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종교] 부끄러움을 자랑하기?
가톨릭교회는 매년 봄이면 사순 시기를 맞이한다. 사순 시기는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그분의 부활 축제를 준비하는 기간인데,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의 수난과 죽음의 원인이 당혹스럽게도 그를 열렬히 따르던 제자들의 배신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열 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가 예수를 은돈 서른닢에 팔아넘긴다(마태 26, 15). 그리고 경비병들이 예수를 체포하자 제자들은 모두 그분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 50). 그들 중 한 명은 얼마나 겁쟁이였으면 알몸으로 달아난 사람도 있었다(마르 14, 52).
그리고 열 두 제자 중 첫 번째 제자이며 가톨릭 초대 교황인 베드로는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고백했으며 급기야 자신의 말이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까지 맹세했다. 신약성경 서간의 주요 저자인 바오로 역시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선봉장이었다. 성경이 집필될 당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과 목격 증인들은 분명 교회 안에서 위대한 인물들이고, 그들의 위치와 권위로 볼 때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는 적당히 숨길 법도 하지만 성경은 그들의 약점, 나약함, 부끄러움을 고스란히 이야기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이 누구냐’는 기자의 질문에 “저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가장 정확한 정의입니다. 이것은 멋지게 꾸미기 위한 문학적 수사가 아닙니다. 말 그대로 저는 죄인입니다. 그런데 저는 주님께서 굽어 살피시는 죄인입니다. 저는 주님의 돌봄을 받는 사람입니다”라며 부족한 인간임을 자인했다.
대한민국이 사랑한 종교 지도자 고(故) 김수환 추기경은 어수룩한 자화상에 ‘바보야’라는 이름을 붙이고 ‘안다고 나대고 대접만 받으려고 한 내가 바로 바보’라고 스스럼없이 이야기했다. 가톨릭 예식 중 가장 중요한 미사 시간에도 모든 신자는 참회하는 마음으로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옵니다”라고 고백한다. 보잘것없는 인간을 통해 주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베드로와 바오로의 삶이 그 증거다. 스승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했던 베드로는 스승을 배신한 사실을 안 순간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비참함에 한탄했을 것이다. 베드로가 그 눈물과 비참함 속에 방황하고 있을 때 예수는 그에게 부활해 그를 진정한 제자로 삼는다. 베드로는 순교 당시 스승님처럼 십자가에 매달려 죽을 수 없다며 거꾸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박해자의 선봉장인 바오로는 갑자기 “왜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고 그는 한평생 로마, 그리스, 터키 지역을 다니며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약함과 부끄러움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정말 보이지 않는 힘이 생겨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느님께 맞갖은 제물은 부서진 영. 부서지고 꺾인 마음을 하느님, 당신께서는 업신여기지 않으십니다(시편 5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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