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대통령 거부권…‘협치 없는 정치’ 민낯

유정인·유설희 기자 2023. 4. 4. 21:09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양곡법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윤 대통령, 첫 재의요구안 의결
거대 야당 법안 직회부 강행에
거부권으로 맞서 ‘타협’ 실종
정부 출범 1년, 극한 대립 반복

윤석열 대통령은 4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취임 후 처음이다. 민주당은 “국민의 66.5%가 찬성한 ‘쌀값 정상화법’의 공포를 거부하며 국민 뜻을 거슬렀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여당과 야당의 강 대 강 대치가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 재의 요구안을 심의·의결한 뒤 재가했다. 윤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는 2016년 5월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권 행사 이후 7년 만이다. 여야의 극단적 대립 구도가 상징적으로 드러났다는 분석이 나온다.

양곡법 개정안은 쌀 생산량이 수요 대비 3~5% 초과하거나 쌀값이 전년 대비 5~8% 하락할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전량 매입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달 23일 민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본회의에 직회부된 후 국회를 통과한 첫 법안이다.

윤 대통령은 모두발언에서 “이 법안은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며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국민 혈세를 들여서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이수진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윤 대통령이 농민의 심장에 비수를 꽂았다”며 “모든 수단을 동원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맞서겠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대통령의 연이은 거부권 정치는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정신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양곡법 거부권 행사는 ‘협치 제로’의 정치 현실을 재확인시켰다. 헌정사 초유의 야당 불참 대통령 시정연설, 장관 탄핵소추 등 극단적 대립 정치 징후가 쌓여온 데 이어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이 7년 만에 발동됐다. 윤 대통령 역시 타협 없는 무한대치가 되풀이되는 데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날 거부권 행사로 진영 간 대결 정치는 또 한 번 고점을 찍게 됐다. 여당은 거대 야당의 “입법폭주”를, 야당은 윤 대통령의 “국회 입법권 거부”를 주장하며 즉각 후폭풍 속으로 들어갔다.

7년 만의 대통령 거부권 행사는 그간 악화한 협치 환경을 드러낸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윤석열 정부 취임 1년은 통합과 협치의 복원을 가늠하는 시험대로 꼽혀 왔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2016~2017년 대통령 탄핵 사태와 2019년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며 극단적으로 갈린 의견을 조정하고 타협의 길을 내는 협치의 리더십을 안팎에서 요구받았다. 0.73%포인트 차로 갈린 대선 승패, 여소야대 국회 상황 등 현실적 여건 역시 협치를 국정의 필수불가결한 요건으로 부상하게 했다.

결과적으로는 초유의 극단적 대립이 반복됐다. 지난해 10월 대통령 시정연설은 제1야당이 전면 불참한 사상 초유의 ‘반쪽 시정연설’로 치러졌다. 유례없는 야당 당사 압수수색에 이어 초유의 제1야당 대표 구속영장 청구가 이뤄졌고, 대통령과 야당 대표 만남은 미뤄졌다.

윤 대통령, 거부권 첫 행사

지난달엔 이태원 핼러윈 참사 책임을 물어 이상민 장관 탄핵소추안이 야당 주도로 가결됐다. 75년 헌정 사상 장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건 처음이었다.양곡법 문제를 두고도 정부·여당은 김진표 국회의장이 낸 두 차례 중재안에 거부 의사를 밝히고, 여야는 절충안을 마련하지 못하는 등 협치에 한계를 보였다.

윤 대통령 역시 극단적 정치 악화 책임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은 당선 직후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다”고 했지만 야당과의 대화의 문을 닫은 채 취임 1년을 앞두게 됐다. 거대 야당의 동의 없이는 입법을 통한 국정과제 실현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야당과의 협치 외면으로 국정의 폭을 스스로 좁히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유정인·유설희 기자 jeongin@kyunghyang.com

Copyright © 경향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