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미희의동행] 봄, 생명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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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출했다 돌아오니 택배가 와 있었다.
주문한 것도 없는데 무슨 택배일까.
잡티 하나 없이 아주 깔끔하고 정갈한 것이.
그것도 오염되지 않은 쑥을 채취하느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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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도 갈아입지 않고 박스를 여니 갇혀 있던 향이 먼저 날아왔다. 쑥이었다. 연하디 연한 새 쑥이 봉지 가득 담겨 있었다. 동토를 뚫고 나온 그 강인한 생명력이라니. 이번에는 또 얼마나 수고했을까. 봉지 안에는 쑥뿐 아니라 캐는 동안 유쾌했을 그들의 수다와 웃음이 함께 들어 있는 듯 했다. 잔손을 덜어주느라 따로 손질을 해 보낸 모양이다. 잡티 하나 없이 아주 깔끔하고 정갈한 것이.
몇 해 전에도 그 사람들은 아픈 동생에게 떡을 해 먹이라며 직접 쑥을 캐 보내왔다. 그것도 오염되지 않은 쑥을 채취하느라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쑥과 함께 보내온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속 짧은 동영상에는 그들이 쑥을 캐는 장면이 들어 있었다. 하필 그날 는개가 내렸던가 보다. 영상 속 날씨가 잿빛으로 희부옇게 흐리면서 다들 젖어 있는 것이. 나뭇가지도 짙은 갈색으로 우중충했고, 그들의 머리카락도 촉촉이 젖어 있었다. 비가 온 탓에 그날은 유난히 추웠다고 했다. 산속이라 더 추웠을 것이다. 그 추위에 어떤 이는 겉옷을 단단히 여미거나 비닐 봉투를 망토처럼 두르고 있었다. 쑥을 캐느라 우산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마냥 즐거운 듯 땅에 다붙어 땅을 뒤지는 그들의 표정이 밝고 환했다. 어떤 이는 그날 이후 감기에 들렸다고 즐거운 투정을 부렸다. 나는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외에 어떤 다른 말도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은 덕분에 즐거운 소풍을 잘 다녀왔다며 내 미안함의 무게를 덜어주었다.
그들은 한때 나와 같이 문학을 이야기하고 글쓰기를 공부하던 동호인들이었다. 내가 강사로 초대되었지만 기실 내가 그들보다 더 배우고 얻은 것이 많은 시절이었다. 나는 그들이 보내준 쑥으로 동생이 먹고 싶다는 쑥버무리를 만들고, 쑥국을 끓였다. 쑥국이 끓고 쑥버무리가 익는 동안 온 집안에 쑥향이 진동했다. 그 향의 정체는 바로 쑥을 캐 보낸 이들의 향기였고, 또 봄의 향기였다. 그 음식들이 익어가는 동안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관계란 이처럼 오랜 시간과 인내와 정성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정말, 그들이 보내준 건 단순한 쑥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지혜였고, 사랑이었다. 그들은 알까. 그들의 마음과 정성이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는 것을. 거듭 고맙고 또 감사하다. 나도 그들처럼 누군가를 위해 시간과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겠다. 더불어 그들에게 받은 이 고마움과 정성을 그들에게 되갚아주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흘려보내야겠다.
은미희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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