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예원의 목소리가 누군가의 삶을 울렸을지 모른다 [MD칼럼]

2023. 4. 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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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록의 나침반]

"오늘 컨셉은 상민이에요!"

상민이는 배우 문예원이 KBS 2TV '삼남매가 용감하게'에서 연기한 캐릭터의 이름이었다. 정확하게는 '이상민'인데, 실은 드라마를 보는 동안 상민이란 캐릭터의 이름을 유심히 기억하진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굳이 이름을 기억하지 않아도 문예원이 등장하는 장면은 눈을 감고도 알아차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암막(暗幕)을 걷었을 때, 단숨에 쏟아지는 햇볕처럼, 세차게 터져오르는 목소리의 주인이 문예원이 말한 상민이었다. '삼남매가 용감하게'에서 처음 문예원을 인지한 것도 마치 적막(寂寞)을 깨트리듯 그 쨍쨍하게 빛나던 목소리가 귀를 울려 무심결 TV로 고개를 돌렸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위해 만난 문예원은 '이상민을 컨셉'으로 삼았다는 장담처럼 말투나 표정, 복장이나 헤어스타일 그리고 목소리까지 드라마 속 상민과 다르지 않았다. 문예원에게 '이번 작품은 재미있었나요?'라고 질문하는데, 나 역시 목소리의 톤을 한, 두 단계는 더 올려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즐거웠어요! 되게 즐거웠고요. 그렇게 연기할 수 있었던 게, 대본에 지문이 적혀있었던 덕도 있지만, 감독님께서 저한테 기회를 많이 주셨거든요. '상민이는 네 마음대로 해봐' 이렇게요. 처음에는 긴장도 많이 됐는데, 계속 잘한다고 칭찬해주시니까 '그래, 나는 상민이다' 하는 그런 자신감이 붙더라고요!"

'삼남매가 용감하게' 초반 마냥 악랄해 보이던 상민이가 결말에 다다를 즈음 시청자들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되어버린 것도 모두 문예원이 상민이를 사랑해버렸기 때문이다. "문예원으로 살면서 아쉬웠던 것들을 상민이로 대리만족 하게 되니까 그게 재미있더라고요"라고 말하는 문예원의 목소리는 드라마를 마쳤음에도 여전히 상민이처럼 들뜬 채였다.


"희열이요!"

배우란 직업에 다다르기까지 문예원이 지나온 삶은 독특한 구석이 있었다. 학창시절 해외로 골프 유학을 갔던 이야기, 그러면서도 학업성적 역시 도드라졌던 이야기를 하던 중, 문예원이 들려준 속내는 의외였다.

"어릴 때 축제에 나간 적이 있는데, 그때 무대에서 느꼈어요. '이 두근거림은 뭐지?' 너무 짜릿하더라니까요. 그치만 전 무대에 설 만큼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부하는 게 맞아'라고요. 그래서 공부도 열심히 하려고 했어요. 근데 참 아쉽더라고요. 그때 그 희열이요."

"그 희열의 아쉬움"을 떠올릴 때, 이상하게도 눈앞에 "상민이의 컨셉"을 하고 앉아있는 문예원의 목소리가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보다 한, 두 단계는 내려앉은 듯한 착각이 일었다.

그러다 문예원이 다시 원래의 상민이의 톤으로 돌아온 건, 댄스팀을 만들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던 시절 이야기, 뒤늦게 대학에 진학해 연기를 전공하게 되고 공포영화도 못 보면서 영화 '곤지암'에 덜컥 캐스팅된 이야기를 할 때였다.

"연기할 때 뭐가 재미있냐면요, 어떤 신을 연기할 때, 그럴 때가 있거든요. 그 감정이 기쁨이든 분노든 '몰입했다'고 스스로 느끼는 순간이요. 그렇게 저 스스로 '몰입했다'라고 느끼는 순간, 마치 제 안에 엔도르핀이 확 도는 느낌이 들어요. 그 감정이 진짜 너무 좋아요."


"상민이가 컨셉"이 아닌, 실제의 문예원은 누구인 걸까.

"캐릭터를 보내면서 공허하기보단 작품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이별하는 과정이 힘든 것 같아요"라는 고백의 쓸쓸함도 문예원이었으며, "소설 읽는 걸 좋아해요. 요즘 기억에 많이 남았던 건 '파친코'예요. 한국어판을 읽고 원어로도 읽었어요.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본래의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원어로 읽었어요"라는 선택을 한 것도 문예원이었다.

"언어는 문화의 커다란 부분이잖아요. 언어를 이해한다는 건 그들을 이해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유학을 다녀와서 얻은 게 많지만, 연기를 하며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점도 저에겐 큰 이점인 것 같더라고요. 다른 언어로 된 작품을 접할 때, 그 문화도 함께 이해할 수 있으니까 저에게 더 감성적으로 와닿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기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문예원의 목소리가 빛났던 건 그 때문이었다. 어린 문예원이 무대에서 처음 마주쳤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지속된 사랑 또는 열망 혹은 희열.

"연기 잘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제가 너무 하고 싶고, 잘하고 싶은 일인데, 잘한다는 이야기까지 들으니까, 그 말이 제일 행복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저 친구 연기는 그래도 볼만하네!'라고 생각해주신다면 참 좋겠죠? 시간을 내서 제 연기를 봐주시는 분들이 '그래도 이 시간이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시게끔 만들어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배우로서, 제가 앞으로 더 잘 다져나가고 싶고요."

문예원도 알다시피, 문예원도 모르는 어디에선가 누군가는 상민이의 목소리를 여전히 기억한다. 마치 적막을 깨트리듯 그 쨍쨍하게 빛나던 목소리.

누구도 따라할 수 없으나, 누구나 기억할 수 있는 목소리. 그래서 문예원의 목소리는 곧 '언어'이며, 우리가 그 목소리를 인지하는 건, 문예원이란 배우를 '이해'하는 출발이었다.

"감사하더라고요. 배우를 할 수 있다는 게, 제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해 나갈 수 있다는 게 정말 기쁘고요."

어떤 순간은 삶의 계기가 된다. 그가 스스로 겪었던 것처럼, 문예원의 햇살 같은 목소리가 누군가의 삶에 희열이 되고, 누군가의 삶을 울리기를. 송두리째 울리기를.

[사진 = 윌엔터테인먼트, KBS 제공]-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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