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필수의료 공백 위기에… 국민 67% "의대 정원 확대를"
58% "의사 인력 부족"... 고령일수록 공감
경기 김포시에 사는 유모(39)씨는 2월 초 '필수의료 공백' 때문에 아픈 아이를 긴 시간 방치해야 했던 아찔한 경험을 토로했다. 밤 늦게부터 27개월 딸에게 열기운이 감지됐고 오전 2시쯤 집에서 감당이 안 되겠다 싶어 응급실을 운영하는 주변 종합병원에 전화를 돌렸다. 그러나 연락한 세 곳의 병원 모두에서 "아이를 볼 의사는 없다"는 답이 돌아왔단다.
결국 유씨는 119에 도움을 청했고 구급차가 이내 도착했지만, 딸을 태운 119 구급차는 아파트에 멈춰 서서 30분 동안 출발하지 못했다. 구급대원 역시나 아이를 맡을 병원을 찾지 못했기 때문. 다시 30분이 흐르고서야 일산 쪽 병원에서 '조건부'로 아이를 봐주겠다는 답을 얻었다. 병원 측은 "지금 소아과 의사가 없으니 날이 밝으면 소아과로 데려가야 한다"는 조건을 붙여 급한 불만 꺼주겠다고 했다. 구급차는 겨우 한강을 가로질렀고, 유씨는 일산의 응급실까지 달려가서야 아이의 열을 잡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전국 의대 총정원이 3,058명으로 고정된 지 17년이 흘렀다. 고령화가 심화하면서 의료 수요는 느는데 필수 의료를 담당할 현장 의사가 모자라다 보니, 유씨처럼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는 경험담도 심심치 않게 발견된다. 유씨의 딸은 어찌어찌 병원에 가는 데 성공했지만, 최근 대구에서 추락한 10대 학생이 응급실을 떠돌다 숨진 사건에서처럼 아예 병원 문턱을 넘지 못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이런 현실에 대해, 일반 국민 3분의 2가 의료 서비스 개선을 위한 의대 정원 확충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4일 한국일보는 최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이 전국 만 19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입수했다.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7%가 "의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 확대에 찬성한다"고 답했다. 9.8%는 반대, 23.5%는 "모르겠다"고 답했다.
응답자 연령이 높을수록 찬성 비율은 높게 타나났다. 나이가 들수록 병원을 자주 가는 만큼, 의료 현장의 의사 부족 문제에 더 공감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30대 미만의 찬성 비율은 39.7%로 가장 적었고, 60대가 77.7%로 가장 높았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은 의료 인력 부족을 체감했다고 답했다. "의사 인력이 충분한가"는 물음에 58.4%는 "부족하다"고 답했다. "충분하다"는 의견은 41.6%였다. 간호사 인력에 대한 질문에서도 "부족하다"(56.1%)는 의견이 절반 이상이었다.
응답자들은 환자는 많은데 의사 수가 상대적으로 적어, 막상 병원에 가도 의사와 마주하는 시간이 짧다고 답했다. 외래 진료 시 대면 상담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더니 "5분 이내"라는 답이 55.4%에 이르렀다. 27.7%는 그보다 더 짧은 "1분 남짓"이라고 잡했다. 입원 시 의사에게 설명을 듣는 시간은 훨씬 짧았는데, 응답자의 58.4%는 "1분도 안 된다"고 답했고, 6.1%는 "10초 이내"라는 답을 내놓았다.
응답자들은 '적정 의료 인력'에 대한 법적 기준이 마련되면 의사·간호사 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봤다. 52.6%는 "법으로 기준을 정해야 한다"고 답했고, 23.6%는 "법으로 정하지 말고 병원 재량에 맡겨야 한다"고 답했다.
이 조사 결과에 대해 "국민이 의사 부족 문제를 체감할 정도로 의대 정원 문제가 얼마나 시급한 과제인지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김진현 서울대 간호대 교수는 "공중보건의사와 군의관도 부족해 여기저기서 아우성이 나올 만큼 이제는 (의사 부족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다"며 "전 부처 차원의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다.
류호 기자 ho@hankookilbo.com
오세운 기자 cloud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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