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통령·거야의 양곡법 거부권 충돌, 실효적 농정 답 내놔야
윤석열 대통령이 4일 쌀 생산량이 평년보다 3~5% 늘어나거나 쌀 가격이 5~8% 떨어질 때 정부가 초과 생산량을 의무 매입하도록 하는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양곡법 개정안이 지난달 23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지 12일 만이다. 윤 대통령이 국회 의결 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취임 후 처음이고, 2016년 5월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법 개정안’ 거부 이후 7년 만이다. 재의 요구된 법안은 국회에서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해야 통과된다. 115석인 국민의힘 의석을 고려하면 양곡법 개정안은 폐기될 것으로 예상된다. 민주당이 강력 반발하면서 정국이 급랭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양곡법 개정안은) 농업 생산성과 농가 소득을 높이려는 농정 목표에도 반하고, 농업인과 농촌 발전에도 전혀 도움되지 않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의 쌀 소비량과 관계없이 남는 쌀을 정부가 막대한 혈세를 들여 모두 사들여야 한다는, 남는 쌀 강제 매수법”이라며 “(민주당이) 제대로 된 토론 없이 국회에서 일방적으로 통과시켜 매우 유감스럽다”고 했다. 법 개정에 수차례 비판적 입장을 보인 윤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는 예고된 것과 마찬가지다.
법 개정은 지난해 쌀 가격 폭락 후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민주당은 쌀값 하락에 대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라며 개정안을 밀어붙였지만, 여당은 재정 부담을 초래하는 악법이라며 반대했다. 여당은 야당과 진지하게 협상하지 않았고, 농가의 시름을 덜 구체적인 대안도 내놓지 않았다. 벼 재배면적 증가 시 의무매입하지 않을 수 있다는 김진표 국회의장 중재안도 무시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관계부처는 쌀 수급 안정, 농가 소득 향상, 농업 발전에 관한 방안을 조속히 만들라”고 지시했고, 정부·여당은 6일 당정협의에서 이 문제를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정부·여당이 사전에 대책을 제시하고 야당과 조율했다면 대통령 거부권 행사로 번지지 않았을 수 있다. 여권의 무책임한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대통령 거부권도 국회 입법권에 대한 행정부의 견제 장치이지만, 국회 결정을 존중하고 보완책을 함께 찾는 자세를 보여줬어야 했다.
민주당은 개정안 재의결을 추진하지만 국민의힘 반대로 폐기될 것이 확실하다. 민주당 일각에선 양곡관리법 대안으로 농산물의 최저가격을 국가가 보장하는 내용의 입법을 준비하는 움직임도 있다. 양곡법 개정안이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쌀 수요 감소에 따른 벼 재배면적 관리 대책이 부족하다는 지적은 일리가 있다. 여야는 이제라도 머리를 맞대고 실효성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해법찾기가 늦어질수록 농민 고통은 커진다. 게다가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된 간호법 제정안·방송법 개정안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려고 한다. 민주당의 다수 의석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이 부딪치는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할 터인가. 여야는 대화하고 타협하는 협치 가능성을 끝까지 포기해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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