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이슈/신광영]참 다른 미국 유대인, 이스라엘 유대인
신광영 국제부 차장 2023. 4. 5. 03:04
영화 ‘블랙 스완’으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받은 내털리 포트먼(42)은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3세 때 미국으로 이주한 유대인이다. 포트먼은 2018년 유대인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제네시스 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이스라엘이 전 세계 유대인 중 빼어난 업적을 세운 한 명을 골라 매년 수여하는 상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루스 긴즈버그 대법관 등이 받았었고 상금도 100만 달러나 된다. 하지만 포트먼은 그해 4월 시상식에 불참하며 이렇게 밝혔다.
“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 난민들의 피난처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유대인의 가치와 어긋난다. 나는 이스라엘을 아끼기 때문에 폭력, 불평등, 권력 남용에 저항하려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에워싼 ‘분리장벽’ 앞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실탄으로 진압해 3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꼬집은 것이다.
“이스라엘은 정확히 70년 전 홀로코스트 난민들의 피난처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늘날 (이스라엘의) 잔혹 행위로 고통받는 사람들이 있고 이는 유대인의 가치와 어긋난다. 나는 이스라엘을 아끼기 때문에 폭력, 불평등, 권력 남용에 저항하려 한다.”
당시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에워싼 ‘분리장벽’ 앞에서 시위하던 팔레스타인인들을 실탄으로 진압해 37명이 숨지는 일이 있었는데 이를 꼬집은 것이다.
포트먼의 수상 거부는 필자에겐 미국 내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 간 차이에 주목하게 한 사건이었다. 유대인 하면 나치 대학살의 피해자란 이미지가 강했는데 어느덧 팔레스타인은 물론, 종교적·인종적 소수자들을 억압하는 가해자로 변해버린 이스라엘을 보며 괴리감을 느껴오던 차에 유대인들 내에서도 간극이 크다는 걸 일깨워줬다.
미국의 유대인은 약 600만 명이다. 이스라엘 내 유대인 700만 명(전체 인구 970만 명)과 맞먹는 규모다. 두 집단의 차이는 도널드 트럼프(공화당)와 조 바이든(민주당)이 맞붙은 2020년 대선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미국 여론조사기관인 퓨리서치센터 조사 결과 미국 내 유대인의 75%가 바이든을 지지했다. 트럼프 지지는 22%에 그쳤다. 비슷한 시기 이스라엘에서 실시된 여론조사 결과는 정반대였다. 이스라엘 국민의 63%는 트럼프를 지지했고, 바이든 지지는 고작 19%였다.
트럼프가 2018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 있던 미 대사관을 팔레스타인과 분쟁 지역인 예루살렘으로 전격 이전해 이스라엘 편을 들어줬을 때도 미국 유대인들은 “국제법 위반이고, 아랍을 자극해 반유대주의 증오범죄를 부추길 것”이라며 반대했다.
2021년 5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로켓포 공격에 이스라엘이 대대적인 보복을 해 팔레스타인 주민 300여 명이 사망하는 참사가 벌어진 적이 있다. 당시 미국에선 이스라엘의 과도한 보복을 규탄하는 여론이 거셌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를 본 뜬 ‘팔레스타인인들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운동이 확산되자 미국 내 유대인들이 대거 동참했다. 이에 이스라엘 극우파들은 “미국에 살면서 테러 위협도 안 받고, 군 복무도 안 하면서 한가한 소리를 한다”고 비아냥댔다.
홀로코스트를 겪으며 유대인들은 고난을 반복해선 안 된다는 ‘네버 어게인(Never Again)’ 정서를 공유했다. 하지만 1948년 이스라엘 독립 이후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며 이 강력한 공감대는 완전히 다르게 발현됐다.
미국에 정착한 유대인들이 소수자의 정체성을 간직하며 인권 평등 같은 진보적 가치를 지향하는 집단으로 진화했다면, 아랍 국가들 틈에서 영토를 확보하려 전쟁을 불사했던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민족 중심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이 짙어졌다. 이스라엘에서도 1993년 팔레스타인과 상호 존재를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을 맺는 등 평화 노력이 있었지만 협정을 주도한 총리가 극우세력에 암살당하고 강평파가 집권한 이후 우경화가 이어져 왔다.
유대인들 간의 이런 차이에도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는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하지만 극우인 베냐민 네탸나후 정권이 최근 ‘사법부 무력화’ 작업을 강행하자 양국 간에도 균열이 커지고 있다. 바이든이 “매우 우려스럽다. 그들은 이 길로 계속 나아갈 수는 없다”고 하자 네타냐후는 “우리는 외국의 압박에 흔들리지 않는 주권국가”라며 맞서고 있다.
의원내각제인 이스라엘은 정부와 의회가 사실상 한 몸이어서 법안이나 정책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사법부가 견제 기능을 맡아 왔다. 초정통파 유대교의 기득권이 여전히 공고하고 아랍과의 잦은 충돌로 극우 정당이 언제든 득세할 수 있는 이스라엘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데 사법부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많다.
지난해 말 집권 직후부터 아랍을 도발하는 극우 행보를 펴온 네타냐후 정권이 사법부의 힘을 빼겠다는 것은 이스라엘 정착촌 확대 등 팔레스타인을 향한 적대 정책을 밀어붙이고 자국 내 민주세력을 위축시키려는 포석으로 볼 수 있다.
요즘 이스라엘에선 5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반정부 시위에 나와 ‘민주주의 수호’를 외친다. 삼권분립을 흔드는 네타냐후의 개악 시도를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아이러니하게도 미국 유대인과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이제 모처럼 한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신광영 국제부 차장 n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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