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 미군기지 추가 건설... 4곳 중 3곳 중국 턱 밑에 위치

美 ‘대만 비상사태’ 개입여지 둬
中 “군사 배치로 긴장 고조시켜”

지난달 31일 필리핀 누에바에시하주에서 열린 필리핀과 미국의 합동 군사 훈련 중 필리핀 육군 병사가 대전차탄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견제하기 위해 필리핀에 추가 건설키로 한 미군 주둔 기지 4곳 중 3곳이 대만과 불과 400여㎞ 떨어진 남중국해의 해안가로 결정됐다. 지리적으로 중국 본토의 ‘턱밑’에 가깝다. 미국이 ‘대만 비상 사태’ 등 유사시 군사 개입할 가능성을 고려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취임한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은 군사 동맹 등 미국과 관계를 확대하는 중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4일 공개된 추가 기지 후보지 4곳은 필리핀 최북단 카가얀주(州)의 카밀로 오시아스 해군기지, 랄로 공항, 북부 이사벨라주의 멜커 델라 크루즈 캠프, 팔라완 서부 발라바크섬이다. 새 기지가 완성되면 필리핀의 미군 기지는 5곳에서 9곳으로 늘어난다.

이 가운데 발라바크섬을 제외한 3곳은 대만을 건너다보는 필리핀 북부 해안 부근이다. 필리핀 북부 해안은 동쪽으로 태평양, 서쪽은 베트남, 북쪽은 대만과 홍콩을 바라보는 군사 요충지다.

미국이 필리핀과 대만을 잇는 400여㎞의 ‘대중(對中) 방어선’을 한층 강화했다고 군사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이상국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공개적으로 인도태평양 지역을 보호한다는 인상을 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다만 주변 해협이 비좁은 데다 실제 대규모 작전을 수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미 국방부는 “미군과 필리핀군의 합동 작전 능력을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필리핀 국방부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남중국해 무역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 측은 “미국이 군사 배치로 긴장을 고조시킨다”며 반발하고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지난 2월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은 필리핀을 방문해 필리핀 내 미군 기지를 확대하기로 필리핀과 전격 합의했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방위협력확대협정(EDCA)을 대폭 강화키로 했다. 앞서 2014년 체결한 협정은 ‘인도주의적 목적이나 해상 안보를 위해 미군 항공기와 군함을 필리핀 내 기지에 배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새 미군 기지들이 들어설 필리핀 북부는 중국이 진출을 노리고 오래 공들인 곳이다. 2017년 ‘스마트시티 건설’ 등을 명분으로 필리핀 북부 해안의 ‘푸가 섬’에 대한 임대차 계약을 시도했다. 이 섬은 울릉도(72.86㎢)만 한 면적에 농어업 종사자 2000여 명이 사는 외딴 섬인데, 필리핀 국민 여론이 악화돼 무산됐다. 중국의 경제·안보 진출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