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미래 강원 노포 탐방] 41. 춘천 예쁘다 의상실

강주영 2023. 4. 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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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날, 나만을 위한 옷 선물…추억을 바느질 합니다
1979년 가게 물려받아 46년째 운영
수십년 단골손님 꾸준 사랑방 역할
옷감 선택부터 손님 개성별 맞춤
직접 치수 재서 가장 편한 옷으로
도립예술단 공연의상 제작 자부심
“원하는 옷 입혀드리면 기분 좋아
한물 간 일이라도 끝까지 운영”
▲ 춘천 교동에서 46년째 ‘예쁘다 의상실’을 운영하고 있는 홍영신 대표가 옷을 매만지고 있다.

‘패스트패션’이라 불릴 정도로 빠르게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옷들이 넘쳐난다. 환경부에 따르면 2021년 강원지역 폐의류는 3123t, 하루 평균 8.5t이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기성복 매장이 많지 않았다. 옷은 새로 ‘산다’기보다 ‘지어 입는다’는 개념에 가까웠다. 양장점, 양재점에서 옷을 맞춰 입었다. 정해진 치수에 따라 찍어내는 공장형 옷들과 달리 철저히 입는 사람에게 맞춰 다품종 소량 생산을 한다.

춘천 양장점 ‘예쁘다 의상실’의 홍영신(66) 대표가 46년째 해 온 일이다. 춘천 교동에 분홍색 쇼윈도에 보랏빛 체크무늬 여성 정장이 걸린 곳. ‘예쁘다’라고 적힌 빛바랜 코팅지가 붙은 유리문을 열자 회색 단발머리의 홍 대표가 무언가에 열중하고 있었다. 며칠 전 한 손님이 조카 결혼식에서 입기 위해 맞춘 ‘마이(재킷을 일컫는 일본어)’를 ‘가봉(박음질 전 바늘로 형태를 잡아놓는 것)’중이었다. ‘예쁘다 의상실’은 춘천여고 앞에서 30년간 운영하다 2007년 교동에 자리잡았다. 3평 남짓의 아담한 가게 안 연탄난로는 세월을 말해줬다. 1979년 1월 10일은 홍 대표가 ‘예쁘다 의상실’의 공식 사장이 된 날이다. 탁자에는 옷 시안이 담긴 서적이 쌓여있었다. 옛날 화장과 머리를 한 여성모델들의 사진이 즐비하다. 이곳 손님들은 대부분 60~90대. 유명 의류회사에서 오래 전 찍어낸 책은 여전히 좋은 샘플이다. 맞춤옷도 유행이 있느냐는 질문에 홍 대표는 “따로 없지. 손님이 입고 싶다는 대로 만들어줘요”라고 답했다.

▲ 홍 대표가 천감을 보고 있다.

■ 반세기 단골이 찾는 사랑방

의상실 손님은 70~80대 연령의 단골이 대부분이다. 요즘에는 30~40명 정도가 들른다. 반세기 가까이 된 단골들이 모이는 사랑방 구실도 한다. 지역 봉사에 앞장서는 여성 대표들도 그의 단골이다. 기자의 방문이 홍 대표에게 크게 낯설지 않은 이유도 있다. 그는 “옷을 맞추러 오는 분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니 주워듣는 이야기가 많다”고 했다. 개업 당시 젊은 순경이었던 손님도 은퇴 후 70대가 됐다. 그는 한때 경찰 제복도 만들었다. 경찰청에서 원단을 지원받아 재단했다. 그는 “선생님들도 새로운 학교에 발령나면 새옷을 해 입으러 왔었어. 그분들이 지금까지도 찾고 있지. 이제는 단골손님들도 나이 들고 몇 년 전 돌아가신 분도 있어. 맞춤옷은 한물 간거지”라고 했다.

운영 초반에는 ‘시다(미싱 등을 돕는 보조원)’를 따로 둘 정도로 의뢰가 많았지만 지금은 혼자서도 충분하다. 당시 원단 샘플 배달원인 일명 ‘나까마 아저씨’가 저녁마다 의상실을 들렀지만 이제는 전화 한 통으로 서울 동대문 시장에서 물건이 직송된다. 홍 대표는 “지금같은 택배가 없고 ‘나까마 아저씨’가 2명이나 있어서 가게마다 샘플을 배달해줬어. 지금은 다 사라졌지”라고 했다. 이제 춘천의 양장점은 3~4곳을 제외하고 모두 문을 닫았다.

