하는게 가장 큰 미션"이라고 설명했다.

프랑스 초·중등학교의 한국어반이 늘자 덩달아 대학의 한국 관련 학과도 경쟁률이 높아지고 있다. 한국학을 종합학과로 운영하는 프랑스의 시테대학과 이날코대학의 경우 한국학과의 경쟁률이 20대1에 이른다. 보르드몽테뉴대학의 한국어학과 경쟁률은 35대1 수준이다.

프랑스 내의 한국어반이 늘고 있지만 현지 교사 임용시험에 한국어 과목은 없는 상황이다. 한국어반 교사들의 신분이 시간 강사라는 의미다.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보르도몽테뉴대학, 연세대 협업을 통해 사범대학 과정 운영을 지원하고 있다.

윤강우 프랑스한국교육원장은 "현재 프랑스에서 일본어를 선택한 학교가 70개 정도 되는데, 일본어를 추월하는 건 시간 문제라고 본다"며 "한국어의 인기가 많아지면서 이 곳의 대학들도 한국어를 배운 학생의 진로를 어떻게 안내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日 100년 전 만든 '파리 국제기숙사'..이제는 '한국관'이 대세

프랑스 파리국제대학촌의 한국관 전경 /사진=정현수 기자
프랑스 파리 남부에 위치한 파리국제대학촌에 들어서면 프랑스 국기와 태극기가 함께 펄럭이는 건물 하나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공원처럼 조성된 부지 곳곳에 자리잡은 나머지 건물들은 다소 노후화된 모습이지만, 9층 높이에 이 건물만은 유독 현대적 감각을 뽐낸다. 2018년 파리국제대학촌 내 준공된 '한국관'이다.

파리국제대학촌은 일반인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프랑스는 1920년부터 세계 각국 청년들의 교류를 촉진하기 위해 다국적 기숙사촌 건립을 추진해왔다. 제1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극복하기 위한 프랑스 정부의 노력이었다. 이는 1925년 프랑스 기업인의 기부로 결실을 맷었고, 당시 처음으로 파리국제대학촌에 기숙사가 들어섰다.

특히 '힘 없는 국가'의 유학생에게 파리국제대학촌은 부러움의 상징이었다. 캐나다(1925년)와 네덜란드(1926년), 스페인(1927년), 미국(1930년) 등 선진국은 일찌감치 파리국제대학촌에 기숙사를 만들었다. 일본만 하더라도 1927년에 일본관을 건립했다.그간 한국 유학생들은 다른 국가의 기숙사촌을 빌려서 이용했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 기숙사의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실제로 파리국제대학촌은 교류를 촉진한다는 당초 취지를 살리기 위해 국가관별로 다른 나라의 학생 30%를 의무적으로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국 유학생에게도 기숙사가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유학생에게도 '우리 기숙사'가 생겼다. 프랑스 정부는 2011년 한·불 정상회담에서 파리국제대학촌에 한국관 건립을 제안했다. 한국 정부도 이를 받아 들여 2018년 한국관이 세워졌다.

파리국제대학촌에 새로운 기숙사가 조성된 건 1967년 이후 처음이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장을 겸하고 있는 윤강우 프랑스한국교육원장은 "선배 유학생들은 한국 기숙사가 없어서 남의 기숙사만 전전했는데, 후배들이 유복한 환경에 놓이게 됐다고 자랑스러워 한다"며 "쾌적한 시설 덕분에 외국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기숙사"라고 강조했다.

한국관 건립으로 파리국제대학촌의 국가관은 26개국으로 28개관으로 늘었다. 60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은 252개실을 보유하고 있다. 식당과 체력단련실, 학습실, 공연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도 갖췄다. 기숙사비는 1인실을 기준으로 월 630유로(약 88만원)다. 파리의 물가를 감안하면 상당히 저렴한 수준이라는 게 유학생들의 설명이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의 공동주방 모습. 두 개 층을 연결한 공동주방을 운영해 학생들의 교류를 촉진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한국관도 파리국제대학촌 규정에 맞춰 객실의 30%를 외국인들에게 배정하고 있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에 입주한 외국인 유학생은 75명이다. 중국인 유학생이 29명으로 가장 많고 프랑스(18명), 폴란드(4명), 세르비아(3명), 베트남(3명) 순이다. 한국관에 들어오는 외국인은 서류적격자 리스트를 바탕으로 국제대학촌 본부 대기자 풀을 활용해 선발된다.

프랑스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는 독일 유학생 라파엘라 쾬러도 한국관에 머물고 있다. 그는 "파리 시내에서 거주하는 비용은 한국관과 비교해 2배 가량 차이 나기 때문에 한국관에 거주하는 것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며 "한국관은 공동주방 등을 운영하고 있어 다른 학생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

파리국제대학촌 한국관은 한국 문화를 전파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프랑스 교민사회는 한국관에서 한국어 강좌와 케이팝(K팝) 댄스 수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경비원이 24시간 상주하면서 택배를 대신 수령해주는 서비스도 외국 유학생들에게 호평 받고 있다.

파리국제대학촌을 함께 둘러본 장상윤 교육부 차관은 "시설이 잘 돼 있고 학생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다고 하니 자긍심도 생긴다"며 "건물을 처음 만들 때 예산이 많이 들어가는데, 운영 관리가 굉장히 힘든 일이기 때문에 프랑스한국교육원에서 열성적으로 잘해주고 있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파리(프랑스)=정현수 기자 gustn99@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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