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건물에 녹지 의무화…가뭄·홍수 대비 “자연이 일하도록”[녹색전환 선진국, 스웨덴을 가다]

강한들 기자 2023. 4. 4.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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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기후적응도시 ‘로얄시포트’
스웨덴 스톡홀름 로얄시포트는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만들어진 도시다. 쓰레기 배관을 만든 기업 엔백의 패트릭 헤랄드손 북유럽지역 본부장이 지난달 16일 건물벽에 붙은 쓰레기 투입구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로얄시포트 녹지를 관통하는 생태통로와 에너지 효율을 높인 건물(위부터). 강한들 기자·스톡홀름시 제공
스톡홀름의 가스 공장 지역 재개발
기후위기 대응 최우선 고려해 설계

‘프스스~~’ 스웨덴 스톡홀름 로얄시포트(Royal Seaport) 길가에 놓인 쓰레기통이 ‘숨’을 쉬었다. 로얄시포트 지하에서 처리되고 있는 쓰레기 때문이었다. 가끔은 꽉 찬 쓰레기를 비우며 ‘뽕’ 소리를 내기도 했다. 길을 따라 2분쯤 걸으니, 맨홀 뚜껑에 적힌 ‘SOP’란 글자가 눈에 띄었다. 스웨덴어로 쓰레기라는 뜻이다. 로얄시포트의 쓰레기는 지하의 ‘쓰레기관’을 따라 집하장으로 이동한다.

로얄시포트는 스웨덴 수도 스톡홀름 안에 있는 일종의 계획도시다. 넓이는 236㏊로 과거 가스 산업 공장 등이 있던 지역을 재개발했다. 주택 1만2000채와 일자리 3만5000개를 2030년까지 만드는 것이 목표다. 현재까지 집 3160채를 지어 7000여명이 살고 있다. 지난달 16일 찾은 로얄시포트는 계획도시답게 기후위기 대응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설계가 돋보였다. 스웨덴 기업 엔백의 기술로 쓰레기 배관을 땅 아래 묻었고 그렇게 늘어난 공간은 녹지로 채웠다. 해수면 상승을 대비해 지대는 높였다. 5분 이내에 생활 필수 공간에 도달하는 ‘5분 도시’ 개념도 녹여냈다.

건물마다 쓰레기통 대신 투입구

로얄시포트의 한 건물 벽에는 꼬리가 불타는 ‘소각 괴물’ 캐릭터가 붙어 있었다. 바로 옆에는 손에 플라스틱 제품을 든 캐릭터가 귀여운 표정으로 웃고 있다. 자세히 보니 캐릭터의 입은 쓰레기를 버리는 구멍이다. 소각 가능한 일반 쓰레기 투입구와 플라스틱 투입구를 캐릭터로 구분해 놓았다. 패트릭 해랄드손 엔백 북유럽지역본부장은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쓰레기 분리배출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니 보호자도 좋아한다”고 말했다.

투입구 열쇠는 주민들만 갖고 있다. 각 투입구 아래에는 저장 공간이 있다. 폐기물이 모이면 공기압으로 지하의 배관을 따라 집하장으로 간다. 엔백에 따르면, 폐기물을 지하 배관으로 운송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폐기물 수거 차량의 통행을 90%까지 줄일 수 있다. 쓰레기가 모인 집하장에서는 은은한 냄새가 났다. 땅 위로 올라온 배관은, 일반·플라스틱·종이 폐기물로 나뉜 수거함으로 연결되어 있다. 패트릭 본부장은 “밀폐된 관으로 폐기물이 이동하니 주거지에서도, 집하장에서도 냄새가 심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실 이런 배관을 만드는 데도 철강 등 많은 자원이 들어간다. 공기압을 만드는 펌프를 가동하는 데 에너지도 필요하다. 패트릭 본부장은 “미래에는 다른 소재로 파이프를 만들기 위해 여러 재료를 놓고 개발하고 있다”며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해 쓰레기 수거 횟수를 최적화해 에너지 사용량도 계속 줄여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쓰레기 지하 배관 시스템 만들어
폐기물 수거 차량 통행 90% 줄여

