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필의 언중유향]병들어가는 전북 현대…처방전은?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지난해 전북 현대가 FA컵 우승을 차지한 직후 취재진과 모인 자리에서 허병길 대표이사에게 "팬들과 왜 소통하지 않고 있다는 소리를 듣나요"라는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당시 허 대표는 쉽게 말을 잇지 못하며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라고 답하며 다양한 고민을 토로했다. 우승했지만, 관중석에는 "허병길 사퇴"라는 현수막이 도드라지게 보였기에 자신의 입장을 충분히 내세울 필요가 있었지만 절제하는 허 대표를 보며 "깊은 생각이 있는 것인가"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전북은 2005년 최강희 감독 부임 후 FA컵 우승을 차지한 뒤 2006년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우승을 차지하며 1차 변화를 겪었다. 아무리 ACL 우승을 했어도 2007년 시작이 나쁘자 최 감독에게 "물러나라"라는 소리가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수놓았다.
당시 기억이 생생한 것이 북측(N석) 관중석 2층에서 "최강희, 이기지 못하면 바다에 빠져 **겠다며"라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졌고 분에 참지 못한 최 감독은 정장 상의를 집어 던지며 해당 발언을 했던 팬에게 그라운드로 내려오라고 했다. 당시 홍보팀장이 겨우 뜯어말리며 최 감독을 선수 대기실로 모셔(?)갔다.
위기에서 리더십 발휘한 경영자, 감독도 팬 신뢰 회복했던 전북
흔들리던 최 감독을 믿은 것은 이철근 전 단장이었다. 최 감독의 마음을 풀어주면서 동시에 팬들에게 직접 나서 "부덕의 소치"라며 더 나아지기를 기대해 달라고 애원했다. 결국 이동국, 김상식이라는 경험은 많으나 효용 가치가 떨어진다며 성남 일화(현 성남FC)에서 내쳐진 자원을 영입했고 2009년 K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전북이 반석 위에 오르며 K리그를 호령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물론 전북도 부침이 있었다. 2017년 심판 로비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선도하는 구단으로 가는 과정에서 벌인 과오였다. 이 과정에서 이 단장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퇴했다. 팀에 생긴 허물을 자신이 안고 가겠다며 사퇴로 최 감독을 보호했다. 2018년 우승을 이끈 최 감독도 13년 넘게 정들었던 전북과 이별했다.
오랜 시간 쌓은 두 거장의 그림자는 후임 경영진이나 감독에게 부담으로 작용한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도 전북은 이 전 단장 재임 시절 사무국장이었고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홍보팀에서 근무했던 '홍보 전문가' 백승권 단장 체제에서 선수단-프런트-팬이 삼위일체가 됐고 좋은 분위기를 만들며 강팀이 무엇인지 완벽하게 증명했다.
당연히 후임 경영진이나 감독에게 부담이 생기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일이었다. 2019년 11월 부임한 '마케팅 전문가'라 구단이 소개한 허병길 대표이사는 조제 모라이스 감독과 함께 2020년 2관왕을 이끌며 본격 경영에 나섰다. 구단 경영은 그가 일해왔던 현대자동차 각 부서와는 성격이 달랐다는 점에서 배움의 시기로 치부해도 됐다. 2022년 4월 성적 부진을 이유로 백승권 단장이 사임하면서 겸임하는 중책을 맡으면서 더 책임의 무게가 커졌다.
그렇지만, 불협화음은 계속됐다. 특히 팬들의 불만에 명쾌한 답을 내놓지 못하면서 결국 경기장에는 "사퇴하라"는 현수막이 붙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확실한 대응은 없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다. '한국 축구 선도하는 전북 현대의 '미래 비전'은 어디에?'라는 제목의 기자 기사가 나가자 프런트 모두에게 "향후 5년 계획을 짜서 보고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고 한다.
통상 리더는 큰 줄기와 방향을 잡고 전달하면 일선 직원들이 세부 계획을 짜게 마련이지만, 허 대표의 리더십은 '각자 알아서 가져오라'는 식이었다고 한다. 그저 '허 대표 스타일'로 치부하면 간단한 일이었고 '이 전 단장과 차별화'라고 해석해도 됐다.
"사퇴하라"는 문구 쏟아지는, 홈 구장 분위기 아닌 전주성
오히려 직원들과 허 대표의 괴리는 점점 커졌다.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불신이 쌓였다. 확실하게 정책 지향점을 정해주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다. 사무국을 쇄신하겠다고 경험 많은 직원의 직급을 내리고 젊은 직원을 앞으로 내세운 것도 허 대표의 고유 권한이었지만, 체계가 잡히지 않으면서 혼란의 연속이었다.
한국 축구의 전설 박지성을 어드바이저로 영입하고 테크니컬 디렉터까지 오는 과정에는 김상식 감독의 역할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물론 허 대표 나름대로 김 감독, 박 디렉터와 상의해 선수 영입에 공을 들이기 위해 애쓴 모습도 있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허 대표는 전면에 없었다. 벤치의 김 감독 곁에 'FA컵 우승을 이뤄냈으니 자유계약선수(FA)로 사 가라'는 비판 현수막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지난 1일 포항 스틸러스와의 5라운드 1-2 패배 후 김 감독이 탄 버스를 팬들이 거친 불만을 표현하며 막는 자리에도 앞에 보이지 않았다.
