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술 답사기] 강렬하게 부드럽게 ‘한국형 고량주’ 떴다

박준하 2023. 4. 5.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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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술 답사기] (54)충북 영동 ‘한국고량주’
100% 국산 무농약 수수로 빚어
특유의 파인애플향 ‘서울고량주’
알코올향 약하고 목넘김은 깔끔
‘오크’는 바닐라향 은은하게 풍겨
‘이연56’ 이연복 셰프와 함께 개발
“중국산 압도하는 술 만들고 싶어”
한국고량주에선 국산 수수로 한국형 고량주를 빚는다. 왼쪽부터 ‘서울고량주 레드’ ‘서울고량주 오크’ 그리고 이연복 셰프와 협업해 출시한 ‘이연 56’. 김병진 기자

태생은 외국이지만 한국식으로 재탄생한 술이 뜨고 있다. 충북 영동 한국고량주는 ‘세계에서 가장 깨끗하고 안전한 고량주를 생산한다’는 슬로건 아래 술을 빚는 국내 유일 고량주 양조장이다. 100% 우리 수수로 <서울고량주>를 빚는 양원준 대표를 최근 서울 도봉구에 위치한 한국고량주연구소에서 만났다.

양원준 한국고량주 대표가 충북 영동에서 재배한 국산 수수를 보여주고 있다.

고량주는 수수로 만드는 중국술이다. 백주라고도 불리는데 곡물 발효주를 증류한 술을 뜻한다. 흔히 ‘배갈(빼갈)’이라고 한다. 보통 부드럽고 깔끔하며 도수가 높다. 또한 강렬하고 풍성한 과일향이 특징이다. 도수가 높으므로 기름진 중국 음식과 궁합이 잘 맞는다. 중국집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술 <연태구냥>도 이 가운데 하나다.

“중국 여행을 갔다가 고량주를 마시게 됐는데 맛이 좋아 만드는 방법이 궁금해졌죠. 어렵사리 양조장을 구경하고 나서 일부 업체의 경우 홍보용 술과 판매용 술이 다르단 걸 알게 됐어요. 충격이었죠.”

양 대표는 당시 패션회사에 근무했다. 술을 좋아하던 그는 2000년대 초반 고량주의 진실(?)을 알게 된 후 한국에서 믿을 만한 재료로 직접 고량주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그땐 그도 술을 개발하는 데 20년이나 걸릴 줄 몰랐다.

“쌀로 술을 빚는 한국에서 수수로 술 만들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비법을 알고자 중국 양조장만 수백곳을 방문했던 것 같아요. 중국에서 고량주 제조 자격증도 취득했죠. 그런데 중국 방식대로 고량주를 빚으면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허가가 안 나더라고요. 여러 시행착오 끝에 지금의 <서울고량주>가 2022년 나오게 된 거죠.”

고량주의 원료인 수수는 쌀에 비해 가격이 3∼5배 더 높다. 게다가 같은 양으로 술을 빚었을 때 쌀보다 술이 되는 양도 적다. 양 대표는 그래도 꾸준히 무농약 수수를 고집하며 술을 빚는다. 일부는 양 대표가 농사지은 수수를 쓰고, 부족한 양은 인근 지역 수수농가와 계약재배 형태로 원료를 공급받는다.

고량주는 삭힌 수수로 고체 술덧을 만들어 증류한다. 증류기에 받침대를 걸쳐두고 위에는 술덧, 아래는 물을 둔다. 이를 끓이면 뜨거운 물이 고체 술덧에 있는 알코올을 기화시킨다. 기화한 알코올이 냉각기를 통과하면 증류주가 되는 것이다. 이때 술덧을 만드는 수수는 찰성보다 메성이 강해야 한다. 찰기가 있으면 술덧이 떡져 알코올이 빠져나오질 못한다. 술덧을 만들 때 쓰는 발효제인 누룩도 수수로 만든 것을 쓴다. ‘벼누룩술’로 유명한 발효음식 대가 김영자씨의 도움을 받아 수수누룩을 만든다. 아쉬운 점은 가성비를 고려해 발효 주정을 넣었다는 것이다. 대신 거부감 없는 가격대로 한국형 고량주를 맛볼 수 있다.

<서울고량주(35도)>의 뚜껑을 열면 고량주 특유의 파인애플향이 느껴진다. 알코올향은 약한 편이며, 목넘김은 깔끔하고 부드럽다. 충분히 <연태구냥>의 대체재가 될 만하다. <서울고량주 오크(40도)>는 고량주를 오크통에서 숙성시킨 제품이다. 은은한 오크향이 나며 적당한 바닐라향도 풍긴다. 이 모두 기름진 중국 음식과 잘 어울리고 양념이 많은 한식과도 찰떡궁합이다.

요즘 대세는 고량주 칵테일이다. <서울고량주>를 맥주와 1대 5 비율로 섞으면 최근 유행하는 ‘연따오(연태구냥+칭따오)’를 대적할 칵테일이 된다. 또 얼음 가득한 잔에 <서울고량주>와 탄산수를 1대 3의 비율로 섞고, 과일향이 나는 모닌시럽(칵테일시럽)을 첨가하면 젊은 세대에서 핫한 고량주 하이볼을 만들 수 있다.

한국고량주는 2월 중식의 대가 이연복 셰프와 함께 프리미엄 고량주인 <이연56(56도)>을 출시했다. 이 술은 개발 과정에서 이 셰프가 중식과의 어울림, 고량주향 등을 직접 평가하며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연56>을 시작으로 한국고량주의 프리미엄 행보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올 상반기에는 고구려 광개토대왕 때 사용한 연호 ‘영락’에서 이름을 딴 매우 높은 도수의 프리미엄 고량주를 선보일 계획이다.

“당장은 힘들겠지만 언젠간 중국 고량주를 압도할 만큼 좋은 술을 만들고 싶습니다. 중국술과 어깨를 견줄 정도는 돼야죠. 이달엔 서울 한국고량주 사옥에서 수수를 주제로 축제도 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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