“자연이 일하게 하는” 기후 적응 도시

길거리의 쓰레기통뿐 아니라 각 건물의 분리수거도 지하 배관을 통한다. 이렇게 확보한 공간은 ‘녹지’를 만드는 데 쓰인다. 스톡홀름시는 로얄시포트 내 최소 20%를 녹지로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건물 한 채당 최소 15㎡의 녹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규정도 만들었다. 카밀라 에드빈손 스톡홀름시 담당자는 “스톡홀름에서는 사람이 큰 공원까지 200m 이내로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준이 있는데, 로얄시포트는 ‘모든 곳’에 녹지가 있다는 점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스톡홀름시는 로얄시포트의 녹지를 ‘녹색 오아시스’라고 부른다. 과거 가스 생산단지였던 이 지역에는 2021년에만 14만㎡의 녹지가 새로 생겼다. 녹지는 로얄시포트를 관통하는 ‘생태통로’ 역할도 한다. 로얄시포트는 800종 이상의 다양한 식물, 1200종 이상의 딱정벌레, 100종 이상의 새가 사는 국립공원으로 둘러싸여 있다.

곳곳에 녹지가 생기면 ‘빗물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 2011년 스톡홀름에서는 3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152㎜ 넘는 비가 내리면서 지하실, 거리, 주요 도로가 침수됐다. 홍수를 경험한 스톡홀름시는 로얄시포트에 홍수 대비책을 만들어놓았다. 빗물이 배수구를 통해 토양으로 흡수되고, 연못·습지 등이 많은 물을 저장할 수 있도록 했다. 카밀라는 “스웨덴의 기후는 변화했고, 더 예측 불가능해져 극단적인 홍수, 가뭄의 위험도 늘어나므로 도시계획에서 고려해야 한다”며 “우리는 ‘자연이 일하도록’ 한다”고 말했다. 로얄시포트를 설계할 때 기후위기는 주요 고려 사항 중 하나였다. 해수면 상승에 대비해 아예 전체 지역을 해수면보다 3m 위에 뒀다. 나무를 심을 때는 기후변화로 높아질 기온에도 잘 살 수 있는 종을 골랐다.

도시 곳곳 녹지는 생태 통로 역할
교통에는 ‘5분 도시’ 개념 도입 등
도시의 ‘지속 가능성 모색’ 본보기

5분 도시 개념에, ‘에너지 효율’ 건물도

지난달 16일 로얄시포트 일대를 1시간 남짓 걷는 동안 놀이터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3번이나 볼 수 있었다. 로얄시포트에서는 개인 차량이 자주 다니지 않는다. 놀이터·식료품점 등이 모든 지역에서 5분 이내 거리에 있다. 대중교통도 가까이에 뒀다. 가까운 거리는 걷고, 이동할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도해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인다. 카밀라는 “도시 곳곳에는 공유차량을 위한 주차장이 있고, 주차 공간은 건물 두 채당 한 곳만 있다”며 “시민들은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만 차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로얄시포트 건물 곳곳에는 지붕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돼 있었다. 스웨덴은 지열 난방을 이용하고, 수력·바이오매스·원자력 발전 위주로 에너지를 생산해 아직 태양광 시설이 낯설다. 항구도시에서는 전체 전력 수요의 5~6% 정도를 태양광 발전으로 만든다. 이 지역의 단위 면적당 에너지 사용량은 스웨덴 규제보다 26% 낮다.

스톡홀름시는 로얄시포트를 지을 때 토지 할당을 놓고 건축사들을 경쟁하게 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건물을 짓도록 유도했다. 주로 지역난방을 이용하고, 폐수에서 잔열을 회수에 다시 사용하기도 한다.

스톡홀름시는 로얄시포트가 스웨덴 사회에 ‘지속 가능성’을 가르치는 장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카밀라는 “스톡홀름시는 녹지·에너지 효율 등 지속 가능성 기준을 맞추기 위해 로얄시포트의 건설 전문가 55명과 세미나 등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며 “전문가는 물론 주민도 서로 배우고 있는 학습 과정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강한들 기자 handl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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