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실만 보이는 ‘주 69시간’ 혼선… “부처에 실질권한 나눠야” [인사이드&인사이트]

장관석 기자 2023. 4. 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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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정-대통령실에 드리운 ‘정책 엇박자’

《“윤석열 대통령은 연장 근로를 하더라도 주 60시간 이상은 무리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3월 16일·안상훈 대통령사회수석비서관)

“주 60시간은 가이드라인이 아니라 윤 대통령의 ‘개인적 생각’이다. 60시간 이상도 나올 수 있다.”(3월 20일·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지난달 6일 발표된 근로시간 개편안이 ‘주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으로 비화하자 윤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뒤 나온 참모들의 설명은 이렇게 엇갈렸다. 대통령실 내에서도 혼선이 이어진 것. 결국 윤 대통령이 지난달 21일 생중계된 국무회의 모두 발언에서 “저는 주당 60시간 이상 근무는 건강 보호 차원에서 무리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하며 논란은 일단락됐다.

이 문제는 두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정부 출범 1년을 앞두고도 계속되는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의 정책 ‘엇박자’ 논란이 첫 과제다. 대통령실 핵심 참모의 설명이 엇갈리며 정책 컨트롤타워 격인 대통령실의 정책 기능이 허점을 보였다는 것. 또 다른 문제는 대통령의 의중이 어떻게 참모들과 정책에 반영되는지를 둘러싼 메시지의 문제다.》

●“권리가 의무로 잘못 덧씌워져”


대통령실은 ‘주 최대 69시간 근로’ 논란에 대해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한 홍보나 설명이 부족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입법예고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충분한 소통 없이 발표돼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 및 유연화와 근로자 권익 강화라는 정책이 오히려 ‘과로사회’ 논란으로 비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고용노동부 주변에서는 “입법예고 전부터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의 방향을 여러 번 발표해 추진된 사안인데, 뜻하지 않은 지점에서 문제가 생기니 책임이 부처로 돌아온다”는 분위기도 있다.

문제는 충분한 여론 수렴 없이 정책을 발표하고 여론이 악화되면 재검토하는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해 7월 교육부가 내놓은 ‘만 5세 초등학교 입학’이 충분한 사전 논의와 여론 수렴 없이 이뤄지다 거센 비판을 받고 백지화된 사례가 대표적이다. 학제 개편안은 정부 출범 이후 최대 악재로 여겨질 만큼 지지율에 치명적이었다. 교육부는 발표 11일 만에 개편안을 철회했고, 박순애 전 교육부 장관은 취임 34일 만에 사퇴했다.

1월 ‘비동의 간음죄’를 둘러싼 부처 간 엇박자도 논란이 됐다. 여성가족부는 법무부와 함께 형법상 강간 구성 요건을 ‘폭행과 협박’에서 ‘동의 여부’로 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법무부는 “비동의 간음죄 개정 계획이 없다”고 반박했고, 여당에서도 비판이 나오자 “개정 계획이 없다”고 후퇴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당시 내부 회의에서 부처 간 브리핑 전 조율이 부족했다며 강하게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은 4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근로시간 개편도, 초등학교 입학 문제도 ‘의무’가 아니라 근로자와 학부모의 ‘선택권’을 부여하는 형태로 설명하고 접근했으면 논란이 덜했을 수 있다”며 “윤 대통령의 철학인 자유의 확장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들이 ‘의무’로 국민에게 설명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정책실장 없애고 국정기획수석 보강했지만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노동·교육·연금 등 3대 개혁을 담당하는 사회수석실의 업무가 과중하다는 얘기가 적지 않다. 더군다나 근로시간, 여성, 초등학교 입학 등 정치 성향과 이념을 떠나 국민 생활에 핵심적인 영향을 끼쳐 여론이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에서 허점이 드러났다. 사회수석실은 과감한 정책 집행을 위한 돌파력보다는 전문성과 섬세한 조정 및 설계가 핵심적인 부서다.

