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 기자의 영화 人 a view] ‘카지노’의 최민식
- 정형화된 악인의 종말보다는
- 어쩌다 ‘이 길’로 들어선 남자의
- 씁쓸한 결말로 애잔함 주려했다
- 손석구 허성태 이동휘 등 배우들
- 고시공부 하듯 각자 캐릭터 연구
- 아이디어 모여 더 풍성해진 대본
- ‘30대 차무식’ CG 빌려 직접 연기
- 너무 부자연스러워 다신 안할 듯
- 드라마, 힘들었지만 뿌듯한 도전
어떤 역할이든 자기 호흡으로 자신만의 연기를 보여주는 배우 최민식이 활짝 웃었다. ‘사랑과 이별’ 이후 무려 25년 만에 출연한 드라마이자 첫 OTT 출연작인 ‘카지노’가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았기 때문이다. 특히 ‘카지노’ 시즌2는 공개 첫 주 만에 디즈니플러스 한국 오리지널 콘텐츠 중 최장 시청 시간을 기록했다. 그 중심에는 최민식의 명품 연기가 있다. 최근 서울 종로 한 카페에서 만난 최민식은 “사랑받고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오래간만에 과분한 인사를 받았다”며 밝은 웃음을 보였다.
영화 ‘범죄도시’의 강윤성 감독이 연출한 디즈니플러스 오리지널 시리즈 ‘카지노’는 돈도 빽도 없이 필리핀에서 카지노의 전설이 된 남자 차무식이 살인사건에 휘말리며 인생의 벼랑 끝에서 목숨 건 최후의 베팅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파란만장 차무식 인생을 2시즌에 걸쳐 16부작에 담았다. 최민식은 격렬한 인생 굴곡을 거쳐 필리핀 최대 규모 카지노에서 그 누구도 쉽게 건드릴 수 없는 존재가 된 차무식을 연기했다. 하지만 차무식의 마지막은 허무했다.
“‘권무십일홍’이라고 아세요, 형님? 꽃이요, 형님. 열흘 동안 붉을 수 없다. 그런 뜻이죠.”(양정팔) “‘권무’가 아니라 ‘화무’라고 하는 거야. ‘화무십일홍’. 꽃을 권력에 비유한 말이야, 인마. 권력이고 인생이고 다 무상하다, 이런 뜻이야.”(차무식) 시즌1, 1화에서 시작하자마자 필리핀 카지노의 전설 차무식과 그의 오른팔 양정팔이 나누는 대사다. 웃으며 봤던 이 대화는 돈과 권력에 취해있던 차무식의 허무한 최후를 암시하는 동시에 드라마를 관통하는 주제를 담았다.
극 중 차무식은 낙화처럼 세상을 떠났지만 최민식의 연기는 마지막까지 여운을 남기며 그가 왜 명배우인지 느끼게 했다.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라마와 OTT에서도 보여준 그에게 드라마에 도전하게 된 이유와 ‘카지노’ 촬영에 얽힌 비하인드 스토리, 그가 생각한 차무식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전화위복 된 드라마 출연
1997년 ‘사랑과 이별’ 이후 최민식은 드라마를 떠났다. 한석규와 출연했던 ‘넘버 3’(1997) 이후 지금까지 영화에만 출연하며 한길을 걸었다. 그런 그가 드라마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원래 할리우드 영화 ‘인턴’의 리메이크 작품에 출연하기로 했었다. 강 감독이 각색하고 있었고, 신민아가 함께 출연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판권을 갖고 있던 워너브러더스가 한국 영화 제작에서 철수하면서 어그러졌다. 황당하고 억울해서 강 감독에게 ‘뭐 다른 거 있으면 같이 하자’고 했는데 그때 준 것이 ‘카지노’였다.”
과거 한국 영화가 한참 흥행에 성공할 때 최민식은 ‘이럴 때 인터미션(상영 중간의 휴식시간)이 있는 4시간짜리 대작 영화가 한국에서도 나올 때가 됐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 ‘카지노’ 대본을 보고 그런 징후를 느꼈다. “대본을 보니 너무 좋은 이야기였지만 강 감독에게 ‘너 감당할 수 있냐. 이 많은 인원이 나오는데. 이거 교통정리 잘해야지 나중에 이거 배가 산으로 갈 수도 있다’고 했다.” ‘카지노’에는 주조연을 합쳐 무려 170여 명의 배우가 등장하는데, 한 인물에 대한 거대한 서사를 그리는 과정에서 에피소드와 등장인물이 많아져 결국 영화보다는 시리즈물이 낫겠다는 판단으로 드라마로 제작됐다. “힘들겠지만 이것을 잘 엮어서 이야기하면 무게감 있는 한국형 드라마가 나올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참 사람이 간사한 게, 그때부터 고생길이 열린 것 같다.”
