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압과 차별 시달린 대학생활… 자유 꿈꾸던 내 얘기 담았어요”

김용출 2023. 4. 4.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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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희 첫 장편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 번역 출간
총련 산하 도쿄 조선대 배경 청춘소설
자전적인 실제 체험 바탕 상상 버무려
규칙 까다로운 ‘일본 속 북한’ 일상 담아
오사카서 재일 조선인 2세로 태어나
‘행복해지는 게 의무’라던 오빠 말 생생
10년 후 회고전 여는 영화감독 되고파

“기억나십니까?” 그럴 리가. 까맣게 잊고 있었다. 영화제 때문에 바쁜 시간이 이어지면서 그와의 약속을, 아니 그의 존재 자체를 망각하고 있었다. 그해 봄, 그로부터 이메일을 받았다. “지난 2월 요미우리문학상 수상식에서 명함을 건넸던 가도카와의 ○○○○입니다.”

이 사람이 누구지, 하면서도 일단 만납시다, 라고 답변을 보냈다. 이메일 답신을 보낸 뒤, 서둘러 그의 명함을 찾아봤다. 유명 출판사 가도카와 쇼텐(角川書店)의 편집자. 더구나 그는 막내 편집자가 아니었다. 정확히 두 달 만이었다.
영화감독이자 작가 양영희가 도쿄 조선대학교 시절의 체험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쓴 첫 소설의 번역판이 출간됐다. 양 작가는 “투명 인간이 되지 않기 위해서 투명 인간처럼 취급되는 이들의 이야기를 좀 꺼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설을 한번 써보지 않겠어요?” 첫 극영화 ‘가족의 나라’가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시나리오상을 수상하면서 2013년 2월 도쿄 제국호텔에서 열린 수상식에 참석했다. 샴페인을 마시면서 심사위원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가 다가왔다. 영화 잘 봤습니다, 라며 명함을 건넨 뒤 불쑥 소설 쓰기를 제안하는 게 아닌가. “소재는 자유롭게 선택하시고요.”

나에게 소설 쓸 기회가 주어지다니. 권위 있는 상도 받은 데다가 술도 적당히 마신 터라 기분이 좋아진 작가 양영희는 망설이지 않고 오케이, 라고 답했다. “다만, 지금은 영화제 준비로 너무 바쁘니, 두 달 뒤에 한 번 더 연락을 주시겠습니까?”

“어떤 이야기를 하실 겁니까.” 약속 장소에 나가니 그가 다른 편집자들을 대동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함께 밥을 먹으면서 그가 물어왔다. “이런 거 어때요.” 양 작가는 도쿄 조선대학교 시절의 체험에 사랑 이야기를 섞어서 쓰고 싶다고 대답했다. 대학 1, 2, 3, 4학년을 각각 1장씩 전체 4장으로 하고, 옆 대학의 일본인 남자와 연애를 시키고, 3학년 땐 졸업 여행으로 북한에 다녀오게 하고, 졸업식 땐 타협 없이….

자신의 대학 체험을 바탕으로 상상을 가미해 탄생한 영화감독 양영희 작가의 첫 소설 ‘도쿄 조선대학교 이야기’(마음산책)가 국내에서 번역 출간됐다. 일본에선 2018년 출간됐다. 소설은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총련) 산하의 도쿄 조선대를 무대로 대학생 미영이 높은 담장을 깨고 세상 밖으로 나가는 성장 소설이자, 일본인 대학생 구로키 유와의 연애를 담은 청춘소설이다.

연극에 탐닉했던 자유분방한 미영은 까다로운 규칙과 마찰하면서 조선대에서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히지만, 학교 앞 라멘집에서 무사시노대학의 구로키 유를 만난다. 혐오 집단의 공격 속에서도 구로키와 굳건히 연애를 이어가던 미영은 2학년 여름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건 신경 안 써”라는 그의 말에 상처를 입는다.
“알아! 알지만, 신경 쓰이지 않을 리가 없잖아… 나는 유가 일본인이라는 걸 신경 써. 의식하지 않을 수 없어. 그건 무리야. 그러면 실례인 것 같아. 만약 내가 ‘유가 일본인이라도 상관없어’라고 하면 기분이 어떨 것 같아?”(146쪽)

3학년 땐 가을 북한으로 졸업 여행을 갔다가 ‘조국’의 현실에 경악하고 언니를 만나선 “행복해지는 게 네 의무”라는 말을 듣는다. 연극 일을 하고 싶었던 그녀는 졸업을 앞두고 모교 교원이 되라는 진로 지도를 받으며 일생일대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영화감독인 작가 양영희는 왜 도쿄 조선대를 배경으로 장편 소설을 써야만 했을까. 그의 작가적 여정은 어디로 향해 나아갈까. 양 작가를 지난달 16일 줌으로 만났다.
―시나리오 쓰는 것과 소설 쓰는 게 많이 달랐을 텐데.

