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에서 ‘빅판’ 변신…“나만의 보금자리가 생겼어요”
빅이슈 판매원 2명의 ‘집’ 이야기
“빅이슈 팔며 웃음 되찾고, 이웃도 생겨”
“길 위 대신 나만의 보금자리서 소박한 행복”
[이데일리 권효중 이영민 기자] “제 집에선 사계절 편하게 누울 수 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있을 수 있어 좋습니다.”(서울 서초구 고속터미널역 앞 오현석 판매원)
“인간답게 살려면 ‘눈비 피하는 것’ 말고 ‘집’이 진짜 중요한 거에요. 가족 ‘제리’(반려견)도 있고, 서로 돕는 이웃들도 생겼습니다.”(서울 동작구 중앙대학교 앞 임흥식 전 판매원)
이데일리가 최근 만난 두 명의 빅판(빅이슈 판매원)은 더이상 ‘거리 노숙인’이 아니다. 이들은 서울 강서구의 10평 남짓, 방 두 개짜리 임대주택에 산다. 1991년 영국에서 탄생해 2010년 우리나라에서도 창간된 잡지 ‘빅이슈’가 안겨준 변화다. 빅이슈코리아는 빅판들이 잡지를 팔아 수입을 얻게 하고, 임시 주거 지원으로 ‘집’을 통해 사회에 돌아오는 과정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다. 빅판으로 일하면서 ‘집’이라는, 쉬는 공간을 넘어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힘을 얻은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오현석(53)씨는 매일 서울 지하철 3호선 고속터미널 역 앞에서 빅이슈를 판다. 일하기 시작한 건 2010년으로, 이듬해에 빅이슈의 지원으로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 어느새 13년이 흘렀다. 오씨는 처음 빅이슈를 만난 날짜를 정확히 기억한다. 오씨는 “2010년 8월 3일, 영등포 ‘토마스의 집’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하기 위해 줄을 서있다가 ‘자립할 수 있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받고 일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오씨는 빅이슈를 만나기 전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에서 3년간 노숙 생활을 했다. 여름에는 영등포역 근처 다리, 빌딩 지하 등을 전전했고, 겨울에는 PC방에서 쪽잠을 잤다. 그러던 중 전단지를 보고 ‘이렇게 살다가는 빠져나올 수 없겠다’는 생각이 그를 움직였다.
오씨는 빅이슈를 통해 성격도 밝아지고, 사회와 다시 만났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는 성격이 내성적인 편이었지만, 자꾸 사람을 만나다보니 이제는 목소리도 커지고 먼저 웃으면서 인사를 건넬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그는 “유모차를 탄 아기들에게는 ‘꼬마 공주, 왕자님 까꿍’이라고 인사하고, 자전거를 탄 어린이들에게는 ‘꼬마 왕자님,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주세요!’라고 먼저 인사한다”며 “그러면 부모님들과도 자연스럽게 인사를 하고, 손님이 되셔서 한 권씩 사주시곤 한다”고 자신의 ‘영업 비밀’을 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힘차게 일한 오씨에게는 퇴근하면 누울 보금자리가 있다. 오씨의 취미는 야구 경기 관람으로, 미국 메이저리그는 물론 국내 경기도 즐겨본다. 오씨는 “하나씩 살림살이를 마련하고, 야구를 보면서 나만의 공간에서 편하게 쉬다보면 보람이 크다”며 “스스로 일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거나 계기를 몰라서 시작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많은 이들에게 지원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임흥식(66)씨는 2010년부터 4년간 중앙대 앞 ‘빅판 아저씨’이자 ‘제리 아빠’로 이름을 날렸다. 중앙대학생, 교수진들과 학교 앞에서는 물론이고 페이스북으로도 소통하며 빅이슈를 팔았다. 2011년에 임대주택에 입주했고, 반려견 ‘제리’를 입양하며 가족과 집이 생겼다.
전기설비 작업자로 일해온 임씨는 30대에 작업 중 사고로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었다. 군대 때부터 아팠던 허리마저 디스크로 번지며 일을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결국 방세가 밀리자 ‘쫓겨나기 전 먼저 나오자’는 심정으로 길에 나섰지만, 자원봉사 수녀가 ‘빅이슈’를 알려줘 결심을 하게 됐다. 임씨는 “밥은 열흘에 한 번 먹어도, 살 집이 생긴다는 게 가장 중요한데 그 점이 좋았다”며 “허리가 아프더라도 앉아서 팔면 되니까, 뭐라도 하고 싶었다”고 당시 마음을 전했다.
그렇게 빅판이 된 임씨는 지금도 학생들을 생각하면 웃음이 번진다. 그는 “학생들이 제리 간식을 챙겨주는 건 물론, 언제나 내게도 밝게 인사를 해줬다”고 기억했다. 이어 “어떤 학생은 ‘아르바이트비 받으면 책 살게요’라고 말해줘서 ‘아저씨 때문에 무리하지 말라’고 했다”며 “취업하면 취업했다고 찾아오고, 졸업해서 좋은 소식을 들려주면 다 아들딸 같다”고 웃었다.
현재 임씨는 허리는 물론, 심근경색 등 몸 곳곳이 아파 빅판을 그만뒀지만, 주거지가 생겨 주민등록을 회복했고 기초수급 자격도 얻었다. 11살이 된 제리와 하루 두 번 산책을 하고, 임대주택 이웃들과 함께 일상을 보낸다. 지금까지도 가끔 안부를 주고받고, 정착했다는 소식에 반찬을 만들어 가져다주는 당시 중앙대 인근 상인들도 그에게는 전부 가족이다.
‘집’과 함께 변화한 빅판들은 ‘홈리스 월드컵’ 등 국제 행사들을 통해서도 새로운 도전을 했다. 2010년 브라질을 찾은 이들의 첫 출전기는 4월 개봉하는 영화 ‘드림’에도 담겨 있다. 빅판으로 얻은 ‘보금자리’ 덕분에 다시 세상을 만난 이들은 “함께 해준 모든 이들이 감사하다”, “나보다 어려운 이들도 돕고 싶다”고 했다. 이들은 “다시 노력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국가도 이런 마음을 알아주고 도움을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권효중 (khji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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