당시 취재진 사이에서는 허 감독이 경기 종료 후 바로 퇴근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참 버스 막기가 이어지던 상황에서 도대체 프런트가 어떻게 일을 해결하나 사무국으로 뛰어 들어가니 허 대표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베테랑' 프런트와 대책을 논의하고 있었다. "경찰이라도 불러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으나 그럴 경우 팬들을 예비 범죄자로 취급할 수 있기에 실행하지는 않았다. 이미 일부 팬이 경찰에 신고해 소수의 경찰력이 출동한 상황이었다. 또, 경기장 본부석 출입구 근처는 전주시 시설관리공단이 집회 허가를 내주지 않은 구역이라 신고가 필요 없었다. 집회 신고는 매표소 구역 근처였다고 한다.
김 감독은 팬들 앞에서 이성, 감성적인 표현으로 두들겨 맞았다. 코칭스태프가 같이 성토의 장에 서서 죄인처럼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이 순간에도 허 대표는 보이지 않았다. 허 대표의 마음을 알기는 어려웠지만, 적어도 선수단 수장 홀로 비난의 폭설을 맞고 있었다면 같이 맞아주는 지혜라도 발휘했어야 했다.
15년 동안 발전하며 상승세를 타던 전북은 허 대표 체제 후 꾸준히 하향 곡선을 그려왔다. 지난해 평균 관중 수에서 FC서울이 8천786명으로 1위, 울산 현대가 8천743명으로 2위였다. 3위는 대구FC로 6천411명이었다. 전북은 6천17명이었다. 1, 2위를 다퉈오던 "전북도 수도권 구단"이라던 과거의 영광이 3년 사이 화끈하게 불태워진 셈이다.
올해 개막 후 홈 경기 평균 관중 수에서도 울산은 2만1천635명을 기록했고 서울도 2만1천376명을 모았다. 전북은 1만3천592명이다. 대구는 1만1천55명이었다. 전북은 3경기 평균이지만, 1만 명대 아래로 내려간 경기가 있었고 대구는 모두 1만 명대를 기록했다는 차이가 있다. 비판의 팬심이 얼마나 무서운지 숫자로 증명됐다. 모기업 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구단을 직접 경영했다면, '영업 실적 악화'를 들어 수장을 혼내거나 문책했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선도 구단 이미지는 추락, 평균 관중 수가 증명…대책은 있나
오래 본 전북은 현재 병들어 있는 구단처럼 보인다. 활력이 없다. 경기마다 푸른색 유니폼을 입고 오는 관중 비율을 확인하고 구단 매점 운영권까지 가져와 수익 다각화를 시도하는 현대가 라이벌 울산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미래 비전 제시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허 대표는 결국 4일 사과문을 발표했다. "구단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성적을 거두며 팬 여러분께 큰 실망감을 안겨드렸다. 저를 비롯한 구단 관계자 모두에게도 전북은 커다란 자부심이었기에 하루빨리 현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라며 "팬 여러분께 그 누구보다 승리를 간절히 전하고 싶을 선수들에게는 변함없는 응원을 부탁드린다. 언제나 구단을 진심으로 아껴주시는 팬 여러분을 실망시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며 점진적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암시했다.
과연 진정성 있는 대책이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구단 프런트가 건강하게 너른 시야로 사리 판단을 할 수 있게 유연성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 축구계 중론이다. 전북을 바라보는 A구단 고위 관계자는 "남의 구단 사정을 다 알기는 어렵지만, 프런트는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선수단은 선수단대로 팬들 앞에서 수장 김 감독을 믿고 감동을 주는 경기를 보여야 한다. 팬들도 지적은 하더라도 믿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
물론 당장 전북이 바뀌기는 어려워 보인다. 선수단을 돕고 팬들을 끌어오는 동력이 되는 프런트가 온전치 못하다. '팩트'를 전달하자면 빡빡한 업무 스타일로 소문이 자자했던 이 전 단장 체제에서 아프다는 소리 없었던, 열정을 갖고 있던 직원 일부는 건강하지 않다. 한 베테랑 직원은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휴직했다. 운동 능력이 뛰어났던 다른 베테랑 직원은 수면 중 호흡 곤란을 호소하며 병원 응급실로 실려 갔었다고 한다. '산업 재해'라고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해당 직원의 건강이 시간이 지나 누적, 나빠졌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도 되지만, 인간적이지 못한 해석이나 판단이다. 나머지 직원들도 말은 하지 않지만,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왜 자신 체제에서 업무 능력을 뽐내며 나가야 하는데 아픈 프런트가 나오는지, 허 대표의 깊은 성찰이 필요해 보인다. 하나씩 해결 과제를 풀어야 하는 허 대표의 능력과 결단이 필요한 시간이다.
이와 관련해 허 대표는 5일 오전 스포티비뉴스에 5년 비전 관련해서는 "프런트 모두에게 향후 5년 계획을 짜서 보고하라는 것이 아니라 기본 계획에 대해 재확인 했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또 , 호흡 곤란을 겪은 직원에 대해서는 "당사자에게 직접 확인했다"라며 "수면 중은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SPOTV 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스포티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