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긍정 에너지 전파자’ 현미, 발자취는 길이 남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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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현미가 4일 별세했다.
현미는 80살에도 신곡을 발표하고, 최근까지도 무대에 오르는 등 활동을 했으니 67년차 가수였다.
그런 현미가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에서 'O Danny Boy' 등을 불렀으니, 큰 반응이 나온 건 당연할 듯하다.
현미는 2022년 10월에 방송된 TV CHOSUN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동네 친구인 배우 엄앵란(86)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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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 = 서병기 선임기자]가수 현미가 4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얼마전만 해도 건강한 것 같았는데, 비보가 전해졌다. 현미는 80살에도 신곡을 발표하고, 최근까지도 무대에 오르는 등 활동을 했으니 67년차 가수였다.
나는 현미와 수십년을 같은 동네에서 살았다. 나는 현미 선생님이라 부르지 않고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현미는 동네의 길에서 만나면 세워놓고 5~10분 정도 이야기 하는 건 예사다. 나도 현미와는 ‘아궁이’ 등 몇몇 방송에서 함께 토크한 적도 있어, 그의 스타일을 잘 아는 편이다.
현미는 다변가다. 토크쇼에 출연하면 80세가 넘어도 말을 하려는 열정이 대단하다. 말을 하다 다른 곳으로 빠지기도 하지만, 그 열정은 젊은 사람들도 충분히 본받을만하다. 뿐만 아니라 항상 씩씩하고 호탕, 화통한 왕언니다. 그러면서도 세심한 면모도 지니고 있다. 수많은 세파를 경험했는데도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성 또한 후배들이 배워야 할 덕목이다.
1938년생인 현미는 당시 세대로서는 유난히 키가 컸다. 비주얼로 대형가수가 될 수 있는 조건을 지닌 몇 안되는 가수였다. 반짝이 원피스를 입고 ‘밤안개’를 능수능란 하게 부르는 모습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비주얼 뿐만 아니라 가창력으로도 특유의 허스키한 재즈풍 보컬로 1960년대 한국 팝을 선도한 ‘원조 디바’로 인정받았다.
그런 현미가 1957년 미8군 위문 공연에서 ‘O Danny Boy’ 등을 불렀으니, 큰 반응이 나온 건 당연할 듯하다. 미군 관객들을 단숨에 사로잡았고, 당시 밴드 세션의 마스터였던 작곡가 이봉조도 빠져들었다.
현미는 어린 시절 가족들과 평양에서 1. 4 후퇴때 넘어온 이산가족이다. 동생중 한 분을 48년만에 중국에서 상봉하기도 했다.
생계를 위해 우연히 미8군 부대에서 노래를 부르게 됐다. 색소포니스트인 작곡가 이봉조는 1962년 자신이 냇 킹 콜의 곡을 번안해 편곡한 ‘밤안개’(It‘s A Lonesome Old Town)를 현미에게 준 것이 결과적으로 현미의 인생곡이 됐다. 이후 현미는 ‘내 사랑아’ ‘보고 싶은 얼굴’ ‘몽땅 내 사랑’ ‘바람’ ‘떠날 때는 말없이’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현미는 무대에 오르기 전, 항상 신발을 바꿔신는다. 현미 식의 무대에 대한 경건함의 표현이다.
현미와 이봉조는 사랑을 하고 음악작업을 함께 하며 결혼식까지 올렸다. 임신까지 한 상태에서 이봉조의 본처가 나타나는 바람에 두 사람은 졸지에 ‘사실혼’ 관계가 돼버렸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운명으로 돌렸다. “우리 운명이 거기까지밖에 안됐나봐요” 하고 담담하게 말하곤 했다.
현미는 2022년 10월에 방송된 TV CHOSUN ‘스타다큐 마이웨이’에서 동네 친구인 배우 엄앵란(86)과 함께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엄앵란은 몸이 좋지 않아 4년간 투병 시간을 보내며 집안에서만 지내고 있었지만, 현미가 친구를 세상 밖으로 데리고 나온 것이다.
대중들의 환호 속에 이뤄진 세기의 결혼이었지만 순탄치 않았던 생활, 그 공통점을 시작으로 두 사람은 데칼코마니 같은 인생을 이어오고 있었다. 답답한 속을 두사람만은 서로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다. 엄앵란은 60년 친구 현미가 왔기 때문에 외식을 한다고 했다.
현미는 그런 사람이다. 안에 있는 사람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존재. 20년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현미파워노래교실’을 진행해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긍정적인 분위기를 만들기도 했다. 그래서 현미의 타계를 아쉬워하고 더 많이 애도하는지도 모른다.
1년전쯤인가, 동네의 노천 카페에서 현미와 선우용녀가 수다를 떠는 모습도 본 적이 있다. 이동할 때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누구와도 대화를 나눈다. 현미는 항상, 일관되게 유쾌한 삶을 살았던 그 모습을 대중에게 전파해주고 떠났다.
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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