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명분으로 ‘독립운동’ 내세운 보훈처
민간 아닌 국가기관이 첫 주도…주무 부처 행안부도 ‘패싱’
여권의 ‘국부 지위 복권’ 흐름 연장선…“사회적 공론화 필요”
국가보훈처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을 ‘전직대통령 예우에 관한 법률’(전직대통령법)이 아니라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국가유공자법)에 근거해 추진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아니라 독립운동가로서 업적을 높이 평가해 기념관을 짓겠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독립운동가라는 명분을 내세워 전직 대통령 기념관을 짓는 셈인데,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으로 인한 하야 등 대통령 재직 때의 행적을 둘러싼 논란을 우회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4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보훈처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설립을 국가유공자법에 근거해 추진 중이다. 보훈처는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건립 법적 근거’를 묻는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질의에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74조의 4, 국가보훈기본법 제26조, 현충시설의 지정·관리 등에 관한 규정 제12조, 현충시설관리지침 제12조” 등이라고 답변했다. ‘건립 계획, 재원 조달 방안’을 묻자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건국훈장 대한민국장) 기념관 예를 따라 내부 검토 중으로,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정해진 바는 없다”고 했다.
그간 대통령 기념관은 전직대통령법에 근거해 설치됐다. 주무부서는 행정안전부이다. 행안부는 민간단체의 신청을 받아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등 4명의 전직 대통령 기념관 건립 사업을 지원한 바 있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은 보훈처가 전직 대통령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는 첫 사례이자, 민간단체가 아닌 국가 기관이 전직 대통령 기념관 설치를 주도하는 첫 사례다.
보훈처는 기념관 설치를 위한 예산을 내년도에 반영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고, 서울시와 부지 선정을 협의 중이다. 전직 대통령 기념관 사업 주무부서인 행안부는 언론 보도를 통해 보훈처가 기념관 건립 사업을 추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기 전까지 해당 사업 진행 상황을 몰랐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 설립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재평가하고 ‘국부’의 지위로 복권하려는 여권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박민식 보훈처장은 지난달 26일 이승만 탄생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서울북부보훈지청장이 방문하던 관례를 깬 것이다. 보훈처는 오는 6월 보훈부로 승격된다. 이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훈장 중 최고 등급인 건국공로훈장 중장(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은 최초의 인물이지만 집권 당시 자신에게 훈장을 수여해 ‘셀프 서훈’ 논란도 있다. 보훈처가 1992년부터 매달 선정해온 ‘이달의 독립운동가’ 명단에도 이 전 대통령은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강 의원은 “이승만 박사에 대해 독립운동보다는 초대 대통령을 먼저 떠올리는 게 일반적인데, 전직 대통령 기념이라는 취지와 달리 주무부처인 행안부를 ‘패싱’하고 보훈처가 건립을 추진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했다. 이어 “정부가 특정 대통령 기념관을 세우는 것은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 휩싸일 수 있고, 부정선거로 물러난 대통령인 만큼 기념관 건립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윤기은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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