윤석열 정부 출범과 함께 폐지된 정책실장의 빈자리를 언급하는 목소리도 있다. 윤 대통령은 ‘슬림한 대통령실’을 지향하며 문재인 정부의 3실장 체제에서 정책실을 폐지하고, 비서실장과 안보실장의 2실장 체제로 출범했다.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이 이명박 정부 정책실장을 맡은 ‘정책통’인 점도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있던 대통령실 조직개편은 정책조정 역량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추석 연휴 직후 개편에서 ‘국정기획수석비서관’을 신설하고, 연말에는 정책조정비서관을 만들어 3대 개혁과 부처 정책 조율 역량을 강화했다. 그럼에도 주 69시간 근로 논란을 비롯한 엇박자 등 허점이 노출된 것. 김형준 배재대 석좌교수는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실질적으로 정책실 업무를 이관섭 국정기획수석이 맡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부처 법률안과 대통령 지시, 국민 여론을 섬세하게 종합하고 판단, 조율하는 기능이 아직 아쉽다”며 “정책 입안과 집행에 고도의 정무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역량이 지금 더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3대 개혁을 담당하는 사회수석비서관실의 부담을 덜기 위해 교육문화수석을 신설하는 방안도 한때 검토된 적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회수석실 산하에 보건복지·고용노동·교육·기후환경·문화체육 등 5개 비서관이 배치돼 개혁 과제의 빈틈없는 추진을 위해서는 업무를 함께 나눌 수석이 필요하다는 것. 여권 관계자는 “적합한 인물을 알아보는 선에서 스크린을 거친 적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집권 1년을 맞은 윤 대통령이 정책 역량을 보강하기 위한 개선 방안을 추가로 고심할 수밖에 없다는 말도 나온다.

●“당정협의 실질화” 내부 의사소통 체계 정비

여권은 조직 정비와 동시에 정책이 입안되고 추진되는 과정을 둘러싼 내부 의사소통 리더십 전반도 재정비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근로시간 유연화 정책 혼선을 기점으로 당과 정부 및 대통령실 사이의 소통을 부쩍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당정협의를 실질적 수준으로 격상시켜 정책 과정에서 국민 여론이 충분히 담길 수 있어야 한다”며 “당이 대통령실에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실질적으로 의견을 줘야 하고, 때로는 대통령실을 견제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기획수석이 사실상 과거의 정책실장 역할을 맡고, 여당의 정책위원회 의장과 ‘핫라인’ 체계를 구축하는 등의 조치가 언급되는 것. 근로시간 개편을 포함한 노동개혁 과제를 기존 사회수석실에서 국정기획수석실 담당으로 변경한 상태다. 윤 대통령도 정책 설계와 추진 과정에 당을 통해 국민 여론을 충분히 듣고 추진하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 의중 두고 엇갈린 정책 참모들

근로시간 개편안 등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두고 참모들의 설명이 엇갈린 점도 논란이 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노무현 정부 시절 ‘수능 1등급’ 비율을 두고 노 대통령의 의중을 ‘7%’로 읽은 청와대 참모들이 4%로 제한하려는 교육부를 압박해 교육부 장관의 사의 표명으로 비화했던 사건이 회자된다. 정작 노 대통령의 의중은 ‘7%는 그냥 막연히 해본 생각일 뿐, 어느 쪽이 옳은지 내가 어떻게 아느냐. 교육부가 결정하는 대로 따르자’는 취지였다고 한다. 정책에 대한 대통령의 의중을 참모들이 확대 또는 과잉 해석해 정책이 뒤틀릴 수 있었던 사례로 언급된다. 여권 관계자는 “주 69시간 근로 논란에 대한 대응과 발표 과정을 곰곰이 곱씹어 봐야 한다”며 “정책 참모들은 대통령의 어느 발언이 지시이고 제안인지, 아니면 단순 의견 또는 농담인지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책 입안·집행 때 부처에 실질 권한 줘야”

정책 입안과 집행 과정에 당과 부처에 실질적 권한을 줘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 일각에서는 “부처가 대통령실만 바라보고, (현안에 대한) 대응 수위도 약해 ‘영’이 서지를 않아 결국 대통령실이 나서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는 말도 한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대통령실이 정책과 정무 현안 대부분을 직접 진두지휘하려다 생긴 문제라는 시각도 있다. 정부 운영이 대통령실을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부처가 리스크를 짊어지지 않으려 하고 집행기구에 불과해질 수 있다는 것. 금태섭 전 의원은 통화에서 “고용부 장관이 정책을 발표했다가 문제가 생기니 용산이 이를 부인하는 상황이면 관료들은 당연히 더 복지부동일 수밖에 없다”며 “부처에 실질적 권한을 주고, 억울하더라도 책임은 대통령실이 지는 모습을 보여야 관료들이 움직이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정책실장을 지낸 김대기 현 비서실장은 자신의 저서 ‘덫에 걸린 한국경제’에서 “칭찬은 코끼리도 춤추게 한다. 관료는 코끼리보다 더하다”며 “무기력한 관료는 국가의 손해이기 때문에 관료의 기를 살릴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장관석 기자 jks@donga.com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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