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나의 소설 같은 세상] [208] 시시콜콜 정치의 부메랑
“절 살려주시겠어요?” 소년은 흐느끼며 속삭였다. 내가 담당한 사람들은 언제나 이렇다. 불가능한 일을 의사에게 요구한다. 의사는 모름지기 외과의의 손으로 만사를 해내라는 것이다. 그대들이여, 나를 성스러운 목적을 위해 쓰라. 나 같은 시골 의사가 얼마나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다가와 나의 옷을 벗기고 노래를 부른다. ‘놈의 옷을 벗겨라. 그러면 치료하리라. 그래도 치료하지 않으면 죽여 버려라. 놈은 의사일 뿐이니. 의사일 뿐이니.’
- 프란츠 카프카 ‘시골의사’ 중에서
소아과를 닫겠다고 전문의들이 선언했다. 저출산에 의한 환자 감소, 정치계의 선심성 진료비 동결, 보호자의 잦은 소송 등 지속적인 어려움에 부딪혀온 결과라고 한다. 소규모 의원들이 살길을 모색하는 것뿐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산부인과, 흉부외과처럼 소아과도 줄어들고 있는 건 사실이다.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밤, 시골 의사는 멀리 사는 소년을 치료하러 가야 하지만 그의 말은 겨우내 무리해서 왕진을 다니느라 지쳐 죽었다. 다른 말을 빌려주겠다는 불한당은 그 대가로 의사의 하녀를 달라며 추근거린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의사는 환자를 보러 왔다. 그러나 이미 손써볼 수 없는 상태다. 말이 쓰러져 죽을 만큼 정부가 부여한 과중한 의무, 하녀를 희생시켜서라도 돌봐야 하는 환자에 대한 책임, 어떤 경우라도 환자를 살려내라는 보호자와 세상의 과도한 기대에 짓눌린 의사는 무력감에 빠진다.
어린이를 보호한다며 ‘민식이법’을 만들고, 좁은 골목까지 강제했던 ‘3050 속도제한’은 효과적이었을까. 한때는 동네 산책로에 중앙선을 긋고 보행자 통로 절반을 자전거에 내주더니, 이번엔 자전거 통행 금지 플래카드를 달아놓았다. 그러자 부모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꽃놀이 나온 아이들에게도 꼬장꼬장한 어른들이 호통을 친다.
비행기를 탄 의사는 술부터 한 모금 마신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있다. 위급 환자가 생겼을 때 애써봐야 성추행범이나 살인자로 몰려 법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일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정치와 법이 시시콜콜 제재하고 간섭할수록 개인이 자율적으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노력할 여지는 줄어든다. 그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건 언제나 그들의 배려와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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