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여립은 어디서 숨졌나… 명승지 지정 두고 두쪽 난 마을

김진영 2023. 4. 5.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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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안군 천반산‧죽도 명승 지정 추진
1589년 기축옥사 정여립 자결 장소
"관광자원화해 지역발전 기여해야"
찬성 측 "조선왕조실록에 죽도 기록"
건축물 등 개발 제한 피해 우려에
반대 주민 "다복동 자결 자료 존재"
전북 진안군 상전면 수동리에 위치한 죽도. 정여립의 자결 장소 여부를 두고 논란이 되고 있다. 진안=김진영 기자

지난달 28일 전북 진안군 상전면 내송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냉랭한 기운이 감돌았다. ‘천반산 및 죽도 명승지 지정은 반대, 지방정원은 찬성’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지켜보던 한 마을 주민은 "저쪽 집은 명승지 지정 찬성, 이쪽 집은 명승지 지정 반대”라고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얼마 전부터 명승지 지정 찬성 쪽에서 마을 방송도 못 쓰게 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80여 명 주민이 사는 전북의 작은 마을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시골 마을 뒤흔든 정여립의 죽음

정여립이 죽은 장소가 죽도로 기록된 조선왕조실록 선조 22년 10월 17일 신묘 2번째 기사.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갈등의 시작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진안군이 천반산 죽도 일대 명승지 지정을 추진하자 관광자원 개발 효과를 기대해 찬성하는 주민과 지역 개발 제한을 우려해 반대하는 주민들 간 여론이 갈리기 시작했다. 찬반 여론은 조선 선조 때 대동계를 조직해 혁명을 꿈꾸다 반정세력으로 몰려 자결한 정여립 자결 장소를 둘러싼 논쟁으로 번지고 있다. 1570년 과거에 급제해 예조 좌랑과 홍문관 수찬 등을 지낸 정여립은 ‘천하가 공물인데 주인이 어찌 따로 있는가’라는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사상을 가진 인물이다. 서인에서 동인으로 전향하고, 스승 율곡 이이를 비판한 일로 낙향한 뒤 천반산 일대에서 대동계를 조직해 활동했다. 하지만 1589년 반역을 꾀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뒤 스스로 자결했다. 정여립 역모 사건은 조선 시대 가장 많은 피를 불러온 기축옥사로 번져 동인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진안군과 명승지 지정을 찬성하는 주민들은 ‘정여립이 죽도에서 자결했다’는 조선왕조실록을 명분으로 꼽는다. 선조실록 1589년 10월 17일에는 “정여립과 그 아들 옥남 및 같은 무리 두 사람이 진안 죽도에 숨어 있다는 말을 듣고 군관들을 동원시켜 포위·체포하려 하자, 정여립이 손수 그 무리 변사를 죽이고 아들을 찔렀으나 죽지 않자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고 돼 있다. 이에 대해 신정일 대동사상기념사업회 이사장은 "후대에 새로운 평가를 받는 정여립이 자결한 곳이자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손꼽히는 죽도를 명승지로 지정해 관광자원화하면 지역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명승지 지정 반대 주민들은 정여립 역모 토벌에 나선 진안 현감 민인백 기록을 근거로 '정여립이 자결한 장소가 죽도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민인백이 남긴 토역일기는 정여립 토벌 당시 "서면의 산척점에 다다르니, 점원과 촌민 36명이 반적을 다복에서 포위하고 있었는데, 곧 전주와 고산의 경계였다”고 기술돼 있다. 정여립 자결 장소가 진안군 부귀면 오룡리 다복동이라는 얘기다. 죽도와 다복동은 직선거리로 17㎞ 떨어져 있다.

최규영 진안향토문화연구소장은 “정여립의 사망지가 다복동이라는 역사 자료도 있다"며 "그런데 기축옥사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규명하기 전에 관광자원화를 하겠다고 나서는 것은 성급하다”고 지적했다. 정여립 자결 장소로 다복동을 주장하는 주민 103명은 최근 군에 명승지 지정 반대 성명서를 제출했다.

정여립이 죽은 장소가 다복동으로 기록된 민인백의 토역일기. 토역일기 영인본

진안군, 5일 주민설명회 등 통해 반대 주민 설득에

진안군 상전면 천반산 일대는 지질학적으로 중생대 백악기 중기 화산 폭발로 형성된 지형이다. 천반산 정상으로 향할수록 평평해지는 특징을 갖고 있다. 천반산 주변을 흐르는 구량천이 동서남북을 감싸고 있어 육지의 섬 같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이 죽도다. 명승지 지정이 이뤄질 경우, 천반산과 죽도 일대 탐방로 정비와 관광지 조성 사업 등 관련 예산 85%를 국‧도비로 지원받게 된다.

하지만 명승지로 지정되면 개발이 제한된다. 국가지정문화재 500m 이내 지역은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으로 지정돼 건축물의 용도변경, 수목 식재, 토지 매립 등 과정에 인·허가가 필요하다. 마을 주민들 입장에서는 작은 건축물 하나를 새로 짓는 데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일이 생기게 되는 셈이다. 한 주민은 "개인 소유의 땅에 있는 나무를 베는 일까지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를 지켜볼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28일 전북 진안군 한 주민이 천반산 죽도 명승 지정을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현수막을 내보이고 있다. 진안=김진영 기자

명승지 지정에는 주민 동의가 중요한 변수로 꼽힌다. 실제 문화재위원회의 주요 심의 요건에 토지소유주 및 주변 주민 동의가 포함돼 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4일 "천반산·죽도는 지난해 명승 지정 이전 단계인 잠재자원 신청이 들어왔으나, 주민 반대로 진안군이 자체 철회했다"며 "주민 동의에 관한 명시적 기준은 없지만 문화재 보존·관리를 위해선 지역민들의 협조가 필수적이기 때문에 주민 동의를 중요하게 살피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안군은 반대 주민들 설득에 주력하고 있다. 일단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반경을 100m로 줄이는 방안을 건의할 계획이다. 역사환경 보존지역은 지정 문화재의 역사문화환경 보호를 위해 문화재청과 협의해 조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라북도 문화재보호 조례'는 각 시장·군수가 전북지사 및 문화재청장과 협의해 범위를 설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이 100m로 줄게 되면 대부분 주민이 개발 제한에서 벗어난다는 게 진안군 설명이다. 진안군청 관계자는 "5일 주민설명회를 개최하는 등 명승지 지정에 대한 주민들의 이해를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진안= 김진영 기자 wlsdud4512@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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