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성공하려면 여야가 ‘정쟁 않겠다’ 합의부터 이뤄야”
제네바=이지운 기자 2023. 4. 5. 03:05
라울 루기아-프릭 국제사회보장협회(ISSA) 사회보장개발부 이사 인터뷰
연금개혁을 추진할 때는 주요 정당들이 이를 정치적 경쟁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한 정권이 개혁을 단행하더라도 그 성과가 집권기간 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보장협회(International Social Security Association·ISSA)의 라울 루기아-프릭 사회보장개발부 이사(59)는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나 “연금개혁 성공을 위해선 이를 정쟁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여야 간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ISSA는 세계 160여 개국, 320여 개의 사회보장 기관들이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기구다. 국내 조직 중에서도 국민연금공단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이 가입돼 있다.
● “정쟁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원회 필요”
루기아-프릭 이사는 “연금개혁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10년, 20년 안에도 그 성패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개혁도 단기적으로는 ‘쓴 약’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상대 정당이 이를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반대로 한 정권이 포퓰리즘적인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부작용 또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이러한 여야 간 합의가 오래 지속되려면 국회,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문 기구를 설치해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1995년 이뤄진 스페인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예로 들었다. 루기아-프릭 이사에 따르면 당시 스페인 펠리페 곤잘레스 총리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여야가 선거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톨레도 협약(Toledo Pact)’을 야당과 합의했다. 톨레도 합의에 따라 의회 내에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위원회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또 루기아-프릭 이사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단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집권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통상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치 지도자가 인기를 얻기 힘들다는 통념을 반박한 것이다. 그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2000년대에 은퇴 연령을 높이고 국민들의 부담 비율을 높이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단행했는데, 그 결과 빈곤이 해소돼는 효과가 있었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도 집권정당이 승리했다”고 설명했다.
● “플랫폼 노동자, 연금제도 내로 끌어들여야”
루기아-프릭 이사는 또 배달대행 어플리케이션(앱) 기사나 대리운전 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를 연금 제도 내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연금 제도는 50년 전, 근로자들이 ‘풀타임’으로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던 환경을 기반으로 설계돼 있어 오늘날의 경제활동 형태를 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색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들을 연금 제도로 끌어들인다면 이들의 노후 소득 보장뿐만 아니라 연금의 지속가능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풀타임’ 근무자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동안 연금 보험료를 계속 내게 해 재정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플랫폼 노동자들은 원칙적으로 지역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연금보험료(9%) 전액을 본인이 매달 부담해야 해 회사와 근로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에 비해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월 소득이 낮은 경우가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가입을 꺼리는 실정이다. 우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도 최근 내놓은 경과 보고서에서 “1년 미만 단기근로자 및 플랫폼 노동자의 단계적 연금제도 편입 모색”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한편 루기아-프릭 이사는 최근 격렬한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 상황에 대해 “분명 개혁 내용 자체엔 타당한 면이 있겠으나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다 보니 반발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모두가 만족하는 연금개혁이란 존재할 수 없지만, 모든 구성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을 통해 ‘양보’하게 되는 계층에 대해선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다음 정책을 펼 때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정부가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금개혁을 추진할 때는 주요 정당들이 이를 정치적 경쟁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합의를 이뤄야 합니다. 한 정권이 개혁을 단행하더라도 그 성과가 집권기간 내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제사회보장협회(International Social Security Association·ISSA)의 라울 루기아-프릭 사회보장개발부 이사(59)는 지난달 2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기자단과 만나 “연금개혁 성공을 위해선 이를 정쟁 수단으로 삼지 않겠다는 여야 간 합의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ISSA는 세계 160여 개국, 320여 개의 사회보장 기관들이 참여하는 최대 규모의 국제기구다. 국내 조직 중에서도 국민연금공단과 국민건강보험공단, 근로복지공단 등이 가입돼 있다.
● “정쟁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원회 필요”
루기아-프릭 이사는 “연금개혁과 같은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10년, 20년 안에도 그 성패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장기적인 관점에선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개혁도 단기적으로는 ‘쓴 약’을 피하기 어려운 만큼 상대 정당이 이를 공격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반대로 한 정권이 포퓰리즘적인 의사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부작용 또한 시간이 지난 후에야(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이러한 여야 간 합의가 오래 지속되려면 국회,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전문 기구를 설치해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1995년 이뤄진 스페인의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예로 들었다. 루기아-프릭 이사에 따르면 당시 스페인 펠리페 곤잘레스 총리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은 여야가 선거에 이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톨레도 협약(Toledo Pact)’을 야당과 합의했다. 톨레도 합의에 따라 의회 내에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전담하는 독립적인 위원회가 설치됐고, 이 위원회는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또 루기아-프릭 이사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단행한다고 해서 무조건 집권 정당이 다음 선거에서 패배하는 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통상 사회보장제도 개혁이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정치 지도자가 인기를 얻기 힘들다는 통념을 반박한 것이다. 그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등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2000년대에 은퇴 연령을 높이고 국민들의 부담 비율을 높이는 사회보장제도 개혁을 단행했는데, 그 결과 빈곤이 해소돼는 효과가 있었고 결국 다음 선거에서도 집권정당이 승리했다”고 설명했다.
● “플랫폼 노동자, 연금제도 내로 끌어들여야”
루기아-프릭 이사는 또 배달대행 어플리케이션(앱) 기사나 대리운전 기사 같은 플랫폼 노동자를 연금 제도 내로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재 연금 제도는 50년 전, 근로자들이 ‘풀타임’으로 한 직장에 오래 근무하던 환경을 기반으로 설계돼 있어 오늘날의 경제활동 형태를 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회색지대에 있는 플랫폼 노동자들을 연금을 비롯한 사회보장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들을 연금 제도로 끌어들인다면 이들의 노후 소득 보장뿐만 아니라 연금의 지속가능성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풀타임’ 근무자가 점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형태의 근로자들이 일하는 동안 연금 보험료를 계속 내게 해 재정 안정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플랫폼 노동자들은 원칙적으로 지역가입자로 국민연금에 가입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역가입자는 연금보험료(9%) 전액을 본인이 매달 부담해야 해 회사와 근로자가 반반씩 부담하는 직장가입자에 비해 부담이 크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월 소득이 낮은 경우가 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은 국민연금 가입을 꺼리는 실정이다. 우리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민간자문위원회도 최근 내놓은 경과 보고서에서 “1년 미만 단기근로자 및 플랫폼 노동자의 단계적 연금제도 편입 모색”을 과제로 제시한 바 있다.
한편 루기아-프릭 이사는 최근 격렬한 연금개혁 반대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프랑스 상황에 대해 “분명 개혁 내용 자체엔 타당한 면이 있겠으나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다 보니 반발이 심해졌다”고 분석했다. 루기아-프릭 이사는 “모두가 만족하는 연금개혁이란 존재할 수 없지만, 모든 구성원의 이야기를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개혁을 통해 ‘양보’하게 되는 계층에 대해선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다음 정책을 펼 때 보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정부가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네바=이지운 기자 ea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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