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출석 트럼프 “난 무죄”…입막음 돈 34개 혐의 부인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 변호인들과 함께 법원에 출석해 기소인부절차를 밟고 있다. 뉴욕/AP 연합뉴스

성관계를 입막음하기 위한 돈을 지급하고 회사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각) 법원에 출석해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맨해튼 지방검찰청에 나와 지문 날인 등을 한 뒤 맨해튼 형사법원에 출석해 공소사실의 인정 여부를 밝히는 기소인부절차에 참석했다. 검찰은 2006년에 한 포르노 배우 스토미 대니얼스와의 성관계에 대한 입막음을 위해 2016년 대선 직전 13만달러(약 1억7천만원)를 주고 회사 장부에 ‘법률 비용’으로 기재한 혐의 등으로 지난달 30일에 기소됐다.

검찰은 이런 내용과 관련해 수표, 송장, 장부 34건을 조작한 것에 대해 각각 중범죄 혐의를 적용했다. 검찰은 수사의 초점이 돼온 대니얼스에 대한 돈 지급뿐 아니라, 역시 2016년 대선을 앞두고 2006~2007년에 4차례 성관계를 한 것으로 알려진 <플레이 보이> 모델 출신 캐런 맥두걸에게 잡지 <내셔널 인콰이어러> 쪽이 15만달러를 줬다는 점을 설명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 소유주는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분이 두터우며, 대니얼스에게 애초 돈을 전달한 그의 ‘집사 변호사’ 마이클 코언이 이 과정에도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은 또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혼외자가 있다고 주장하는 트럼프타워 관리 직원에게 <내셔널 인콰이어러> 쪽이 3만달러를 줬다고 밝혔다. 이 부분은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다. 하지만 <내셔널 인콰이어러> 쪽은 이 직원의 직원이 사실과 다르다고 나중에 파악했다고 한다.

검찰은 대니얼스에게 지급한 13만달러를 제외한 두 건은 처벌을 구하는 공소장에 적지 않고 ‘사실관계 서술’이라는 별도 문서에 기록했다. 이는 두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지는 않되 트럼프 전 대통령의 범죄의 맥락을 설명하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불법적 음모”를 꾸몄다고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혐의 내용을 전면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입막음용 돈 지급 의혹이 불거졌을 때부터 대니얼스 등과의 성관계 자체가 없었다고 해명해왔다. 그는 2시간가량 검찰 청사와 법정에 머물렀으나 출입하면서 기자들에게 아무 발언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는 달리 다소 엄숙한 표정을 지었으나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기도 했다.

기소인부절차를 진행한 후안 머천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대중을 선동하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12월4일에 다시 검찰과 변호인들의 의견을 듣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본안 재판은 대선이 진행되는 해인 내년에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혐의를 전면 부인함에 따라 이 사건은 치열한 법정 공방과 함께 내년 대선을 앞두고 뜨거운 정치 공방의 소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뉴욕 경찰은 전날 법정 출석을 위해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이동해 트럼프타워에서 하룻밤을 지낸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경호하고 그 지지자들의 난동 가능성에 경계를 크게 강화했으나 별다른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다. 경찰은 트럼프타워는 입구 쪽 도로를 차단했고, 측면 도로도 펜스를 쳐 취재진과 시민들이 길 건너편까지만 접근할 수 있게 했다. 검찰 청사와 법원으로 이동할 때도 사전 허가를 받는 취재진만 촬영할 수 있게 하며 노출을 최소화했다.

맨해튼 형사법원 앞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처벌에 찬성하는 쪽과 그를 지지하는 쪽 시민 수백명이 모여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됐다. 처벌에 찬성하는 쪽은 “트럼프를 구속하라”고 쓴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했고, 그의 지지자들은 “정치적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난했다.

뉴욕/이본영 특파원

ebon@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