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속출하자… 국회, 22개월 묵힌 코인법안 첫 논의
지난 29일 서울 강남구에서 발생한 40대 여성 살해 사건이 가상 화폐(코인) 투자 피해에 따른 복수극으로 알려진 가운데, 시세 조종이나 과장 광고 같은 불공정 거래 행위로 인한 가상 화폐 투자자 보호 관련 입법이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2년째 개점 휴업 상태였던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일부 의원들은 “가상 자산은 나도 비전문가라 잘 모르겠다”고 하는 등 국회가 입법 지연으로 사회적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기준 국민 8명 중 1명이 가상 자산을 이용했고, 국내 가상 화폐 범죄 피해액은 최근 5년간 4조7000억원에 이른다.
국회 정무위는 지난 28일 가상 화폐 관련 첫 법안 심사 소위를 열었다. 카카오은행 대표 출신 더불어민주당 이용우 의원이 2021년 5월 ‘가상자산업’ 법을 처음 발의한 지 22개월 만이다. 4일 민주당 소속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 측은 관련 논의가 지연된 것에 대해 “아직 미국이나 유럽도 가상 자산과 관련해 제대로 입법이 안 된 상황이라 글로벌 기준을 어느 정도 맞춰야 해서 기다리던 측면이 있었다”고 했다.
2년 전 이용우 의원은 “최근 비트코인·이더리움 등 가상 자산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해킹 사고나 다단계 판매 등 투자 사기 행위가 급증하고 있으나 법과 제도를 정비해 이용자 보호에 나서고 있는 미국·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현행법 규정이 없어 이용자 보호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이후 지난달까지 여야에서 비슷한 내용으로 발의한 가상 자산 관련 법안만 18개가 정무위에 계류됐다. 대부분 가상자산업을 법률로 규정해 제도권으로 들여와 감시·감독하고 이용자 보호 규정을 신설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국회 법안 논의가 멈춘 사이 작년 5월 한국산 가상 화폐 ‘테라·루나’가 일주일 새 97% 대폭락하는 등 수많은 피해자가 양산됐다. 그러다 보니 ‘테라·루나’ 피해자들은 최근 해외에서 체포된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를 관련 법이 없어 처벌 수준이 낮은 국내로 송환하지 말고 미국으로 보내 강력히 처벌하라고 주장하는 실정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2009년 메이도프라고 70조원 가까이 폰지 사기(다단계 금융 수법)를 한 사람이 150년 형을 받았는데, (테라·루나가) 52조원 정도라면 적어도 100년 이상이 나오지 않을까라고 추론할 수 있다”며 “그러나 한국에선 이를 사기죄로 처벌하기도 규정상 쉽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국내에서 사기죄로 처벌하려면 처음부터 명백한 의도가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권도형 사건’의 경우 이를 증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서도 정부 금융위원회 관계자들은 “여태까지 입법이 굉장히 지연됐고, 결과적으로 금융 소비자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쳤다”며 “이용자 보호를 위해 빨리 입법을 서두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국민의힘 윤창현 의원도 “이게 오랫동안 정체돼 있는 사안인데 지금 굉장히 시급하고 ‘테라·루나’ 관련 피해도 있고 굉장히 많은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정무위 한 의원은 통화에서 “해외도 마찬가지겠지만 이게 새로운 분야이다 보니 누가 딱 부러지게 정답을 말해줄 수 있는 전문성 있는 사람이 없어 어려운 것”이라며 “나도 비전문가라 다 같이 배워가는 과정이고, 답이 없으니까 이제 논의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날 회의에서 일부 의원들은 서로 “‘가상 화폐’가 맞느냐, ‘가상 자산’이 맞느냐” 같은 이야기도 주고받았다.
법안을 처음 발의했던 민주당 이용우 의원은 2년간 국회 논의가 지연됐던 것과 관련, “의원들이 자꾸 가상 자산을 진흥시키고 육성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고 그 논리를 주장하는 바람에 그간 문제가 생겼다”며 “‘테라·루나’ 사태 등 돌아가는 걸 보고 지금 제일 급한 건 투자자 보호와 불공정 거래 금지라는 데 합의가 된 것”이라고 했다. 정무위 측은 이달 중 법안 심사를 마치고 최대한 입법 속도를 낸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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