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259> 산속 절간에 진 꽃을 쓰는 스님을 시로 읊은 임유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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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절을 에워싸고 있고 돌길이 가파른데(山擁招提石逕斜·산옹초제석경사)/ 골짝은 그윽하고 구름 안개는 잠겨 있구나.
/ 스님은 봄이어서 일 많다고 말하면서(居僧說我春多事·거승설아춘다사)/ 아침마다 문 앞에서 떨어진 꽃을 쓰는구나.
도시에 사는 독자는 매일 꽃을 쓴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제도 취수원에 청소하러 올라가며 국사암 앞을 지나는데 스님이 떨어진 꽃을 쓴 빗자루 흔적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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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 절을 에워싸고 있고 돌길이 가파른데(山擁招提石逕斜·산옹초제석경사)/ 골짝은 그윽하고 구름 안개는 잠겨 있구나.(洞天幽杳閟雲霞·동천유묘비운하)/ 스님은 봄이어서 일 많다고 말하면서(居僧說我春多事·거승설아춘다사)/ 아침마다 문 앞에서 떨어진 꽃을 쓰는구나.(門巷朝朝掃洛花·문항조조소락화)
위 시는 조선 중기 문신인 만휴당(萬休堂) 임유후(任有後·1601~1673)의 ‘스님의 두루마리에 쓰다(題僧軸·제승축)’로, 그의 문집인 ‘만휴당집(萬休堂集)’에 수록돼 있다. 자그마한 암자는 산속에 숨어 있다. 골짝에는 구름안개가 덮여 고요하고, 비스듬한 돌길이 가파르다. 이런 조용한 암자를 찾으려면 당연히 헉헉대며 고생해야 한다. 산길에는 꽃이 피고 있거나 지고 있다. 빗자루로 절 문 앞에서 떨어진 꽃잎을 쓸고 있는 스님을 만났다. 인사를 건네니 “봄이 되니 일이 많아 바빠 죽겠다”고 투덜댄다. 다름 아닌 진 꽃을 쓰는 일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독자는 매일 꽃을 쓴다는 게 ‘행복한 일’이라고 반문할지 모른다. 하지만 작은 암자여서 스님은 혼자 절 살림을 하는 모양이다. 기도하고, 부처님께 공양도 올려야 하는 등 일이 많은데, 시도 때도 없이 지는 꽃까지 쓸어야 하니 정신이 없다.
목압서사에서 가까운 광양의 매화축제도, 구례 산동의 산수유축제도, 화개십리벚꽃축제도 다 끝났다. 꽃구경 온 사람들로 길이 막히고 요란하더니 거짓말처럼 조용해졌다. 목압서사 마당에도 살구꽃 복사꽃 남경도화 벚꽃이 피었다 지고 있다. 어제 차산에서 일하면서 보니 모과꽃과 영산홍, 돌복숭아꽃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섬진강 따라 하동읍내 가는 길 옆에는 배꽃이 목화솜처럼 피어 있다. 지리산 어디든 바라보면 허연 꽃 무더기다. 화개동천 가에도 복사꽃이 군데군데 화사하다.
필자는 산물을 식수로 쓰는 목압마을의 물 관리자이다. 마을 위 국사암 앞을 거쳐 삼신봉 쪽으로 한참 올라가면 작은 폭포가 나온다. 이 물이 마을 취수원이다. 국사암에 물파이프를 하나 넣고, 다른 물파이프는 마을로 내려 주민이 식수로 쓴다. 그제도 취수원에 청소하러 올라가며 국사암 앞을 지나는데 스님이 떨어진 꽃을 쓴 빗자루 흔적이 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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