“시나리오도 혼자 쓰지만, 프로듀서도 있고 다음 단계에 들어가면 고치기도 하고 캐스팅에 들어가서도 집단 작업으로 하는 등 몇 개의 단계가 있는 것과 달리, 소설 창작은 철저하게 혼자 모든 것을 결정하고 써야 했다. 어느 시점부터 시작할지, 어디에서 몇 번 장면을 그릴지, 모두 스스로 결정해야 했다. 배우들이 연기하고, 조명 감독이 조명을 비추고, 촬영 감독이 촬영하는 것도 모두. 소설 쓰는 작가에게 ‘선생님’을 붙이는 이유를 알겠더라.”

―체험과 상상을 버무렸다고 했는데, 소설 속에서 사실과 상상은 어떤 것인가.

“연극을 탐닉하는 미영은 제가 모델이지만, 구로키 유는 실제 모델이 없다. 대학 시절 무사시노대학 학생과 연애하지 않았으니까. 다만, 그때에도 바로 옆의 일본 학생들과 왜 친구가 되지 못할까, 연애를 하면 어떻게 될까, 하는 망상을 하긴 했다. 학교 규칙은 모두 사실이고, 미영을 못살게 구는 학생위원회 사람들이 한 대사 역시 직접 경험한 것들이다. 소설 속 언니가 행복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실제로는 오빠가 한 말이었다.”

―소설에서 미영은 왜 구로키가 “미영이 자이니치든 조선인이든, 그런 건 신경 안 써”라는 말에 화가 났을까.

“메이저리티들은 ‘신경 안 쓴다’는 말을 ‘나는 너를 차별하지 않는다’는 좋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한다. 저도 살면서 몇 번이나 그런 말을 들었다. 의도적인 건 아니겠지만, 그렇게 말하는 것에서 조금 우월감, 거만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 미묘한 차별 의식 같은 것도 느껴진다. 신경 안 쓰니까 귀찮은 이야기 하지 마, 그런 뜻일 경우도 있다.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겨 있고. 같이 있는 친구나 일본인 가족은 각자 갖고 있는 배경과 살아온 것을 신경 쓰면서 이야기한다. 신경 안 쓰는 우정이나 연애 관계보다, 신경을 쓰는 우정 연애가 더 존중하는 게 아닐까. 무의식적이고 악의 없는 차별 의식에 더 민감해야 된다고 생각해 그 말을 꼭 넣고 싶었다.”

1964년 오사카에서 자이니치 2세로 태어난 양영희는 2005년 다큐멘터리 영화 ‘디어 평양’을 발표하며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다큐멘터리 영화 ‘굿바이, 평양’(2009), ‘수프와 이데올로기’(2021), 극영화 ‘가족의 나라’(2012) 등을 발표했다. 산문으로 ‘카메라를 끄고 씁니다’, ‘가족의 나라’ 등을 펴냈다. 베를린영화제 최우수 아시아 작품상, 선댄스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 베를린영화제 국제예술영화관연맹(CICAE)상, 요미우리문학상 희곡·시나리오상,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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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후는 어떤 모습일까.

“10년 후에는 영화 작품이 몇 개 더 발표돼 ‘양영희 특집’이 회고전처럼 상영되고 있으면 좋겠다. (웃음) 지금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소설도 쓸 수 있으면 좋겠다. 근데 소설은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로 끝나지 않고 영화화해 개봉까지 돼야 한 편이 끝나는데, 소설은 그 전체만큼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도쿄에 사는 영화감독이자 작가 양영희는 ‘아웃도어 인간’이 아닌 전형적인 ‘인도어 인간’이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하는 마을 산책을 제외하면 주로 건물 안에서 생활한다. 햇빛을 싫어하고, 헤엄칠 줄도 모르며, 자연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한다. 많이 자지 않으면 기분이 안 좋아지는 그녀는 휴일이면 늘어지게 잔 뒤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가거나 음악을 들으러 콘서트장에 갈 것이다. 조국이나 조직에 결코 충성 같은 것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현재 극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행복해지는 게 네 의무”라는 오빠의 말을 간직하고서. 다음달 일본 극장에서 공개될 ‘디어 평양’과 ‘굿바이, 평양’ 리마스터판을 위해 자막 작업이 한창이다. 아마 작품이 나오면 홍보 활동과 인터뷰, 강연이 이어지겠지만.

“지금부터 시나리오에만 집중하고 싶습니다. 이미 올해 들어 강의를 비롯해 다른 일들을 거절하기 시작했어요. 소설과 관련한 인터뷰 역시 이게 마지막이 될지 모르겠고요. 팬데믹(감염병 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북한의 오빠들과 연락이 안 돼 걱정인데, 잘 버티고 있으리라 믿어요.”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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