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에 반기 든 송파구.."파면 나오는 옛 흔적, 다 문화재 아냐"

유동주 기자 2023. 4. 5.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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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송파구 풍납동 주민들이 매장 문화제 문제 해결을 위해 문화재청을 상대로 청원서를 제출하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사진 제공=송파구

서울시 송파구가 문화재청을 상대로 법적분쟁을 불사하고 있다. 기초 지방자치단체가 문화재 관련 행정에 대해 '문화재 독재'로 규정하고 '지나친 규제'라며 반기를 들자 문화계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선 관심이 커지고 있다. 그간 문화재 발견이나 발굴을 이유로 재산권을 제한당하거나 개발이 지연된 곳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송파구는 지난해 6월 풍납2동 복합청사 신축부지에서 발굴된 유적에 대한 문화재청의 현지보존 통지에 대해 처분 취소소송을 제기했지만 지난달 말 서울행정법원은 각하 결정을 내렸다. '각하'는 송파구의 '패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법원 '각하' 결정..송파구 "다시 행정소송 제기하겠다"
행정소송의 특성상 행정청의 '처분행위'가 있어야하는데 행정법원은 문화재청의 '보존조치 통지'는 행정소송에서의 '처분'으로 볼 수는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따라서 향후 문화재청이 제대로 된 '처분행위'를 하면 송파구는 이에 대한 반발로 행정소송을 다시 제기해 법원 판단을 받아볼 수 있는 것이다.

앞서 풍납2동 복합청사 사업부지에서 2021년 백제시대 주거지 등을 포함해 총 93기의 유구(오래된 잔존물)가 발견되자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회 심의 후 현지보존을 송파구에 통보했다. 당시 발굴은 서울시 한성백제박물관이 담당했다. 문화재청은 "불명확했던 풍납토성 외부공간의 면모를 알 수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며 사업시행자인 송파구에 현지보존을 요청했다.

이후 2022년 3월 송파구는 유적 보존을 위해 지하주차장을 지상에 신축하겠다는 계획을 제출해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통과한 바 있다. 그러다가 송파구는 2022년 6월 28일 문화재청을 상대로 "현지보존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내용의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반면 문화재청은 "통상적으론 사업시행자가 심의 조건을 준수한 보존 방안과 발굴 완료신고서를 제출하고 나서 공사를 계속할 수 있다"며 풍납2동 청사 공사 지연을 송파구 탓으로 돌렸다.

풍납2동 복합청사 신축부지 현장. 지난해 6월부터 공사가 중단된 상태다./사진= 송파구청

복합청사 지연책임 서로 '네 탓'…송파구 "과한 '현지보존' 조치로 중단"VS. 문화재청 "발굴완료 후 공사 가능"
관계자 등에 따르면 송파구는 공사지역에서 문화재 발굴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화재청 처분을 그대로 따르던 과거와 달리, 소송을 통해 법적 판단을 구해보자는 선택을 했다. 실제로 송파구는 행정소송을 제기하면서 "문화재청이 조치사항을 통보만 했을 뿐 보존조치의 구체적 내용과 조건도 명시하지 않았고 근거와 이유도 알 수 없다"며 '절차적 하자'를 근거로 들었다.

이어 문화재청 보존조치의 '실체적 하자'에 대해서도 "문화재보호법상 주거지, 수혈, 주혈 등은 기념물인 문화재로 명시돼 있지 않으므로 문화재 및 매장문화재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설령 문화재로서 인정된다할지라도 현지보존을 해야할 만큼 문화재로서의 가치 및 보존상태, 활용성이 높지 않은데 비해 이로 인해 침해되는 공익은 작지 않다"고 주장했다. 발견된 백제시대 주거지의 보존 가치가 크지 않다는 주장이다.

송파구는 수천년 이상 주거지역이던 땅은 파기만 하면 옛날 사람들이 살던 집터와 집기 등이 나오는데 그 모두를 보존가치가 있는 문화재로 볼 수 없단 입장이다. 그런 취지에서 집터 등이 나온단 이유로 문화재청이 현지보존을 명령하고 장기간 공사를 중지시키는 것은 과도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아울러 "같은 5권역에서 있었던 유사사례에서 대부분 '기록보존' 조치로 결정됐던 것에 비춰 이 사건 처분은 형평성에도 반하므로 (문화재청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위법이 있다"며 "'기록'으로 보존하면 될 문화재를 아예 그대로 '현지보존조치' 하라는 것은 과도하다"고 지적했다.