▲ 홍 대표의 작업 모습.

■ 어쩌다 미싱사, 어쩌다 양장점 대표

춘천 서면에서 농사일을 하는 부모 아래 6남매 중 둘째인 홍 대표가 17세때 미싱을 배운 것은 우연이었다. 홍 대표는 “아버지가 어느날 시내에서 돌아오시더니 양재학원을 다니라고 끊어준거야. 선견지명이 있으셨지. 공부가 안 되면 기술이라도 익혀놔야 된다고 하셔서 배웠어”라고 했다.

원래 꿈이 있었냐는 질문에 “그때는 그런 생각도 안했어. 어쩌다 이 일을 하게 됐는데 적성에 맞으니까 지금까지 하는 것 같아”라고 했다. 그는 학원을 다니며 ‘시다’로 아르바이트를 뛰었다. ‘예쁘다 의상실’도 그중 한 곳이었다. 입사 2년만에 주인이 결혼하면서 직원이었던 홍 대표가 물려받았다. 그전부터 운영됐으니 간판으로 따지면 더 오래됐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가장 자신있는 옷 디자인에 대해서는 “그런 게 없다. 그냥 다 만든다”고 답했다. 원피스나 바지 등 기본 디자인을 고르면 옷감도 손님이 원하는대로 가능하다. 강원도를 대표하는 도립예술단 단원의 공연의상도 홍 대표의 손에서 탄생한다.

그는 “내가 만든 옷만 수백 벌 가진 단원도 있는데 공연할 때마다 우리집에서 옷을 맞춘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 세상에 단 한 벌 뿐인 옷

상호가 ‘예쁘다’지만 이곳의 ‘예쁘다’는 좀 다르다. 정형화된 늘씬한 몸매보다 손님의 체형과 개성에 맞게 옷을 만든다. 가격도 천차만별, 정액가가 따로 없다. 원단과 천 사용량에 따라 가격을 매긴다. 그는 “아무래도 주관이 뚜렷한 손님이 많다”며 “(옷을) 좋아해주는 분도 있고 고쳐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크게 불만을 표시하는 손님들은 없었다. 내 성격이 크게 예민하지 않아 원하는대로 해드리니 꾸준히 오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이곳 손님들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옷을 입는다. 그는 “나이가 들면 체형이 바뀌니까 늘어난 허리에 맞춰 수선 받으러 오면서 단골이 된다”며 “옷 정리할 때도 여기서 만든 옷은 못 버리겠다고 해요.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하고 웃었다. 손님의 전화를 받으면 홍 대표는 “가봉 오세요”라고 먼저 말한다. 치수를 직접 재야 가장 편안한 옷을 만들 수 있어서다. 가봉 후에는 입고 갈 행사 일정 등에 맞춰 재봉에 속도를 낸다. 그는 “손님과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운영시간도 딱히 정해져 있지 않다. 내일 모레 옷을 찾아가겠다고 하니 어제도 새벽 2시까지 작업했다”고 말했다.

■ 누군가의 옷을 직접 만든다는 것

이곳에서는 옷을 만드는 이도, 입는 이도 서로를 안다. 그래서 가끔 먹먹한 순간도 맞는다. 홍 대표는 손님이 3년 전 맞춘 옷을 아직 보관 중이다. 만드는 동안 손님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는 끝내 완성된 바지를 찾아가지 못했다. 제작비는 받지 않았다고 했다. 딸이 연로한 엄마를 모시고 오거나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함께 옷을 맞추는 경우도 종종 있다. 세상을 떠난 어머니의 옷을 가져와 본인 옷으로 만들어 달라는 의뢰를 받은 적도 있다. 그는 누군가의 옷을 수선할 때는 그 사람의 냄새가 묻어난다고 했다. 누군가의 엄마 향기가 깊게 밴 옷은 박음질을 풀고 다시 꿰매져 딸에게 전달됐다.

이제는 모르는 이가 더 많은 양장점이다. “한물 간 일”이라고 말하면서도 옷을 만드는 이의 자부심이 홍 대표에게 느껴졌다. 노부모를 직접 모시며 가게도 운영하느라 바쁜 홍 대표는 몸이 허락할 때까지 일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옷을 입고 마음에 들어하는 손님을 보면 그 기분이 나한테도 온다. 입혀드리고 나면 그때 기분이 참 좋다”고 했다. 강주영 juyo9642@kad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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