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 여당땐 포기한 법을 야당되니 강행… 尹 “양곡법은 포퓰리즘”

김동하 기자 2023. 4.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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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권 행사한 대통령 “남는 쌀 강제 매수법”
용산으로 달려간 野 - 더불어민주당 박홍근(앞줄 왼쪽에서 셋째) 원내대표와 야당 의원들이 4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양곡관리법 개정안 재의 요구(거부권)에 항의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농민에 대한 배신”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이 법안이 궁극적으로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포퓰리즘 법안이란 판단 때문이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양곡법을 강행 처리하면서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는 점도 재의 요구의 큰 이유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생산성을 높이고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그러면서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의 막대한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말했다. 과반 의석인 민주당이 입법을 강행해 지난달 23일 국회에서 양곡법을 의결하면서 ‘남는 쌀 방지법’ ‘쌀값 정상화법’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다르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쌀 생산이 과잉되면 오히려 쌀 시장 가격을 떨어뜨리고 농가 소득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전문가들 연구 결과를 인용하면서 “법안 처리 이후 40개의 농업인 단체가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전면 재논의를 요구했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야당을 겨냥해선 “그간 정부는 이번 법안의 부작용에 대해 국회에 지속적으로 설명해 왔습니다만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했다. 거대 야당인 민주당은 양곡법을 처리하기 위해 국민의힘이 위원장인 법제사법위원회를 건너뛰고 ‘본회의 직회부’를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민주당 출신인 무소속 윤미향 의원을 활용해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했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019년 쌀 의무매입법을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하자 당시 문재인 정부가 반대했다”며 “문재인 정부는 왜 지금 우리처럼 이 법안을 반대했겠느냐”고 했다. 전임 문재인 정부에서도 반대한 법안을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 지시에 따라 국민의힘과 정부는 쌀 수급 안정을 비롯해 농가 소득 향상 방안 등을 논의하기 위한 당정 협의를 조만간 개최할 예정이다. 양곡법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는 대신 대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재의를 요구했지만, 민주당의 단독 처리는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거부권 행사 법안이 재의결되기 위해선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있어야 한다. 민주당 의석수는 169석으로 전체 의원수(299명)의 절반을 넘는 수준이어서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는 “대통령 거부권은 국회 입법권을 정면 거부하는 일”이라고 했다. 민주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쌀값 정상화법’(양곡법)을 거부해 국민 뜻을 무시한 윤 대통령을 규탄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지난 3일에는 농민 단체 일부와 함께 국제엑스포 실사단이 국회를 방문하기 직전 대통령 규탄 결의대회를 열고 삭발식을 했다.

양곡법 이후로도 민주당이 간호법, 방송법 개정안, 이른바 ‘노란봉투법’ 등 정부·여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을 줄줄이 본회의에 직회부할 방침이어서 윤 대통령이 추가로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여당은 이 법안들을 반대하면서 “거부권 행사 건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야당이 거부권 행사가 유력한 법안을 강행 처리하려는 이유는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때마다 ‘국회와 민의를 무시한다’는 프레임을 씌울 수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야당이 강행하는 법은 간호사와 공영방송 등 수혜자가 뚜렷한 것도 특징이다. 법안 수혜자는 확실히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는 반면 반대자들은 법안에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어 덜 민감하게 반응할 사안이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이 이를 저지하면 표심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이 과정에서 삭발식과 장외 투쟁 등을 하며 여론 몰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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