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넘게 4·3 연구… 제주서 태어난 기자의 집대성

박지은 기자 2023. 4. 4. 2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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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책 '4·3, 기나긴 침묵…' 펴낸 허호준 한겨레 기자

제주에서 태어났고, 박사 학위까지 모든 학업을 이곳 제주에서 마쳤다. 그리고 35년 동안 제주 주재 기자로 살았다. ‘제주 사람’ 허호준 한겨레 기자는 자신과 제주 4·3은 “운명”이라고 했다. 현재 제주도 인구는 70만명, 정부에서 인정한 4·3 유족은 10만명에 이른다. 그만큼 “거의 모든 제주 사람들은 4·3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제주 기자들에게 4·3은 “모르면 안 되는 것”이었다. 신입 기자였던 1989년은 4·3이 일어난 지 40여년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진상규명 운동이 그제야 본격적으로 벌어진 때였다. 4·3을 취재하고 공부할수록 점점 깊숙하게 빠졌다. 사람의 삶과 죽음의 문제였고, 지금도 집단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현재 진행형인 사건.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을까 싶었다.

30년 넘게 기자이자, 연구자로 4·3의 진실을 밝혀오기 위해 노력한 허호준 한겨레 기자가 책 <4&middot;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을 출간했다. 제75주년 제주 4.3희생자 추념식을 이틀 앞둔 지난 1일, 제주 시내 한 호텔에서 외신 기자 대상 4·3 강연을 마친 허 기자를 만났다.

30년 넘게 기자이자, 연구자로 4·3의 진실을 밝혀오기 위해 노력한 허호준 기자가 그 결과물을 책 <4·3, 19470301-19540921 기나긴 침묵 밖으로>로 풀어냈다. 책 제목대로 4·3 기점일과 종료일까지, 100여명의 4·3 생존 희생자·유족들의 증언을 토대로 비극이 일어난 배경과 참혹한 당시 현장을 생생히 전하는 책이다. 미군정의 4·3 개입 등 사료를 통한 사실 입증과 무장 봉기 세력이라는 이유로 희생자에 배제된 사람들, 4·3 정명 등 앞으로 남은 과제와 의미까지 다뤘다. 그는 이번 신간에 대해 “기자로서 헛되게 살지 않았다는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도 이제는 정리 해봐야겠다 싶었다”며 “최대한 4·3의 전체를 다루려 했다. 책이 4·3을 대중적으로 알리는 데 조금이라도 기여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은 4·3 70주년이었던 2018년부터 최근까지 허 기자가 지면과 온라인으로 연재해온 <제주4·3 동백에 묻다> 기획이 바탕이 됐다. 제주 구좌읍 다랑쉬굴에서 희생자 유해 11구가 발굴된 1992년 본격적으로 4·3 연구와 취재에 뛰어들며 관련 기사를 써왔지만, 시리즈를 “대놓고 쓰겠다”고 나선 건 이번 기획이 사실상 처음이었다. 제주 지역 언론사들은 일상으로 다루는 중요한 이슈지만, 당시만 해도 4·3은 중앙 언론사들이 크게 관심을 쏟는 사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지난 3일자 신문을 봐도 제주4·3 75주년 기획을 보도한 중앙지역 종합일간지는 한겨레, 경향신문뿐이다.) 허 기자는 해당 연재물로 지난해 12월 제주4·3평화재단이 주는 제1회 4·3언론상 본상을 수상했다.

“4·3 기획을 부탁한다고 회사에 말하기가 참 어렵더라고요. 회사도 제가 4·3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는 걸 그때야 알았을 겁니다. 70주년인 만큼 4·3을 제대로 알려야 되겠다 싶었죠. 디지털 연재를 이어가기 위해 휴일마다 생존 희생자, 유족분들을 만나러 다녔어요. 타사였으면 절대 못했겠다 싶어요. 마음껏 취재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준 회사에 대단히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허 기자가 “동료들이 없었다면 출간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한겨레 구성원들이 책 출간에 더 적극적이었다. 지난해 10월 한라산 러닝 대회에서 만난 당시 이세영 전국부장이 연재물을 엮어 책으로 출판해보자고 제안했고, 이 소식을 들은 이주현 당시 이슈부문장이 그해 12월 출판사를 직접 알아봐줄 정도였다. 처음엔 기사를 조금만 손보면 되겠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때가 되었다”고 느낀 편집자는 그에게 그동안 취재해 온 기록을 바탕으로 아예 새로 쓰기를 요청했다. “내기로 한다면 2023년 4월3일에 맞춰야 한다”는 결심으로 시작된 계획 아래, 그렇게 단 3개월 만에 최종 원고를 넘길 수 있었다.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은 느낌이 계속돼 자다가도 일어나서 쓰고 그랬어요. 드디어 글의 감옥에서 나왔구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겨울이 지나버렸더라고요.(웃음)”

올해 9월 허 기자는 정년퇴임을 앞두고 있다. 여러 저작 중에서도 이 책이 더욱 각별한 이유도 그가 기자로서 마지막으로 내놓은 책이기 때문일 거다. 정년 이후 계획을 묻는 질문엔 “특별히 없다. 좀 쉬고 싶은 게 전부”라며 별말 없다가 앞으로 4·3 보도에 대해 후배 기자들에게 보내는 당부가 있는지 묻는 질문엔 “더 치열했으면 좋겠다”며 긴말을 보탰다. “4·3이 당시 외부를 통해 알려졌다면 제주도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죽었겠는가하는 생각을 참 많이 해요. 그래서 언론이 참 중요하다는 거죠. 4·3은 제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전히 4·3 왜곡과 폄훼가 일어나는데 그때마다 유족들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행사 위주의 관심이 아니라 4·3의 진실, 명예회복, 현재에 대해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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