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신라 ‘천마총 말’에 뿔이 달린 이유는 뭘까

기자 2023. 4. 5.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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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4월6일은 경주 ‘천마총’ 발굴 조사의 첫 삽을 뜬 날이다. 천마총이 발굴된 지 올해로 50년이 된 것이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천마총에서는 1500여년 전 신라시대의 회화작품인 ‘천마도’를 비롯해 금관·금제 허리띠 등 국보 4점·보물 6점 등 귀중한 유물들이 출토됐다. 그야말로 신라문화의 절정을 보여주는 명실상부한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천마총이 위치한 대릉원은 이제 첨성대, 불국사, 석굴암 등과 함께 인기 높은 국민 관광지이자 수학여행지이기도 하다. 천마총은 최근 젊은 세대가 꼽는 여행지 1순위로 인식되고, 해마다 1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문화유산이자 지역경제 활성화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신라의 역사는 천마와 함께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조 왕 박혁거세는 알을 낳고 하늘로 올라간 흰 말의 자손이다. 이런 의미에서 천마총에서 발굴된 유물들 가운데 말다래 장식인 ‘천마도’들은 의미가 깊다. 천마총에서는 대나무에 금동장식을 한 ‘죽제 말다래 금동투조장식 천마도’와 함께 자작나무 껍질(백화수피)에 그린 천마도(‘백화수피 말다래 천마도’)가 발굴됐다. 이들 천마도는 신라 사람들이 상상하고 기억하는 천마의 이미지를 잘 보여준다.

신라의 천마도는 고구려의 고분벽화에 두 차례 등장하는 천마도보다 힘 있고 강하게 표현됐다. 금동투조장식 천마도의 경우 재료의 특성상 고구려 천마도 수준의 회화적 세련도는 부족하더라도 신라 장인 특유의 미감과 예술적 표현의지가 보인다. 고구려의 천마도는 ‘안악1호분’과 ‘덕흥리 벽화분’ 벽화에서 각각 보이는데, 안악1호분 벽화의 천마에는 날개가 있지만, 덕흥리 벽화분의 천마에는 없다. 물론 두 천마는 모두 무덤칸 천장 고임에 그려진 점에서 하늘을 나는 말이라는 관념과 이미지를 잘 드러낸다.

천마총 천마도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고구려의 천마 두 마리가 보여주는 각각 다른 이미지이다. 안악1호분 천마의 경우 머리는 사슴을, 몸통은 말을 연상케 한다. 덕흥리 벽화분의 천마는 날개가 없이 전형적인 말 이미지다. 이 천마의 머리 앞에는 ‘天馬之象’(천마지상)이라는 묵서명도 있다. 삼국시대를 통틀어 ‘천마(天馬)’라는 글자가 남은 유일한 사례다. 흥미로운 것은 안악1호분에는 천마와 함께 상서로운 동물로 이마에 뿔이 있는 기린도 그려져 있는데 말의 이미지가 잘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천마총에서 나온 ‘백화수피 말다래 천마도’는 이마에 갈기와 비슷한 뿔 같은 게 높이 솟아 있는 게 특징이다. 뿔과 갈기, 꼬리의 표현은 특별한 기운을 드러내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몸의 초승달 무늬와 다리 사이로 뻗은 고사리 꼴 표현도 온몸에서 나오는 상서로운 기운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 확실하다. 입에서 끝이 말리며 길게 뻗은 것도 혀라기보다는 특정한 기운에 가깝다. 백화수피의 천마가 이런 형상으로 표현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마에 뿔이 난 고구려 고분벽화 속의 기린은 태평성대, 곧 성인이 나와 세상을 다스리는 것을 알리는 상상의 짐승이다. 서아시아와 남유럽에서는 ‘유니콘’으로 불리는 신성한 짐승이다. 말이라는 정체성에 상서 관념이 덧입혀진 만큼 천마인 페가수스와 함께 성스러운 동물로 존중됐으며, 외뿔의 말인 유니콘의 이미지는 동아시아의 기린 이미지와도 통한다.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기린은 사슴처럼 그려지기도 하고, 말처럼 묘사되기도 한다. 두 가지 이미지가 섞인 게 안악1호분의 기린이다. 신라가 5세기 내내 북방 고구려 문화의 세례를 많이 받았던 사실을 고려하면 천마총의 유물 장식에도 고구려 고분벽화의 영향이 배어 있거나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따라서 고구려의 천마도, 기린도의 이미지가 신라 천마도에 섞여 있다고 해서 기이하게 여길 일은 아니다.

천마총 천마도의 머리에 솟은 뿔은 유니콘의 경우처럼, 뿔 달린 말에서 뻗어나오는 신령스러운 기운을 염두에 둔 장식 덧입히기의 결과다. 이는 전통적인 천마 관념에 상서동물로서의 기린의 이미지를 투사하려는 신라 사람들의 의지가 작용했을 것으로 본다. 6세기 전후 신라에서는 시조 왕에 대한 신화적 스토리텔링으로 시작되어 전해 내려온 전통적인 천마 관념을 드러내기 위해 기린과 같은 상서동물의 이미지를 더하는 회화적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졌을 수도 있다.

전호태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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