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행 70만원’ 해외여행보다 비싼 국내 수학여행 경비

윤상진 기자 2023. 4.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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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전엔 40만원… 교통·숙박·식비 급등
“차라리 학원 갈래”… 수학여행 포기도 속출

서울 A여고는 다음 달 제주도로 2박 3일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1인당 비용을 70만원으로 잡았다. 코로나 사태 전인 2019년에는 같은 일정에 41만원을 썼다. 70%가 오른 것이다. 서울 B고등학교도 5월에 2박 3일 제주도로 가는데 예상 비용은 61만원이다. 5년 전 같은 일정의 비용은 35만원이었다.

코로나 방역 규제가 풀리면서 전국 학교들이 수학여행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껑충 뛴 비용 때문에 학부모들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초·중·고교 1320곳 중 45.5%인 601곳이 “올해 수학여행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작년 수학여행을 간 서울시내 학교 201곳에 비해 3배로 증가한 것이다. 그런데 4일 기준 서울시교육청에 공개된 학교별 수학여행 예상 비용 등에 따르면 학교들은 제주도는 60만~70만원대, 부산권은 50만원대에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코로나 이전인 2018~2019년에는 제주도는 40만원 안팎, 부산권 30만원대였다. 고등학생 자녀를 둔 전모(47)씨는 “아이가 초등학교 수련회 이후 학교에서 처음 가는 여행이라 좋아하는데 솔직히 비용이 부담스럽다”고 했다.

국내 수학여행 비용이 해외여행만큼 가격이 오른 것은 일차적으로 교통∙숙박∙외식비 등 여행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랐기 때문이다. 특히 전세버스 비용은 대부분 지역에서 30% 이상 올랐다. 코로나 시기 전세버스 기사들이 다른 직업을 찾아 떠나면서 기사가 부족한 데다 기름 값 상승까지 겹쳤다. 한 여행업계 관계자는 “제주도의 경우 코로나 이전 성수기 기준 하루 50만원 수준이던 전세버스 비용이 현재는 7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여행객들이 몰리는 주말에는 버스 기사가 부족해 여행객들을 받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진다. 2014년 세월호 사고 이후 학교 전체가 아닌 소규모 여행이 권고되는 것도 수학여행 비용이 올라간 이유라고 한다. 강원권 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수학여행을 소규모로 가면 단체 때보다 가격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학부모들은 고민스럽다. 비용은 부담되는데 평생 기억에 남을 여행을 안 보낼 수도 없기 때문이다. 여러 번 가봤던 제주나 부산을 또 보내야 하느냐는 생각도 든다고 한다. 중3 딸을 제주 수학여행에 보낸 서울의 한 학부모는 “물가가 올라 생활비도 빠듯한데 아이가 가고 싶다고 해 70만원을 썼다”고 했다. 고등학교 자녀를 둔 학부모 윤모(53)씨는 “이미 제주도는 여러 차례 다녀왔기 때문에 차라리 돈을 더 주고서라도 해외를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했다. 코로나 시기 제주에 가족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많아 같은 곳을 또 수학여행으로 가는 것은 ‘가성비’가 떨어진다는 반응이다. 인터넷 ‘맘 카페’에선 “남도 여행을 간다는 데도 50만원이 든다고 한다. 추억이 될 여행이라 안 보낼 수도 없다” “수학여행 간다고 옷까지 사줬더니 90만원이 나갔다” 등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비용 때문에 일정을 축소하는 학교도 있다. 경기도 C여중은 다음 달 전라남도로 ‘1박 2일’ 수학여행을 떠나는데 원래 일정보다 하루 줄인 것이다. 4년 만의 수학여행이지만 비용 부담을 감안한 결정이다. 다섯 개 학급이 떠나는데 비용을 아끼기 위해 전세버스도 4대만 빌렸다고 한다. 이 학교 이모(45) 교사는 “오랜만의 수학여행이라 학생들 입장에선 하루 더 가면 좋겠지만 2박 3일 일정은 비용 부담에 안전에 대한 걱정 문제도 있다”고 했다.

국내 수학여행 비용이 뛰면서 해외 수학여행을 계획하는 학교들도 있다. 서울의 한 고등학교는 올해 3박 4일 일정의 일본 수학여행을 계획 중이다. 지난달 수학여행 설문 조사를 하면서 제주도(2박 3일∙70만원)와 일본(3박 4일∙150만원) 일정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는데 일본을 선택한 학생과 학부모의 비율이 월등히 높았다고 한다. 이 학교 학부모 김모(42)씨는 “제주도가 식상하기도 하고 가격에서 장점이 큰 것도 아니기 때문에 아이가 가고 싶어하는 일본을 선택했다”고 했다. 하지만 100만원이 넘는 여행 비용이 부담돼 아이를 보내지 못하겠다는 학부모도 있다고 한다.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는 “이전과 달리 대인 관계에 서툴러 수학 여행에 빠지는 애들도 많고, 여행 경비까지 너무 오르니까 차라리 학원 가겠다는 아이도 많다”고 말했다.

시도교육청들은 저소득층 학생들에게 수학여행비 일부를 지원하고 있다. 전체 학생들에게 일정 금액을 주는 교육청도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어려운 학생들에게 최대 50만원의 여행비를 지원한다. 대상은 전체 학생의 6.4% 정도다. 경기도교육청도 여행 지원금을 작년 최대 30만원에서 47만원으로 올렸다. 부산교육청은 전체 학생에게 최대 40만원을 지원하고 취약 계층엔 전액을 대준다. 경남교육청은 초·중은 20만원, 고교는 30만원의 여행비를 준다. 이런 지원금은 정부가 각 시도교육청에 나눠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교부금)에서 충당된다.

교육계 일각에선 “보편 급식처럼 수학여행도 차별이 생기면 안 되는 분야인 만큼 교육교부금을 좀 더 쓰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현행법상 내국세에서 20.79%를 배정하는 교육교부금은 계속 늘어나는데 학생 수는 급감하는 상황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21년 기준 전국 시도교육청이 쌓아둔 돈은 6조6000억원대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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