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TT선 ‘매운 맛’ 범죄실화 콘텐츠, 공중파에는 ‘순한 맛’으로 떴다

이태훈 기자 2023. 4. 5.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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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에 초점 맞춘 ‘스모킹 건’
영화속 범죄분석 ‘지선씨네마인드’
OTT 범죄다큐 선정성 논란 넘어
재미·교양 모두 잡아 인기 끌어
매주 일요일 밤 11시 5분 방송되는 ‘지선씨네마인드’시즌2(위 사진)와 매주 수요일 밤 9시 50분 방송되는 KBS 2TV ‘과학수사대 스모킹 건’. /SBS·KBS

범죄심리학자 박지선 교수의 영화 속 범죄 분석으로 인기를 모았던 SBS ‘지선씨네마인드’가 지난 2일 시즌2의 첫 회를 방송했다. KBS는 법의학자 진행으로 과학수사의 힘에 초점을 맞추는 ‘과학수사대 스모킹 건’을 지난달 29일 처음 방송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PD가 만든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웨이브의 ‘국가수사본부’의 인기에 이어 범죄 실화 콘텐츠가 공중파 방송에서도 시청자들을 사로잡기 시작했다. 자극적 선정성으로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던 OTT 콘텐츠와 달리, 이들 공중파 콘텐츠는 학자의 진행으로 재미와 교양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도 공통점이다.

‘지선씨네마인드’ 시즌2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을 통해 붙잡히지 않은 연쇄살인범의 머릿속을 들여다봤다. 박 교수의 분석이 조근조근 합리적이고 설득력있는 데다, 영화를 소재로 한 이야기도 흥미로워 프로그램을 보다 무릎을 치며 감탄하게 된다. KBS ‘과학수사대 스모킹 건’은 명강의로 유명한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유성호 교수가 직접 진행을 맡았다. 범죄에 대한 선정적 접근을 피하고 과학 수사의 힘을 강조하는 잘 짜인 교양 프로그램 같은 탄탄한 내용이 강점. 첫 방송에선 2003년 김해에서 발생한 수영장 독극물 살인 사건을 다뤘다.

영미권에서 ‘True Crime’이라고 불리는 범죄 실화 콘텐츠는 전통적 인기 장르. 범죄심리학자들은 살인이나 극악한 범죄를 다룬 이야기를 보는 것에서 사람이 ‘뒤틀린 기쁨’을 얻는다고 본다. 미국의 대중문화잡지 ‘벌처’는 “대중은 가장 원초적이고 강렬한 감정인 두려움을 촉발하기 때문에 실제 범죄에 끌린다. 통제된 환경에서 두려움과 공포를 경험하지만 실제 위협을 가하지는 않는 안전한 엔터테인먼트”라고 분석했다.

범죄 실화 콘텐츠의 인기는 넷플릭스가 촉발한 오리지널 콘텐츠 전쟁 발발 이후 국내외 OTT들이 다큐 포맷에 주목하면서 불붙었다. 이들에겐 상대적 저예산으로 제작 가능한 데다, 기존 다큐의 주소비층인 중년 남성 시청자를 넘어 다양한 연령층의 시청을 견인할 수 있는 콘텐츠가 매력적이었다.

동시에 일회적, 피상적, 자극적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붙잡아야 하는 OTT의 특성상 공중파나 케이블 다큐에서는 차마 다룰 수 없었던 소재들을 좀 더 직설적인 방식으로 다루기도 했다. 올해 사이비 종교 이야기 ‘나는 신이다: 신이 배신한 사람들’을 내놓은 넷플릭스의 경우, 2021년 ‘레인코트 킬러: 유영철을 추격하다’(이하 ‘레인코트 킬러’)를 시작으로 지난해 ‘사이버 지옥: n번방을 무너뜨려라’ 등 범죄 다큐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왔다.

소재와 표현의 한계를 깨뜨리는 것은 늘 양날의 칼. ‘레인코트 킬러’는 피해자를 골목길에서 따라가 살해하는 모습을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1인칭 시점으로 재연하며 1인칭 내레이션을 깔았다. 실제 현장 사진 혈흔을 그대로 노출하기도 했다. 넷플릭스는 해외 다큐에서도 피해자 목에 설치된 시한폭탄이 터지는 장면 (’이블 지니어스’), 새끼 고양이를 진공 압축팩에 넣고 죽이는 장면(‘고양이는 건드리지 마라’) 등을 여과 없이 그대로 반복해 내보내는 방식으로 충격을 줬다.

‘지선씨네마인드’와 ‘과학수사대 스모킹 건’의 등장은 자극적 선정성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범죄 실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더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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