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방문진료와 트랜스젠더
얼마 전 의과대학에 가서 본과 4학년 후배들 앞에서 ‘장애인과 거동불편 환자에 대한 지역사회 방문의료’에 대한 강의를 했다. 후배들 앞에 강의를 하기 위해 서자, 이들 중 몇명을 2년 전에 만났던 일이 떠올랐다. 그들이 본과 2학년이었을 무렵 성소수자 의료와 관련한 의과대학 수업이 처음 생길 때 그 수업의 기획과 강의에 나도 참여했던 터였고, 학생들은 성소수자 친화적인 의료기관의 실제 운영 모습을 보러 실습을 나왔다. 그때 내 강의 주제는 ‘성소수자를 위한 지역사회 1차 의료’였다.
같은 학생들 앞에 전혀 다른 듯 보이는 주제의 강의를 하기 위해 섰지만, 나는 그것이 서로 다른 주제인 듯 느껴지지 않았다. 당장에 그 수업에 나를 초청했던 친구부터가 그랬다. 대학병원의 공공진료센터에서 근무하며 방문진료를 맡고 있는 교수로, 우리는 성소수자의료연구회 활동도 같이하고 있으니까. 성소수자 의료에 관심 있는 많은 의료인들이 장애인과 거동불편 환자에 대한 방문진료에도 관심이 있고, 그 역으로도 그렇다. 기존의 의료가 상상하지 못했던 환자들, 현재의 의료체계 내에서 의료접근권이 제한되어 있었던 환자들과의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밖에 없다.
나는 운동을 자주 하는 편이다. 운동을 너무 좋아한다고는 말 못하겠고, 운동을 안 하면 어떤 결과가 닥쳐오는지를 몸으로 익힌 바 있어 살기 위해 운동한다고 하는 편이 정확하겠다. 나를 몇십년째 괴롭히는 두통은 아침 커피와 아침 운동을 거르기 시작하고 3일째가 되면 어김없이 나타난다. 두통과 구역, 소화불량이 시작돼 급기야 불면에 우울해지기까지 하기 때문에 진료실에서 매일 마주할 환자들을 위해 건강한 에너지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의료인으로서의 직업 정신 발로로 운동을 습관화시켰던 셈이다. 어떤 운동이 질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운동인지 찾아다닌 결과 지금은 수영과 달리기에 정착했고, 매주 2~3번은 수영장에 가고, 한 번은 불광천변을 달린다.
수영과 달리기는 일반적인 운동이다. 마치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데 그렇지가 않다. 내가 다니는 수영장의 등록데스크에는 ‘만 70세 이상은 신규 등록을 받지 않습니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수영장에는 그보다 고령의 회원들이 많지만, 70세 이전부터 다녀왔던 분들이라는 것이다. 물론 수영장 측의 입장도 이해는 간다. 수영장은 고령자나 장애인이 미끄러져 낙상하기 쉬운 공간이고, 낙상 사고로 배상보험료가 올라갈 일도 많아질 수 있으니, 공영 수영장도 아닌 민간 수영장이 고령 회원을 거부하는 것이다.
내 진료실에 다니는 한 트랜스젠더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 후 가장 불편한 점이 “수영장과 워터파크에 가지 못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말 좋아하는 운동이 수영이었는데, 호르몬 치료를 받기 시작한 이후 여성/남성 어느 한쪽으로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든 몸이 되자 수영장은커녕 헬스클럽에도 다니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벚꽃이 날리는 불광천변을 달리면서 장애인을 간혹 마주친다. 그나마 대부분 지체장애인보다는 지적/자폐장애인이다. 그러니 수영과 달리기를 평생 동안 할 운동이라며 ‘큰 고민 없이 편안하게’ 선택한 나는 얼마나 많은 특권을 가진 사람인가. 특권을 특권인 줄 모르는 게 가장 큰 특권이라는데….’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는 성 중립 화장실이 있다. 우리 소유의 건물이 아니어서 구조를 변경하진 못했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다는 표지판이 붙어 있다. 그 표지판만으로도 주민등록증과 실제 성별이 다른 트랜스젠더도, 장애인과 함께 온 성별이 다른 활동지원사도, 움직임이 불편한 어르신과 성별이 다른 요양보호사도, 어린이를 데리고 온 성별이 다른 보호자도, 모두가 눈치 보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이 되었다.
추혜인 살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살림의원 가정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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