(서울=뉴스1) 박세연 기자 =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바라본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 공사현장.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 공사 현장에서 삼국시대 유물이 발견돼 정밀조사를 벌이고 있다. 2022.2.24/뉴스1
행정법원서 각하 결정이 나온 데 대해 송파구는 4일 "행정소송 제기로 제출하지 않았던 발굴완료신고서를 문화재청에 제출해 문화재청에서 현지보존조치하라는 '행정처분'이 내려질 경우, 문화재청 처분의 위법성을 적시해 본안 심리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다시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송파구청장 "문화재청은 '문화재 독재', 법상 명백한 근거도 없이 판단"
서강석 송파구청장은 문화재청의 관련 행정에 대해 '문화재 독재'라고 비판하면서 "문화재청은 문화재보호법상에 명백한 근거도 없이 단지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만으로 문화재로 판단하고 지역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며 보호조치를 강요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풍납2동 청사는 1987년에 건립돼 주민센터와 함께 풍납파출소, 풍납 어린이집을 통합해 복합청사로 새롭게 지난해 10월 완공될 예정이었다.

송파구는 풍납2동 청사 문제와는 별도로 지난 3월 헌법재판소에 문화재청을 상대로 '풍납토성 보존구역 및 관리구역 지정'에 대해 반발하며 관련 종합계획 취소와 문화재청의 권한침해 확인을 구하는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한 바 있다. 문화재청이 풍납동 주민들의 재산권에 큰 제한을 가하는 내용의 규제정책을 송파구의 건의사항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강행했다는 게 송파구 주장이다.

헌재 심판청구를 한 배경에 대해 송파구는 △주택 노후화로 인해 발생하는 안전 문제 △주민 재산권 침해 해결 등 2가지 이유를 들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지어진 풍납동 건물들이 문화재 규제로 20여년 간 재산권 행사에 제약을 받고 급속하게 노후화가 진행돼 슬럼화로 주민들의 주거환경이 악화되고 있단 것이다. 지난해 여름 수도권 집중 폭우로 풍납동 지역 26가구가 침수피해를 입은 뒤에도 문화재 규제로 침수피해 복원지원에도 제약을 받았다는 것이다.

(서울=뉴스1) 허경 기자 = 17일 서울 풍납동 토성(사적 제11호) 서성벽에서 '성 외벽'이 언론에 공개되고 있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소장 이규훈)는 지난해 9월부터 '서울지역 도성유적 학술조사연구' 사업의 하나로 추진 중인 서울 풍납동 토성의 서성벽 복원지구 내 유적 발굴조사에서 '외벽' 구간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서울 풍납동 토성의 서성벽은 그동안 서남벽 일부 구간만이 지표 위에 드러나 있었으며 과거 국립문화재연구소의 소규모 시굴조사와 2003년 삼표사옥 신축예정부지 시굴·발굴조사를 통해 기초 흔적 정도만 확인되었다. 2018.12.18/뉴스1

풍납토성 내부 지역 중 주민이 거주하는 지역에 대한 보존·관리 구역 지정 해제를 요구하는 의견서를 지난해 문화재청에 제출했지만 그 내용이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올해 1월 말 '풍납토성 보존·관리 종합계획'이 수립되고 2월에 '풍납토성 보존구역 및 관리구역 지정'이 있었단 게 송파구 주장이다.
'잠실 진주' 재건축 지연 책임 두고도 감정 싸움
양 측은 잠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장 문제로도 감정싸움을 하고 있다. 송파구가 진주아파트 재건축사업이 문화재로 인해 중단됐다는 취지로 언론에 알리자, 문화재청은 "잠실 진주아파트 사업장 문화재 발굴은 이미 완료된 상황"이라며 반박했다. 문화재 발굴이 재건축 사업 일정에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게 문화재청의 해명이다.

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지에서 공사가 83% 정도 진행된 상태에서 백제시대 주거지 2기가 발견되자 단지 내 기부채납 부지에 이전하는 보존방법으로 문화재심의위원회 심의를 통과해 공사가 재개된 바 있다. 이를 두고 송파구는 문화재청에 의해 지연된 지역 현안을 신속히 처리해 중단된 공사가 재개됐다는 입장이지만, 문화재청은 정상적인 발굴과 심의 단계를 거쳐 공사가 재개됐고 공사지연이 거의 없었다고 서로 상반된 주장을 하고 있는 셈이다.

유동주 기자 lawmaker@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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