▮혼연일체 된 배우들
“100% 나쁜 놈 없고, 100% 착한 놈 없다고 생각한다. 차무식도 나쁜 놈인 거 같은데 괜찮은 면도 있다. 마지막에 아주 정형화된 악인이 악행을 저지르고 쓰러져 가는 것보다는 어린 시절부터 어찌어찌 흘러 살아온 평범한 한 남자가 저런 인생의 종말을 맞는구나 하는 애잔함을 주고 싶었다.”
최민식이 차무식에서 먼저 떠올린 이미지는 평범함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카지노 거물이 되지만 그도 평범한 남편, 아버지임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래서 현실감을 부여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캐릭터가 아닌 자기 말투도 많이 사용했고, 점점 살이 찌는 것도 방치했다.
최민식을 중심으로 손석구 이동휘 허성태 등이 캐스팅되며 ‘카지노’ 대본은 더욱 풍성해졌다. 각 배우가 자기 역할에 대해 공부해오면서 각자 아이디어와 의견을 개진했고, 대본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방대하기 때문에 차무식의 틀에만 맞추면 큰일 난다. 인물이 많아 그들이 생각하는 캐릭터와 상황을 무시할 수 없고, 각자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며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했다.”
최민식이 ‘대본 좀 그만 보라’고 할 정도로 배우들은 고시 공부하듯 자신이 맡은 캐릭터와 출연 장면을 열심히 연구해왔고, 최민식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앙상블을 이루려고 함께 노력했다. 물론 배우들 이야기를 가장 많이 들은 사람은 강 감독이다. “그런 면에서 강 감독에게 고마웠다. 열린 마음으로 서로 같이 토론하고, 그래서 바뀐 것도 많다.”
▮새로운 도전, 도전…
오랜만에 드라마에 출연한 최민식은 ‘카지노’를 통해 새로운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 대표적 장면이 30대의 차무식을 직접 연기한 것이다. 컴퓨터그래픽 디에이징 기술과 보이스 디에이징 기술의 힘을 빌리기는 하지만 말이다. “‘과학 예술’의 힘이 아주 뛰어나다길래 한번 도전해 봤는데 다시는 안 할 것이다. 좋은 경험이었지만 제 자신이 부자연스러웠는데 보시는 분들은 오죽했겠나. 그냥 내 나이에 맞는 연기를 하고, 젊은 시절은 젊은 배우가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또 처음 영어 연기에 도전했다. 뤽 베송 감독의 ‘루시’에 출연했을 때 영어 대사를 하지 않았던 그가 영어 대사를 한다는 것은 큰 도전이었다. “차무식이 필리핀에서 사업하는 놈이라서 영어를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근데 진짜 외워지질 않더라. 특히 감정을 실어서 이야기한다는 것이 어렵더라.” 말은 이렇게 했지만 ‘카지노’를 보면 영어 대사 역시 감정이 제대로 실렸음을 확인할 수 있다.
드라마에 도전했다는 것은 커다란 수확이다. 거의 영화 스태프들이 참여해 촬영장이 낯설진 않았지만 16부작이라는 절대적 분량과 해외 촬영이라는 조건 때문에 어려움이 있었다. 게다가 코로나19 확진 이후 음성 판정이 나자마자 필리핀으로 향했기에 체력 부담이 컸다. “저 때문에 촬영이 연기됐기 때문에 코로나19 진단키트에서 한 줄이 나오자마자 필리핀으로 향했다. 냄새도 못 맡고, 기침은 계속 나고, 목은 쉬어 있었다. 온몸이 무기력한 상태로 마닐라 공항에 도착했는데, 이건 마치 옷 입고 사우나 들어간 것 같았다.”
최민식은 최근 김고은 유해진 등과 함께 출연한 영화 ‘파묘’ 촬영을 마치고 차기작을 기다리고 있다. 요즘 관심 가는 장르는 멜로다. “‘카지노’에 함께 출연한 이혜영 씨에게 ‘우리 멜로 하자, 나 뱃살 뺄게’라고 했다. 이제 죽이고 막 이런 거보다는 세상살이가 힘든 가운데 뭔가 서로 보듬어주고 포용하는, 정을 나눌 수 있는 영화를 해보고 싶다.”
60대에 들어선 최민식의 인생 연기에는 어떤 삶의 향기가 묻어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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