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서 “무죄” 외친 트럼프…판사 “대중 선동 말라” 경고
미국 건국 이래 전직 대통령 중 처음으로 형사재판에 회부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피고인 신분으로 법정에 나타났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을 34건의 중범죄 혐의로 기소하면서, 그가 2016년 대선을 앞두고 ‘성추문 입막음’ 목적으로 돈을 뿌린 사례가 모두 3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모든 혐의를 부인하며 “기소 결정은 선거개입 행위”라고 비난했다.
트럼프, ‘혼외자설’ 입막음하려 도어맨에게도 돈 줬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뉴욕 맨해튼 형사법원에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밝히는 기소인부절차를 진행하기 위해 출석했다.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남색 정장에 빨간색 넥타이 차림이었다.
재판정 앞줄에 마련된 피고인 자리에 변호팀과 함께 착석한 그는 절차가 진행된 50여분 내내 무죄를 주장할 때 외에는 침묵을 지켰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기소인부절차를 진행한 후안 머천 판사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소셜미디어(SNS)에서 대중을 선동하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했다.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검장은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성추문 입막음’ 사례가 성인배우 스토미 대니얼스 사건 외에도 2건이 더 있다고 밝혔다.
검찰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성인잡지 <플레이보이> 모델인 캐런 맥두걸에게도 성관계 폭로를 막기 위해 15만달러를 지급했으며, 자신의 혼외자설을 폭로하려 한 트럼프월드타워 도어맨(관리인)에게도 3만달러를 지급했다고 밝혔다.
도어맨 입막음 사건은 타블로이드지 <내셔널인콰이어러> 모회사인 AMI 최고경영자(CEO)이자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구인 데이비드 페커가 도어맨에게 돈을 주고 혼외자에 관한 이야기를 독점 보도할 수 있는 권리를 사들임으로써 사실상 입을 막은 사례다.
AMI는 트럼프월드의 청소부와 트럼프 사이에 자식이 있다는 도어맨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발설금지 계약을 해지하려 했으나,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인 마이클 코언이 페커에게 ‘대선 때까지는 도어맨을 풀어주면 안 된다’고 지시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다만 공소장에 기재된 범죄 혐의는 대니얼스에게 지급한 13만달러의 성격을 숨기려고 34건의 트럼프그룹 문건을 위조한 의혹만을 다루고 있다. 따라서 도어맨과 맥두걸에 대한 입막음 돈 지급 사실은 기소 사실들을 입증하는 사례 정도로 재판에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적용된 34건의 중범죄는 가장 등급이 낮은 E등급으로 건별로 최대 4년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뉴욕주 법률에 따르면 기업문서 조작 행위 자체는 경범죄이나, 다른 범죄를 저지르는 과정에서 기업문서를 조작했거나 범죄 사실을 위장하려고 했을 경우 중범죄로 기소될 수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34개 혐의에서 모두 유죄가 인정된다면 최장 136년형이 내려질 수 있다면서, 그러나 트럼프 전 대통령이 초범이고 2024년 미 대선 출마 선언을 한 상황이란 점을 고려할 때 유죄가 인정되더라도 실형이 선고될지는 미지수라고 덧붙였다.
트럼프 “나는 무죄…이것은 선거개입”
법정에서 평소와 달리 조용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밤 플로리다 마러라고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소 결정을 맹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생각하지 못했다”며 “내가 저지른 유일한 범죄는 우리나라를 파괴하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미국을 용감하게 지킨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2020년 대선 당시 조지아주 선거 결과를 조작하려 한 혐의에 대한 수사를 겨냥해서도 2024년 대선 개입 목적이 다분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들(민주당)은 투표로 우리를 이길 수 없으니 법을 이용하려고 한다”며 “그게 우리가 사는 나라의 모습이다. 미국은 지금 엉망”이라고 주장했다.
이날 미 언론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원에 출석하는 순간부터 플로리다 자택으로 복귀하는 장면까지 빠짐없이 생중계하기 위해 헬기까지 동원해 차량을 뒤쫓는 등 열띤 취재 경쟁을 벌였다.
이날 맨해튼 형사법원 앞 대로변과 법원 청사가 올려다보이는 컬렉트폰드 파크는 이른 아침부터 트럼프 지지자들과 그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몰려 인산인해를 이뤘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기소를 결정한 맨해튼 지검을 비난하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정치적 박해”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민들은 “법 아래 만인은 평등하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법률 위반에 대한 댓가를 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뉴욕 | 김유진 특파원 yj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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