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기소 축하” “마녀사냥”... 트럼프 보러 수만명 북새통
각국 취재진과 유튜버, 시위대와 경찰 뒤섞여 팽팽한 긴장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오후(현지시각)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 출두하기에 앞서, 이날 오전부터 뉴욕 법원·검찰 앞엔 수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발을 떼기 힘들고 숨쉬기 힘들만큼 붐볐다.
미국은 물론 유럽·아시아·중동·아프리카·남미 등 각국 언론사 기자들과 유튜버 등 수천명이 역사의 현장을 포착하기 위해 법원 앞 2차선 도로 앞에 새벽부터 진을 쳤다. 트럼프 지지자들과 반대자들이 각각 시위를 하러 뉴욕은 물론 전국 각지에서 쏟아져나와 말싸움을 벌였다.
무장한 뉴욕경찰과 연방수사국(FBI) 요원, 법원·검찰 방호원, 사복경찰들이 법원 인근 도로를 막고 철제 바리케이드를 친 채 삼엄한 경계를 펼쳤다. 이들은 지난 2021년 워싱턴 DC에서의 1·6 의사당 난입사태 같은 무력충돌의 재현을 막기 위해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못했다.
법원 상공을 몇 시간째 맴도는 경찰 헬기 소리에 연신 이어지는 구호 시위, 각국 기자들의 생중계 보도 소리, “물러서라” “바리케이드 넘어오지 말라”며 군중을 통제하는 경찰의 명령으로 귀가 먹먹해질 정도였다. 트럼프를 둘러싼 온갖 흥분과 조롱, 분노와 좌절의 감정들이 뒤섞여 형언하기 어려운 팽팽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이날 만나본 트럼프 찬반 시위자들은 그를 둘러싸고 두쪽 난 미국의 현주소를 생생히 보여줬다.
뉴욕 토박이인 60대 여성 리사는 기자에게 “오늘은 좋은 날”이라며 “트럼프가 기소됐으니 이제 유죄 판결 받고 감옥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트럼프는 평생 거짓과 탈법으로 성공해왔으며, 이제 그런 부유한 백인 남성을 위한 시대는 끝났다”면서 “트럼프의 지지자들은 트럼프가 획책한 인종주의를 애국심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똑 같은 뉴요커인 70세 여성 털리사는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는 다른 남자와 성관계 한 것을 트럼프에게 뒤집어씌운다고 생각한다. 트럼프는 무죄”라며 “나는 평생 뉴욕이 트럼프라는 위대한 사업가로 인해 발전하고 좋아지는 것을 봤다. 그리고 대통령이 돼 양당 정치의 틀을 넘어선 정치를 했다”고 했다. 털리사는 “정치인들, 검사·판사들도 중국 돈을 받아먹었는지 트럼프 같은 애국자를 몰라보고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고 했다.
이날 트럼프 지지자들은 성조기를 흔들며 “우리는 트럼프를 사랑한다” “트럼프를 다시 대통령으로” “미국, 미국” 이라고 외쳤다. 일부는 “세상에 성별은 두 개 뿐(Only two genders)”이라는 구호도 많이 외쳤다. 게이와 트랜스젠더 등 제3, 제4의 성을 인정하자는 진보진영에 대한 반감이 트럼프 지지로 이어진 것이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모자를 쓰고 성조기를 몸에 두른 이들은 “브래그(지검장) 뇌물수수 조사하라” “바이든부터 감옥에 넣어라” “기소는 딥스테이트의 음모” “민주당은 파시스트” 같은 피켓을 들었다. 한 여성은 트럼프가 검찰 청사에 들어가 체포됐다는 소식에 “벌써? 얼굴도 못 봤는데”라며 주저앉아 울먹이기도 했다.
트럼프 기소에 찬성하는 이들은 “누구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 “거짓말쟁이는 감옥으로” “이게 마녀사냥이 아니란 건 마녀도 안다” “수많은 범죄 혐의 중 이제 딱 하나 시작한 것일 뿐”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죗값을 받기 시작했다. 모두 축하하자”며 트럼프 탈을 쓴 채 춤을 추고, 북을 치는 이들도 있었다.
이날 찬반 시위대끼리 무력 충돌하거나, 트럼프 지지자들이 법원이나 경찰을 공격하는 등 우려했던 사태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찬반 시위대가 섞이면서 흥분한 이들끼리 욕설을 섞어 서로를 비난하거나 주먹다짐 직전까지 가는 듯한 장면이 여러번 펼쳐졌다. 경찰들이 시위대 사이에 배치돼 폭력 사태를 예의주시했다.
텍사스에서 이틀 걸려 뉴욕에 도착했다는 30대 남성 존은 “트럼프가 반중 전쟁, 규제 완화, 일자리 창출 등 옳은 일을 얼마나 많이 했는데 (검찰이)사소한 사건을 걸어 정치적 기소를 했다”면서 “어떤 정치인이 트럼프처럼 약속을 지켰냐”고 했다. 존은 기자에게 “트럼프가 미북 정상회담을 연 덕에 한국 전쟁이 70년만에 공식 종전되지 않았냐”면서 “한국도 트럼프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빅테크 뉴욕 지사의 데이터 분석가로 일한다는 20대 남성 애린씨는 “트럼프가 무죄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너무 사소한 경범죄로 무리하게 기소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트럼프는 워싱턴의 부패한 정치 구도를 깬 사람인데, 부패한 정부와 언론, 사법체계가 그를 마녀사냥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뉴욕 시민인 20대 여성 벨라씨는 “트럼프는 지난 8년간 미국을 협박하고 법 위에 군림하면서도 자신이 국민을 구해주고 있다는 식으로 가스라이팅해왔다”며 “그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 중 단 하나의 죗값을 치르기 시작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난리들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펜실베이니아에서 온 50대 남성 빌은 “미국 전직 대통령 중 기소된 전례가 없는 것은 트럼프처럼 엄청난 범죄를 많이 저지른 인물이 없기 때문”이라며 트럼프 사법처리는 미국 민주주의를 위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가 이걸 역풍 삼아 정치적으로 얼마나 자기 홍보에 이용할 지, 정말 내년 다시 대통령이라도 되면 어떡할지 걱정”이라고 했다.
워싱턴 DC에서 왔다는 돈씨는 드물게 ‘서로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증오하지 맙시다’란 피켓을 들었다. 그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라가 이렇게 쪼개져 증오가 넘쳐나는 것을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많은 행인들, 심지어 경찰들마저 돈씨의 피켓을 보고 “정말 좋은 말입니다” “당신이 여기서 최고네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포옹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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