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일본인을 추모하러… 봄비에 韓·日 인사 수십명이 모였다
아사카와 다쿠미 92주기 추모식
장사익 ‘아리랑’·'봄비’ 불러
“한일 간 어두운 과거사와 해묵은 감정들, 오늘 내리는 이 봄비에 다 털어냅시다.”
4일 오전 서울 중랑구 망우리 묘지 내 있는 203363호 무덤 앞에서 아사카와 다쿠미(淺川巧·1892~1931)씨의 아흔두 번째 기일을 맞아 추모식이 열렸다. 고인은 일제 시대 때 조선총독부 산림과 직원으로 일하면서 한반도 조림(造林)에 앞장섰고, 형 노리다카와 조선백자 등 미술품 3000여 점을 수집해 경복궁에 세운 조선민족미술관에 기증했다. 그의 추모석에는 “한국의 산과 민예를 사랑하고 한국인 마음속에 살다 간 일본인 여기 한국의 흙이 되다”라 적혀 있다.
이날 추모식에는 한국과 일본 인사 50여 명이 참석했다. 추모식을 주최한 ‘아사카와 노리다카·다쿠미 형제 현창회’가 알리지도 않았는데 중랑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도 직접 현장을 찾았다. 형제인 노리다카도 조선 도자기와 공예품을 연구하고 알리는 데 공헌을 했다.
이번이 첫 추모식 참석이라는 소리꾼 장사익(74)씨가 가장 먼저 헌주(獻酒)를 했고 무반주로 ‘아리랑’과 ‘봄비’ 2곡을 불렀다. 장씨는 “나는 몰랐지만 한국의 문화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구해준 것이 고맙다”며 “한일 교류에 있어 문화의 힘과 중요성을 다시 실감한다”고 했다.
정부가 지난달 강제징용 배상 문제 해법으로 발표한 ‘제3자 변제’ 관련 실무를 총괄하고 있는 심규선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 이사장도 참석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심 이 사장은 “한국은 현재 일본 문제로 과거와 미래가 싸우고 있는데 조선과 일본 사이에서 갈등한 당신의 삶에서 작은 용기를 얻고자 한다”며 “당당하게 현재를 살다 간 당신을 등불 삼아 저도 험한 산길에 난 작은 오솔길을 걸어보겠다 다짐한다”고 했다.
이동식 현창회 회장은 “아사카와의 마음을 일본인도 많이 알게 돼 한국과 일본이 더 좋은 친구로 새로운 길을 걸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현창회 간사를 맡고 있는 함재경씨는 “한일이 정치 문제로 시끄러워도 민간 교류는 계속되어야 한다”며 “코로나가 끝난 만큼 내년에는 일본에서도 더 많은 인원이 추모식에 참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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