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팬데믹 대응할 병상 턱없이 부족…감염병대응기금 만들자"
"새로운 감염병 평균 상황 가정하면 800~2000병상 필요할 것"
"저출산·고령화로 의료부양비 급증…건보 보장성 중증 중심 재편"
인력확충 방안으로 지역의사제·한시적 특성 의과대 증설 등 제시
하루 최대 수십만이 확진된 코로나19 팬데믹에서 겪었던 '병상 대란'의 재현을 막으려면 적정한 중증병상을 확충하고 감염병 위기대응기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4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3년여 간 코로나19 대응 곳곳에서 빈틈을 드러낸 필수의료를 강화하고 건강보험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대책들을 논의하는 제1차 의료보장 혁신포럼을 열었다.
정부는 올해를 '보건의료 전반의 혁신' 청사진이 제시되는 해로 규정했다. 보건의료발전계획 최초 수립과 함께 하반기 2차 건강보험종합계획 발표가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우리 보건의료체계는 복합적 위기에 처해 있다"며 수도권·대형병원으로의 쏠림에 따른 필수의료 부족, 지역 간 의료격차 심화, 고령화에 의한 노인의료비 급증 등을 당면 현안들로 꼽았다.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수익기반 약화 등은 건보의 지속가능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민께 신뢰받고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만들려면 제도 혁신에 매진해야 한다"며 "초고령사회 전환에 따른 미래 수요에 적극 대비하고 필수의료와 지역에서 충분한 의사인력이 활동할 수 있도록 공급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이날 '코로나19를 통해 본 우리 보건의료체계'라는 주제로 발제에 나선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정재훈 교수는 "(코로나19로) 본격적인 큰 피해가 시작된 건 델타 변이 유행 때라 생각한다. 확진자가 그리 많이 증가하진 않았지만 접종률이 높지 않았고, 치명률이 아주 높은 상황이라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일상회복을 가능케 하는 여러 전제 중 '의료대응능력 확보'를 매우 중요한 조건으로 꼽았다. 델타 변이에 감염된 위중증 환자가 급속도로 늘었던 2021년 겨울 당시 전국적으로 800병상을 끌어 모았지만 상황 대응에 역부족이었다고도 돌아봤다.
그럼 가까운 미래에 찾아올 감염병을 대비하려면 어느 정도의 병상이 필요할까. 병상 수를 좌우할 주요 변수는 △바이러스의 전파속도 △중증화율과 감소 수단(백신·치료제) △감염병 추적 능력 등이다.
정 교수는 "오미크론 정도의 전파력에 에볼라 정도의 치명률을 갖춘 바이러스가 등장할 가능성은 낮다. 현실적으로 전파력이 오미크론처럼 높다 해도 치명률이 아주 심각하지 않다면 평균적 상황에선 800개에서 2천 개의 병상이 장기적으로 필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문제는 국가 지정 입원 치료병상(300여개)에 권역 감염병전문병원(180여개)과 중앙감염병전문병원의 중증병상(200개 미만)을 다 합쳐도 800개가 채 안 된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중증병상을 가정하면 이 숫자의 '3분의 1'로 보는 게 맞을 거고, 그럼 최대 300병상 정도의 여력이 될 것"이라며 "이번처럼 민간의료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과학적 예측이나 장기 전망에 기반하기보다 그때그때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다 보니 코로나 확진자를 받은 민간 의료기관에 대한 손실보상으로만 누적 8조가 넘는 거액이 쓰였다고도 지적했다.
또 경증환자의 경우, 진료 대부분이 전문가용 신속항원검사(RAT) 등을 중심으로 이뤄졌는데 적정수가의 개념보다는 인센티브 등 1차 의료기관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한시적 수가를 적용했다는 점도 주목할 점으로 꼽았다. 장기적 관점에서 진단검사·치료 수가를 들여다보면 당연히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 교수는 약 2조의 예산이 투입된 경구용 치료제 등을 언급하며 "(진단·치료에서)어떤 부분은 무료로 제공해드리지만, 본인부담의무를 지우게 할 부분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한다"며 "(이같은) 후행적 평가를 위해서는 정말 대규모의 통합된 데이터베이스가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산화된 병상 배정체계와 함께 "향후 팬데믹 대응에 필요한 기금을 (미리) 마련해두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지난 3년간은 코로나19가 모든 의료자원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였지만, 앞으로는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의료부양비가 훨씬 무거운 짐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내놨다. 정 교수는 "건보료율 추세 선보다 급격히 증가 중인데, 재정 면에서도 (건보의) 장기적 지속가능성이 불투명해지는 시점이 거의 팬데믹이 끝나가는 2023년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만, 재정 건전성을 담보하기 위한 건보료율 인상은 생산가능인구 감소에 대한 소극적 대응에 그칠 거라고 봤다. 정 교수는 팬데믹 이후 건강보장의 핵심 과제는 '지출 관리'라고 강조했다.
특히 필수의료 여부를 불문하고 급여는 건보로, 비급여는 민간의료보험으로 커버하는 현행 보장체계를 '수직적 보편성'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염병 같은 국가 재난 관련 치료수요나 중증·필수의료는 건보·조세로 폭넓게 지원하고, 경증·비필수의료 항목은 과감히 보장 내용을 줄이자는 것이다. 건보의 '보편적 보장(universal coverage)' 개념을 재정립하자는 취지다.
한편 신현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필수의료 수급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인력확충 방안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일본의 지역 틀 선발제도를 본딴 지역의사제 도입, 10년 단위 등 한시적으로 특성 의과대학을 증설하는 방법을 들었다. 입학시점부터 외상외과 등 일부 전문과를 추가하는 방식이다. 또 필수의료 인력이 개원보다 기존 병원에 근무할 수 있도록 병원의사 보상기전을 개선하는 방안도 대책으로 제안했다.
아울러 신 연구위원은 "행위별 수가제의 한계를 벗어나 보건의료 혁신지원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며 "대안적 지불제도의 유연한 활용을 위해 법적 근거를 확보하고 다양한 보상체계 시범사업을 추진하자"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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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노컷뉴스 이은지 기자 leunj@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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