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숲길] 입춘첩을 붙이며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2023. 4. 5. 03: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문홍 극작가·부산공연사연구소장

“아이고, 내가 그걸 깜박했네. 지금 몇시에요?”

주방 서랍을 정리하던 아내가 호들갑스럽게 뒤돌아서며 외친다. 거실 서랍 속에서 봉투에 든 입춘첩을 꺼낸다. 이럴 때는 가만있으면 안 되고 덩달아 바쁜 척하며 딱풀을 꺼내는 것이 순리다. 한지 뒷면 직사각형 가장자리와 가운데에 풀을 발라 건네자, 아내는 현관문 유리창에다 ‘입춘대길 건양다경’ 글귀 머리 쪽을 비스듬히 눕혀 붙이고 나서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제서야 그날이 절기상으로 봄이 들어선다는 입춘임을 뒤늦게 깨닫는다. 봄이 시작되니 크게 길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많이 생기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나이 든 이들은 이런 일을 할 때마다 암묵적으로 내려오는 방식을 따르려 한다. 그래서 그런지 아내도 입춘첩 붙이는 시각이 11시 42분이라는 것을 고집하려 든다. 이런 일은 아무 군소리 말고 그대로 따라주는 것이 옳다. 딴지를 걸었다가 혹여 동티나 날 경우에 꼭 이날의 내 군소리를 트집 잡는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입춘첩을 붙이고 나서 거실을 한번 휘둘러본다. 봄기운 스민 햇살이 베란다 유리문을 통해 환하게 스며든다. 입춘첩 하나 붙이고 나니 집안 곳곳에 봄기운이 완연해진 것 같다. 이 세상 모든 것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옛사람들의 지혜가 구구절절 옳다는 것을 새삼 떠올리며 흐뭇하게 웃어본다.

아내가 손수 붙인 입춘첩을 어루만지며 들릴락 말락한 소리로 웅얼거린다. 객지에 나가 있는 자식들 모두 건강하고 마른 장작에 불붙듯 사업 운이 활활 일게 해달라는 축원임을 얼핏 알아챈다. 크게 마음 쓰이는 것이 아닌 바에야 그저 모른 체하고 지나감이 백번 옳다. 이런 일을 겪을 때마다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해내는 우리네 어머니들의 기억력에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 많은 집안 제삿날과 가족 구성원들의 생일을 비롯해, 그 많은 집안 내력을 어떻게 줄줄이 꿰고 있는지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놀라운 것은 결혼한 지 반세기가 다가오는데도 아내는 끼니마다 반찬을 달리 장만하는 그 신통력은 불가사의한 일이다.

남자들이야 어딘가에 적어놓고 그때 그때마다 들춰보며 기억할 테지만, 우리 어머니들은 그것들을 거의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있다. 일 년에 두 번 명절을 맞을 때마다 나는 아내에게 핀잔을 듣는다. 제사상에 음식을 차릴 때마다 ‘홍동백서’ 운운하지만 매번 얼버무리기 일쑤이다. 그래서 잔꾀를 부린 것이 아내 몰래 다 차린 제사상을 촬영해 휴대폰 갤러리에 저장해 놓는 일이다. 처음엔 알 듯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잊어먹는 것이 남자들의 단순함이다. 그래서 아내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는 지혜를 금과옥조처럼 잘 지키는 편이다. 상가에 들르거나 동티날 일을 행할 경우 아침에 미리 말하거나 전화로 꼭 알린다. 현관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아내가 소금을 뿌린다. 그래야 서로가 마음에 응어리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다. 외출할 때 미리 양말을 신으면 될 것을 옷을 다 입고 나서야 신는다며, 아내는 혀를 끌끌 찬다.


백일을 갓 지난 손주 녀석이 제 아비 등에 업히면 칭얼대다가도, 며느리 등에 업히면 용케 알고 편안해한다. 아비 어미의 등에 업히는 느낌을 알아차리는 것도 본능적인 모성에 대한 안온한 기억 때문일 것이다. 우리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한 어머니가 열 자식은 키워도 열 자식은 한 어머니를 못 돌본다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어미와 자식이 재난을 당할 때도 어미는 제 목숨을 내놓고 자식의 목숨을 살리는 경우를 허다하게 듣고 보았다. 밤길을 가다가 위험한 일을 당할 때면 왜 아빠라고 하지 않고 엄마라고 외치는가 말이다. 괴테가 불후의 희곡 ‘파우스트’ 마지막 대사에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말한 것은, 모성과 여성성에 대한 상찬이자 존중의 태도다. 그래서 나는 아내 앞에서는 한 마리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다. 모성의 본능적 기억과 섬세함에 대한, 내 단순성의 옹졸함에 대한 통렬한 깨달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