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 다디단 단비

오창민 기자 2023. 4. 4.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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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강원 강릉시 경포 저류지 인근 벚나무에서 직박구리가 벚꽃에서 꿀을 따 먹고 있다. 연합뉴스

긴 가뭄 끝에 비가 내린다. 말 그대로 다디단 단비다. 전남 함평과 순천 등 전국 대부분의 산불은 자연 진화됐다. 소방관과 산림 공무원들도 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도서 벽지 주민들의 목마름도 잠시 해소됐다. 완전 해갈까지는 멀었지만, 거북등처럼 갈라진 남녘 저수지에도 물이 스며들고 있다. 비는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똑같이 적신다. 까만 농부의 얼굴에 오랜만에 희색이 돈다. 화마에 놀란 인왕산의 풀과 나무도 기지개를 켠다. 일찍 핀 꽃은 비바람에 지겠지만 이파리는 푸르름을 더할 것이다. 극심한 가뭄에도 하루 수십번씩 수세식 변기 물을 내리며 사는 도시인들은 단비의 정서와 의미를 알기 어렵다. 세속적인 셈법으로 경제 효과가 수천억원이라고 하면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4일 제주와 남부 지방부터 내리기 시작한 비는 서해상에서 형성된 저기압과 비구름 덕분이다. 이번 비는 지역에 따라 6일까지 이어질 거라고 한다. 기상청은 일부 지역에 호우 예비특보를 발령했다. 걱정도 되지만 호우 특보가 반갑기도 처음이다. 한국의 봄은 중국 양쯔강 부근에서 발원하는 온난 건조한 대륙성 기단의 영향을 받는다. 시베리아 기단이 약화된 틈을 타 3~4일 간격을 두고 이동성 고기압 형태로 다가온다. 양쯔강 기단이 오면 따뜻하고 건조한 날씨가 지속된다. 인간의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봄 가뭄을 막지 못하고 단비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그래도 옛사람들은 비를 거저 얻지 않았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냈다. 흔히 ‘인디언 기우제’라고 하지만 동서를 막론하고 모든 기우제가 같은 방식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억울하게 누명 쓴 죄수가 있는지 살피고, 왕의 수라상 찬을 줄였다. 사람들은 단비 같은 존재가 되길 바라며 자손에게 ‘시우(時雨)’라는 이름을 붙였다. 중국 고전소설 <수호전>의 주인공 송강의 별명도 가뭄에 때맞추어 내리는 비라는 뜻의 ‘급시우(及時雨)’다. 단비는 괴로움 끝에 즐거움을 맞는 상황을 비유해 자주 쓰인다. 타향에서 고향 친구를 만난 것도 단비고, 장기간 5%를 넘던 물가상승률이 4%대로 떨어진 것도 단비다. 곳곳에 단비가 필요하다. 취준생에게는 일자리 단비가, 한반도에는 평화의 단비가 내렸으면 한다.

오창민 논설위원 risk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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