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화한 ‘1호 거부권’… 민주 “헌법이 정한 절차 따라 대응”
정부·여당, 거부권 부각 땐 반사이익
줄줄이 대기 중인 간호법·노란봉투법
野 단독 추진… 尹 2, 3호 거부 가능성
총선 1년 앞두고 대치 장기화될 듯
민주당은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따라 재의결 절차를 밟겠다고 밝혔다. 박홍근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헌법과 법률이 정한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며 “국회법은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면 본회의 재표결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정부로부터 재의 요구된 법률안이 이송되면 절차에 따라 재표결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재표결 하더라도 실제 재의결 가능성은 희박하다. 헌법 53조에 따르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법안을 다시 의결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민주당과 정의당, 야권 성향 무소속 의원 전원이 찬성표를 던져도 가결은 어려운 게 현실이다. 115석인 국민의힘이 당론으로 부결 투표에 나서면 재의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당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대 야당의 폭주를 부각할 소재로 활용하고자 하는 모습이다. 내년 총선이 나가오는 상황에서 ‘정권심판론’이 아니라 ‘거대 야당 심판론’을 작동할 명분이 될 수 있어서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서 “민주당이 원안을 재추진하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것에는 ‘대통령이 민생에 거부권을 행사한다’는 프레임으로 현 정부를 계속 공격하겠다는 정치적 의도가 있음을 누구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이날 “여소야대 상황에서 이런 무리한 법을 막을 방법은 재의요구권밖에 없다”며 “(앞으로도) 절차나 법안 내용을 봐서 법안이 의도한 대로 실행되지 않고 국민에게 주는 부담과 폐단이 많은 법이라면 계속해서 (거부권 행사 건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결국 여야의 이런 정치적 득실에 따른 입장 차로 감소세를 보이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사례는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날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제6공화국(1988년 이후) 기준으로 노태우 대통령 7건, 노무현 대통령 6건, 이명박 대통령 1건, 박근혜 대통령 2건에 이은 17번째 거부권 행사 사례로 기록됐다. 김영삼·김대중·문재인 대통령은 한 건도 행사하지 않았다. 윤 대통령 이전 국회 재의결을 거쳐 법률로 최종 확정된 건 ‘노무현 대통령 측근 특검’ 관련 법률안 1건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재의요구권)을 행사한 가운데 여당은 이 법안을 두고 “농가파탄법”이라며 거부권 행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반면 야당은 “윤 대통령이 국민과 농민은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공식적으로 확인됐다”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는 이날 페이스북에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려는 양곡관리법은 궁극적으로 농민들을 더욱 어렵게 할 ‘농가파탄법’”이라며 “농업 경쟁력 저하라는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게 명약관화한 법안에 대해 대통령이 헌법에 보장된 재의요구권을 행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강민국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목적과 절차에서 모두 실패한 악법”이라며 “(개정안이 공포되면) 장기적으로 시장 균형이 깨져 쌀 가격 하락을 피할 수 없고 선량한 영세농민들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게 된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위원들, 전국농어민위원회 소속 의원들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윤 대통령이 오늘 쌀값 정상화법(양곡관리법 개정안)을 거부하면서 또다시 정부는 필요하면 언제든지 쌀값을 폭락시켜 농민을 희생시킬 수 있게 됐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정황근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해 이 같은 쌀 생산조정 조치에 대한 전제를 생략한 채 ‘2030년에 쌀 60만t이 과잉 생산되고 쌀값이 하락해 연 1조40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하게 될 것’이라고 허위 주장했다며 “농민을 배신한 정 장관은 이 모든 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하는 게 마땅하다”고도 했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에서도 이 문제로 공방이 오갔다. 민주당 신정훈 의원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총리가 지속해서 양곡관리법에 대한 프레임을 가지고 거부권을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하자 한 총리는 목소리를 높여 “제가 총리라서, 국무위원이라서가 아니라 이것(양곡관리법)은 정말 국가를 위해서 필요한 정책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김승환·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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